宗敎

붓다를 만나다

이강기 2018. 1. 5. 08:10
 
    

붓다를 만나다(11)-"당신보다 물고기가 먼저 해탈에 들겠소


백성호 기자 사진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차장

수행자에게 스승은 '지도'와 같다. 길이 막히거나 끊겼을 때 스승은 방향을 일러준다. 세 명의 스승에게서 길을 찾지 못한 싯다르타는 아무런 지도도 없이 수행의 길을 떠나야 했다.

수행자에게 스승은 '지도'와 같다. 길이 막히거나 끊겼을 때 스승은 방향을 일러준다. 세 명의 스승에게서 길을 찾지 못한 싯다르타는 아무런 지도도 없이 수행의 길을 떠나야 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싯다르타는 세 명의 스승을 만났다. 피나는 노력 끝에 스승의 경지까지 도달했지만 ‘해탈’은 없었다. 수행자에게 스승이란 일종의 ‘지도’다. 길을 잃을 때마다, 막다른 골목과 마주할 때마다 스승은 방향을 일러준다. 이제 싯다르타에게는 의지처가 없었다. 그는 지도도 없이, 스승도 없이, 의지처도 없이 ‘고해의 바다’를 건너야 했다. 그러니 막막하지 않았을까. 동과 서, 그리고 남과 북.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싯다르타는 북쪽 바이샬리로 방향을 잡았다. 그곳으로 가려면 다시 갠지스강을 건너야 했다. 나는 갠지스강의 강둑에 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싯다르타는 어디쯤에서 갠지스강을 건넜을까. 상류였을까, 아니면 하류였을까. 그는 어떻게 강을 건넜을까. 몸소 수영을 했을까, 아니면 나룻배라도 얻어 탔을까. 그래서 저쪽에서 이쪽으로 건너왔을까.’  
 


갠지스강에서 힌두교도들이 몸을 씻고 있다. 그들은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으면 자신의 죄가 씻긴다고 믿는다.

 
갠지스는 ‘성스러운 강’이다. 자이나교나 이슬람교를 믿는 인도인에게는 그렇지 않다. 힌두교 신자에게만 그렇다. 13억 인도 인구의 80%가 힌두교를 믿는다. 힌두교에는 창조와 유지와 파괴의 신이 있다.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그게 일정 기간 유지되고, 때가 되면 파괴된다. 우리의 몸도 그렇고, 이 세상도 그렇다. 
 

힌두교의 세 신은 그런 이치를 상징한다. 그들이 바로 브라마(창조)와 비슈누(유지), 그리고 시바(파괴)다. 인도의 서민과 하층민들이 가장 숭배하는 신은 다름 아닌 ‘파괴의 신, 시바’다. 반면 상류층 계급은 주로 유지의 신 ‘비슈누’를 선호한다. 하층민은 혁명을, 지배층은 체제 유지를 원하기 때문일까.  
 

수억에 달하는 인도의 신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파괴의 신 시바'. 특히 인도의 하층민들이 시바신을 섬긴다.

 
먼 옛날 인도에 엄청난 대홍수가 났다고 한다. 그때 브라만(힌두교 성직자)이 하늘에 기도를 했다. 땅위에 넘치는 물을 하늘로 가져가 달라고 했다. 천신들이 땅의 물을 하늘로 모두 가져갔다. 그러자 땅이 메마르기 시작했다. 너무 가물어 살 수가 없었다. 
 
브라만이 다시 기도를 했다. 하늘의 물을 내려달라고 말이다. 그런데 물의 양이 너무 많았다. 하늘의 물을 한꺼번에 내렸다가는 다시 대홍수가 날 처지였다. 그래서 수미산에 사는 시바신이 나섰다. 하늘의 물이 시바의 머리를 타고 땅으로 흘러내리게끔 했다. 그게 갠지스강이 됐다. 인도인들이 생각하는 ‘갠지스강의 연원’이다.  
 

