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2] 한국의 정, 일본의 와, 중국의 관시
조선일보
입력 : 2017.11.24 03:11
민족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느냐는 별론으로 하고, 한·중·일 삼국의 정서적 특질을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 있다면, 중국은 '관시(關係)', 한국은 '정(情)', 일본은 '와(和)'일 것이다. 모두 덕(virtue)으로서의 장점이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악덕(vice)으로 변질될 수 있는 이중성이 있다.
중국의 '관시'는 관심(關心)을 주고받는 사이를 뜻한다. 중국어의 관심은 '흥미(interest)'라는 의미도 있지만, '챙기는 마음(caring mind)'의 뜻이 앞선다. 따라서 중국에서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은 서로 관심을 두는, 즉 챙기는 사이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관계가 없으면 서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에서의 무관심은 '흥미가 없음'을 넘어 '나는 너를 챙기지 않을 것임'을 뜻한다.
중국의 '관시'는 관심(關心)을 주고받는 사이를 뜻한다. 중국어의 관심은 '흥미(interest)'라는 의미도 있지만, '챙기는 마음(caring mind)'의 뜻이 앞선다. 따라서 중국에서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은 서로 관심을 두는, 즉 챙기는 사이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관계가 없으면 서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에서의 무관심은 '흥미가 없음'을 넘어 '나는 너를 챙기지 않을 것임'을 뜻한다.
한국의 '정'은 나눔의 정서이다. '구분하고 끊는 것'보다 '나누고 잇는 것'에 가치를 부여한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나누고 이어야 사람 도리를 한다고 평가받는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면 사람 도리가 시원치 않아 덧정 없다는 말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눔의 정과 맺고 끊음이 흐릿한 온정주의 사이의 경계선은 때때로 희미하다.
한·중·일의 상호 교류와 이해가 증진돼 서로 관계를 맺되 관계가 없어도 관심을 갖고, 정을 나누되 맺고 끊음이 분명하고, 규칙을 따르고 원만하게 지내되 보다 근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그런 미래를 꿈꿔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3/2017112303239.html
일본의 '와'는 전체를 중심으로 서로 구속되는 것이다. '와'는 둥글고 균열이 없음을 의미하며, 삐져나오거나 다투는 상황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정해진 규칙에 순종하고 인내하는 것을 구성원의 첫째 덕목으로, 그에
서로 구속됨을 사회의 근간으로 삼는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불화(不和)를 야기하는 구성원은 시시비비를 떠나 배신자로 비난받고 배척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중·일의 상호 교류와 이해가 증진돼 서로 관계를 맺되 관계가 없어도 관심을 갖고, 정을 나누되 맺고 끊음이 분명하고, 규칙을 따르고 원만하게 지내되 보다 근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그런 미래를 꿈꿔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3/20171123032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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