조선일보
[만물상] 피바람 부는 사우디 왕가
입력 : 2017.11.07 03:16
1927년 건국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1875~1953)는 왕비가 22명이었다. 건국 초 정국 안정을 위해 유력 집안 딸을 최대한 아내로 맞은 결과였다. 그는 이들과 사이에 아들을 36명 두었다. 문제는 누구를 후계자로 할 것이냐였다. 부자(父子) 승계를 했다가는 아내 22명과 아들 36명이 서로 갈려 전쟁을 벌일 판이었다. 그는 "형제(兄弟)끼리 왕위를 계승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덕에 2대부터 현재 7대까지 사우디 왕위는 큰 충돌 없이 형제끼리 이어졌다.
▶현재의 살만 국왕(82) 뒤를 이을 '젊은 형제'가 없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주변 경쟁국에선 30~40대 지도자가 등장해 나라를 개혁하는데, 사우디 왕위는 또 70~80대에게 돌아갈 형국이었다. 2015년 집권한 살만 국왕은 조카 빈 나예프(58)를 제1 계승자로, 아들인 빈 살만(32)을 제2 계승자로 책봉해 형제 계승 전통을 깼다. 그런데 빈 살만이 지난 7월 사촌형 빈 나예프를 가택 연금하고 제1 계승자에 올랐다.
▶현재 사우디의 왕자와 공주는 1만5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복잡해 보이지만 실세 혈통은 초대 국왕의 8번째 왕비인 수다이리(1969년 사망)의 아들과 손자들이다. 수다이리의 장남이 5대 파하드 국왕이고 6남이 현재 살만 국왕이다. 왕세자 빈 살만은 수다이리의 손자다. 수다이리는 아라비아반도 정치 1번지인 나즈드 지방 부족장의 딸인 점 등을 내세워 '왕비 전쟁'에서 승리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다처제인 중동 역사에선 왕비를 중심으로 파벌이 형성된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실세 왕세자가 된 빈 살만은 4일 왕위 계승 경쟁자인 왕자 11명과 측근 수십 명을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빈 무끄린 왕자는 도피 중 헬기가 추락해 사망했다고 사우디 국영방송이 전했다. 또 파하드 전 국왕의 아들 빈 파하드 왕자는 체포 시도에 저항하며 총격전을 벌이다 사망했다고 한다. 빈 살만의 이번 '유혈 친위 쿠데타'는 정적을 제거해 후계 기반을 굳히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빈 살만은 '부패 척결'을 숙청 명분으로 내걸고 여성 운전을 허용하는 등 '신세대 군주' 이미지를 쌓기도 했다.
▶이슬람 후계 문제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632년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세상을 뜨면서 시작됐다. 수니파(사우디 등)와 시아파(이란 등)의 갈등의 씨가 그때 뿌려진 것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이복형을 국제공항에서 암살한 김정은 말고 권력을 놓고 핏줄끼리 피를 흘리는 사례가 또 나올 줄은 몰랐다.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무서움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06/20171106030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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