저녁 무렵의 갠지스강. 강변에서는 힌두교식 종교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힌두교도들은 갠지스강이 시바신이 사는 천국으로 흘러간다고 믿는다. 백성호 기자

  
실제 갠지스강은 히말라야 설원에서 내려와 인도 동편의 벵골만을 통해 바다로 흘러간다. 동쪽으로 흐르는 강물의 방향이 굽어져 잠시 수미산이 있는 북쪽으로 흐르는 지점이 바라나시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갠지스 강변의 오래된 도시 바라나시에 와서 몸을 씻는다. 한국으로 따지면 경주쯤 되는 도시다. 몸을 씻는 이들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고대 인도인들에게는 신기했을 터이다. 다른 모든 강들이 동쪽으로 흐르는데, 유독 갠지스강만 북쪽으로 흘렀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인도인들은 세상의 강들 중에서 갠지스강만 시바신이 사는 천국으로 흘러간다고 믿었다. 죽은 후에 시신을 화장해 갠지스강에 뿌리는 이유도 그랬다. 죽은 이의 유해와 영혼이 강물을 따라 천국으로 간다고 생각했다. 살아서 갠지스에 몸을 씻고, 죽어서 갠지스에 뿌려지는 건 힌두교도들의 간절한 소원이다. 힌두교 신자였던 마하트마 간디의 화장한 유해도 갠지스강에 뿌려졌다.  
 


인도의 라즈기르에서 바이샬리로 가려면 갠지스강을 건너야 한다. 싯다르타도 바라나시로 와서 갠지스를 건넜을까. 바라나시는 고대 인도 문명이 꽃피었던 오래된 도시다. 백성호 기자

 
나는 궁금했다. 막상 갠지스강에 도착한 싯다르타는 어땠을까. 카필라 왕국의 왕자였을 때, 싯다르타는 이미 힌두교의 베다 철학에 정통한 상태였다. 베다 경전을 달달 외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싯다르타는 갠지스에 몸을 담그지 않았을까. 죄를 씻어준다는 갠지스강에서 그의 몸을 씻지 않았을까.  
 
2000년 전 유대 지역에서도 그랬다.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온몸을 물에 잠기게 했다. 그런 의식을 통해 마음을 정화시켰다. 당시 유대인들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기 위해 줄을 설 정도였다. 그런데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 올 것이다”고 예언했다.    
 
세례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주는 모습을 묘사한 스테인드글라스.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머지 않아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 올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세례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주는 모습을 묘사한 스테인드글라스.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머지 않아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 올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인도에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 초기불교 시절의 일이다. 브라만교(고대 힌두교)의 성직자인 브라만이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고 있었다. 물론 강물이 그의 죄를 씻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때 불교 수행자인 한 비구니 스님이 그 광경을 보았다. 그래서 목욕하는 브라만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고 있소?”
“나의 죄를 씻기 위해서요.”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하면 정말 죄가 씻어진다는 말이오?”
“물론이오. 주위를 보시오. 다들 이 신성한 강에서 몸을 씻고 있지 않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 강의 물고기들이 가장 먼저 해탈에 들겠소.”
 


인도의 힌두교도에게 갠지스강은 신성한 강이다. 그 물에 몸을 씻을 때 나의 죄가 씻긴다고 믿는다.

 
나는 궁금했다. 그 말을 들은 브라만의 표정이 어땠을까. 아무런 대꾸도 못한 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지 않았을까. 놀랍게도 『도마복음』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도마복음』 은 4복음서(마가, 마태, 누가, 요한복음)만큼 오래전에 기록됐다. 그러나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채택할 때 ‘정경(正經)’에서 빠져버린 복음서다. 지금은 외경(外經)이나 위경(僞經)으로 취급된다. 
 


도마복음

도마복음

 
그럼에도 『도마복음』에 담긴 영성의 깊이와 울림은 놀랍기 짝이 없다. 『도마복음』에는 예수와 제자가 문답을 주고 받는 대목이 나온다.  
 
제자가 예수에게 물었다.  
 
“주님, 하느님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저 깊은 바다에 있습니까, 아니면 저 높은 하늘에 있습니까?”
 
예수는 이렇게 답했다.  
 
“만약 ‘하느님 나라가 하늘에 있다’고 말하면, 하늘을 나는 새들이 너희보다 먼저 그곳에 닿으리라. 만약 ‘하느님 나라가 바다에 있다’고 말하면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먼저 그곳에 닿으리라. 하느님 나라는 오히려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바깥에 있다. 너희가 자신을 알게 될 때, 너희가 살아계신 아버지의 아들들이란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갠지스강 위로 새가 날아간다. 도마복음의 예수는 "천국이 하늘에 있는 것이라면, 저 하늘을 나는 새가 너보다 먼저 닿을 것이다. 천국은 너희 안에, 또 너희 밖에 있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읽을 때마다 놀랍다. 어쩌면 이토록 흡사할까. 갠지스강에서 브라만과 비구니가 주고 받은 문답과 예수와 제자가 주고 받은 문답이 닮았다. 물음의 형식만 비슷한 게 아니다. 그 물음을 관통하는 답, 그 답에 담긴 ‘안목’이 서로 통한다.  
 
세례 요한은 “지금은 물로 몸을 씻지만, 앞으로는 성령이 당신을 씻어내릴 것”이라고 했다. 물로는 몸을 씻지만, 성령은 마음을 씻는다. 그러니 세례 요한도 알고 있었다. 핵심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갠지스강의 비구니 스님도 “물로 목욕을 한다고 죄가 씻기지 않는다. 내 마음을 씻어내릴 때 비로소 죄가 씻긴다”며 브라만을 지적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비슷하다. 고대 종교는 수천년 세월을 거치며 박제가 돼갔다. 붓다도, 예수도 그런 종교에 살아있는 숨결을 불어 넣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이로 비쳐졌다. 백성호 기자

 
2500년 전의 인도나, 2000년 전의 이스라엘이나 어찌 보면 비슷했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종교, 인도의 브라만교와 이스라엘의 유대교는 박제가 돼 있었다. 사람들은 종교적 의식과 절차 등 껍데기만 중시했다. 알맹이는 놓쳐버린 지 오래였다. 더 이상 알맹이를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갠지스에 몸을 씻는 인도인도 그랬고, 율법에 목을 매는 유대인도 그랬다.  
 
해가 저물었다. 어둠이 내렸다. 나는 나룻배를 탔다. 갠지스 강물 위에는 조그만 불빛들이 떠다녔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야트막한 초를 담은 작은 접시들이었다. 그 위에 촛불이 커져 있었다. 물결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촛불들. 그들은 하나씩의 별이었다. 그 별무리가 갠지스의 물결을 타고 저 아래 하류로 흘러갔다. 인도의 힌두교인들은 지금도 믿는다. 그 별들이 시바신이 사는 하늘나라로 간다고 말이다.  
 


갠지스강 위로 어둠이 내렸다. 강 건너 화장터에는 지금도 누군가의 육신이 타고 있다. 갠지스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 그리고 영원을 묻는다. 갠지스를 만나는 자체가 거대한 삶의 물음을 만나는 일이다. 백성호 기자

 
나룻배에 걸터앉아 나는 생각했다. ‘흔들리며 흘러가는 별들. 그 별의 정체가 뭘까. 그건 인류사를 관통하며 내려오는 오래된 목마름이다. 자유로운 삶, 평화로운 삶, 소멸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갈망이다.’ 그런 갈망을 품고서 싯다르타도 이 강가에 왔을 터이다. 그때도 강물 위로 별들이 흘렀을까. 싯다르타도 하염없이 그걸 바라보았을까. 사각사각 내리는 어둠 속에서 나는 『법구경(法句經)』의 한 소절이 떠올랐다.    
 
 ‘영혼이 새벽처럼 깨어있는 자,
  참을성이 강하고 고개 숙일 줄 아는 자,
  이런 사람을 만나거든
  그의 뒤를 따르라.
  저 별들의 뒤를 따르는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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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인도)=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제자 5명에서 1000명으로 … 막힌 가슴 뻥 뚫어준 붓다



백성호의 현문우답 - 붓다를 만나다 (20) <끝>
붓다가 삶에 고뇌하던 청년 야사를 만났던 사르나트의 사슴동산. 붓다가 첫 설법을 한 곳이기도 하다. 백성호 기자

붓다가 삶에 고뇌하던 청년 야사를 만났던 사르나트의 사슴동산. 붓다가 첫 설법을 한 곳이기도 하다. 백성호 기자

 
바라나시는 고대 인도에서 굉장히 큰 도시였다. 무역으로 큰돈을 번 상인들도 많았다. 한 부잣집 아들이 새벽 무렵에 사슴동산을 찾아왔다. 그동안 그는 온갖 물질적 풍요와 쾌락을 누리며 살아왔다. 그 끝은 늘 허망함이었다. 쾌락은 영원하지 않았고, 지속되지도 않았다. 그는 사슴동산을 거닐며 “삶이 너무 괴롭다”라고 탄식했다. 그건 덧없는 삶, 덧없는 욕망의 종점에 대한 절규이기도 했다.
 

붓다, 공양 음식 먹고서 식중독
죽음 앞두고 오히려 상대 위로
열반 순간에도 삶의 이치 설법
붓다 유언, 부지런히 정진하라

사슴동산에 있는 스투파 둘레를 한 외국인 수행자가 돌고 있다. 그는 어떤 고뇌를 무너뜨리고 있는 걸까. 백성호 기자

사슴동산에 있는 스투파 둘레를 한 외국인 수행자가 돌고 있다. 그는 어떤 고뇌를 무너뜨리고 있는 걸까. 백성호 기자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하던 붓다가 그 탄식을 들었다. 젊은이의 이름은 야사였다. 그를 불렀다. 붓다는 ‘쾌락이 왜 허망한가’를 차근차근 이치로 설명했다. 쾌락의 감각, 그 감각을 통해 느껴지는 감정, 그 감정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생각. 그 모두의 정체가 ‘한 줄기 바람’임을 일깨웠다. 생겨났다, 작용하고, 소멸하는 바람 말이다. 그래서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허망함만 더 커지는 이치를 설했다. 마치 무지개를 움켜쥐려고 할 때처럼 말이다.
 
붓다는 사람의 감정이 일어났다가, 작용하고, 사라지는 것이라 했다. 그러니 바람이다.

붓다는 사람의 감정이 일어났다가, 작용하고, 사라지는 것이라 했다. 그러니 바람이다.


야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하게만 엉켜 있던 고통의 덩어리, 그 실타래가 하나씩 풀렸다. 한 올씩 풀릴 때마다 그의 마음에 창(窓)이 생겼다. 그 창을 통해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지금껏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는 삶의 상쾌함이었다. 이치의 명쾌함이었다. 야사는 결국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야사의 친구 50여 명이 왔다가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출가했다. 또 불의 신을 섬기던 가섭 삼 형제도 자신들을 따르던 제자 1000명을 데리고 붓다에게 출가했다. 붓다의 제자는 처음 5명에서 이제 1000명 이상으로 늘었다.
 
붓다가 열반하자 인도 북부의 쿠시나가르에서 다비식이 열렸다. 그 유적지를 찾은 스리랑카 출신의 한 수행자가 명상에 잠겨 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그 앞에서 좌선하며 삶과 죽음의 이치를 물었다.

붓다가 열반하자 인도 북부의 쿠시나가르에서 다비식이 열렸다. 그 유적지를 찾은 스리랑카 출신의 한 수행자가 명상에 잠겨 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그 앞에서 좌선하며 삶과 죽음의 이치를 물었다.


나는 바라나시의 시장통을 찾았다. 거기서 작고 낡은 냄비에 끓여서 파는 차이(인도식 홍차)와 사탕수수 주스를 마셨다. ‘붓다 당시 이런 시장통에서도 소문이 돌았겠지. 채소를 사고팔며 사람들은 붓다에 대해 말했겠지. 그렇게 바라나시 전역에 소문이 퍼졌겠지. 지금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가르침으로 한 스승이 사람들의 막힌 가슴을 뚫어준다고 했겠지.’
 
인도 쿠시나가르를 찾는 순례객들은 스투파에 향을 꽂는다.

인도 쿠시나가르를 찾는 순례객들은 스투파에 향을 꽂는다.


붓다는 제자 1000명을 이끌고 가야산에 오른 적이 있다. 산마루에서 잠시 쉴 때였다. 붓다는 산 아래를 바라보며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고 설법했다. “너의 눈이 불타고 있고, 너의 눈이 닿는 것마다 불타고 있다. 불타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그 세상도 불에 타고 만다.” 이스라엘 갈릴리의 산마루에서 설한 ‘예수의 산상수훈’과 비슷하다고 해서 ‘붓다의 산상설법’이라고도 부른다.
 
인도 중부의 산치에 있는 조각상. 붓다 당시 불을 섬기던 가섭 형제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백성호 기자

인도 중부의 산치에 있는 조각상. 붓다 당시 불을 섬기던 가섭 형제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백성호 기자


2600년 전에도 그랬고, 100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세상은 불타고 있다. 나의 마음이 불타고 있고, 나의 삶이 불타고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불타는 조선’을 말한 바 있다. 자식의 성공, 가문의 성공을 위해 당시 양반들은 과거 시험에 목을 맸다. 자식이 일곱 살, 여덟 살만 돼도 과거 시험 과목을 공부시켰다. 교육은 암기식으로 변질됐고, ‘이치와 도를 터득해 세상을 지혜롭게 꾸린다’는 성리학의 본래 목적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갈수록 과거 제도는 본래 취지를 잃었고, 그 와중에 백성의 고통만 가중됐다. 요즘도 그렇다. 굳이 ‘헬조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불타는 세상에서 불타는 삶을 살아간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호 이익이 남긴 '성호사설'. 이익이 풀어놓는 조선의 사회상도 '불타는 조선'이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호 이익이 남긴 '성호사설'. 이익이 풀어놓는 조선의 사회상도 '불타는 조선'이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쉬라바스티로 향했다. 쉬라바스티는 신라 때 ‘서라벌(徐羅伐, 경주)’로 음역 됐고, 다시 지금의 ‘서울’이 됐다. 이 도시에 기원정사가 있다. 붓다는 거기서 『금강경』을 설했다고 한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2600년 전의 벽돌과 사원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붓다가 거처했던 방 ‘여래향실’의 벽돌 터도 있었다. 당시 이곳에 1250명의 비구가 있었다고 한다.
 
붓다는 알았을까. 두 번의 천 년, 거기에 또 육백년이 흐른 뒤에 세계 각국의 제자들이 이곳을 찾아오리란 사실을 말이다. ‘내 마음의 불’을 끄고자 저마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리란 사실을 알았을까. 나는 신발을 벗었다. 맨발로 계단을 올랐다. 꽃잎이 가득 뿌려진 자리. 붓다는 그 자리에서 『금강경』을 설했다고 한다. 나는 그 앞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
 
쉬라바스티 기원정사의 한 나무 아래서 외국인 순례객이 신발을 벗고 가부좌를 튼 채 명상에 잠겨 있다.

쉬라바스티 기원정사의 한 나무 아래서 외국인 순례객이 신발을 벗고 가부좌를 튼 채 명상에 잠겨 있다.


불타는 마음, 불타는 삶, 그리고 불타는 세상. 어떡하면 그 불을 끌 수 있을까. 어디서, 어떤 물을, 얼마나 길어와서 부으면 그 불이 꺼질까. 붓다는 『금강경』을 설하며 이렇게 말했다. “상(相)이 상(相)이 아닐 때 여래를 보리라.” 쉽게 풀면 이렇게 바뀐다. “고집이 고집이 아닐 때 진실을 보리라.”
 
붓다는 묻는다. “네 마음의 불길이 언제 일어나는가? 너의 기대, 너의 잣대, 너의 바람, 너의 욕망에서 네 삶이 어긋나기 시작할 때 불길이 솟구치지 않나. 그러니 따져보라. 누가 그 불길에 장작을 공급하고 있는가. ‘내 마음이 불탄다, 내 삶이 불탄다’며 괴로워하면서도, 계속해서 잣대를 고집하고, 끝없이 장작개비를 밀어 넣고 있는 이가 누구인가.” 붓다는 이렇게 묻는다. 결국 나의 고집이 내 삶을 태우고, 우리의 욕망이 세상을 태운다.
 
내 마음을 태우는 장작은 과연 어디서 끝없이 공급되는 걸까. 붓다는 우리에게 그걸 묻는다.

내 마음을 태우는 장작은 과연 어디서 끝없이 공급되는 걸까. 붓다는 우리에게 그걸 묻는다.


붓다는 29세에 출가, 6년 고행을 하고서 35세에 깨달음을 이루었다. 이후 45년간 인도 북부의 각지를 돌아다니며 이치를 설했다. 그 와중에 숱한 일들이 있었다. 붓다의 조국 카필라 왕국이 이웃 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양어머니인 이모를 비롯해 부인과 아들이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붓다를 죽이려는 음모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붓다의 설법은 더 많은 인도인의 가슴을 뚫어주었다. 붓다는 “생겨난 모든 것은 소멸하게 마련”이라고 설했다. 붓다의 육신도 그랬다. 80세가 됐을 때 붓다는 “낡은 수레는 가죽끈의 힘으로 간다. 여래의 몸도 마치 가죽끈의 힘으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대장장이 집 아들 춘다가 수행자들을 식사에 초청했다. 대접받은 버섯(혹은 돼지고기) 요리를 먹고서 80세의 붓다는 식중독에 걸렸다. 피와 함께 설사가 쏟아졌다. 위독한 상태였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붓다는 오히려 춘다를 걱정했다. 이대로 숨을 거두면 사람들이 “춘다 때문에 붓다가 돌아가셨다”며 원망할 터였다. 춘다는 죄책감에 허우적거리며 고통받을 게 뻔했다. 붓다는 제자 아난을 불러 이렇게 전하라고 했다. “춘다여, 여래가 그대의 공양을 마지막으로 들고서 열반에 든 것은 그대의 공덕이며 행운이다. 춘다여, 나는 이 말씀을 붓다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인도 중부의 석굴에서 만났던 붓다의 조각상. 석굴암 불상처럼 바깥에서 햇볕이 들어오자 불상의 얼굴에 혈색이 돈다. 백성호 기자

인도 중부의 석굴에서 만났던 붓다의 조각상. 석굴암 불상처럼 바깥에서 햇볕이 들어오자 불상의 얼굴에 혈색이 돈다. 백성호 기자

 
붓다에게는 아무런 원망이 없었다. 육신의 생명이 꺼져가는 와중에도 춘다의 마음을 챙겼다. 나는 거기서 붓다의 사랑을 읽는다. 그 사랑에는 잣대가 없다. 음식을 먹고 위독한 상황에 처했다면 누구에게나 ‘불타는 삶’이다. 우리라면 어땠을까. 춘다에 대한 원망의 장작을 계속 집어넣으며 불길을 더 키우지 않았을까. 불길이 커질수록 우리의 고통도 덩달아 커질 줄 뻔히 알면서 말이다. 붓다는 달랐다. 그의 마음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쿠시나가르의 열반당. 안에는 붓다의 마지막 열반을 그린 열반상이 안치돼 있다. 백성호 기자

쿠시나가르의 열반당. 안에는 붓다의 마지막 열반을 그린 열반상이 안치돼 있다. 백성호 기자

 
나는 버스를 타고 쿠시나가르로 향했다. 식중독에 걸린 몸으로 고향을 향해 가던 붓다가 중간에서 숨을 거둔 곳이다. 쿠시나가르에는 열반당이 세워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한가운데 붓다의 열반상이 누워 있었다. 순례객들은 열반상의 두 발에 손을 대며 기도를 했다.
 
열반 직전이었다. 붓다는 제자들을 불렀다.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너희에게 간곡하게 말한다.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열반당 안에 안치된 열반상. 남방불교에서는 열반상을 모신 사찰들이 꽤 많다. 백성호 기자

열반당 안에 안치된 열반상. 남방불교에서는 열반상을 모신 사찰들이 꽤 많다. 백성호 기자

 
자신의 육신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붓다는 이치를 설했다. ‘지금 나의 육신이 무너지듯이, 머지않아 너희의 육신도 무너진다. 생겨난 것은 모두 무너지게 돼 있다.’ 육신의 무너짐, 그게 이치인 줄 알면서도 우리는 붙든다. 집착한다. 고집을 부린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불이 붙는다. 붓다는 달랐다. 불이 붙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의 마음이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치에 흠뻑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열반당의 한쪽 구석에 가서 앉았다. 눈을 감았다. 붓다의 마지막 유언이 떠올랐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 쉼 없이 나아가라!” 무슨 뜻일까. 적시라는 말이다. 자신을 이치에 흠뻑 적시라는 뜻이다.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둔 원망의 장작, 미움의 장작, 고집의 장작에 불이 붙지 않게끔 말이다. 그래서 자유롭게 가라고 말한다. 이치에 젖은 장작을 짊어지고 불타는 삶, 불타는 세상을 지나가라고 말한다.
 
인도 쿠시나가르를 찾는 순례객들은 열반상 둘레를 돌면서 기도를 했다.

인도 쿠시나가르를 찾는 순례객들은 열반상 둘레를 돌면서 기도를 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붓다 8대 성지

붓다 8대 성지

 
붓다를 만나다'는 20회로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붓다를 만나다'는 20회로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쿠시나가르(인도)=글·사진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백성호의 현문우답

백성호의 현문우답



[출처: 중앙일보] 제자 5명에서 1000명으로 … 막힌 가슴 뻥 뚫어준 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