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국제부 기자들이 2018년을 맞아 새로운 시리즈 [알쓸로얄]을 선보입니다. 2017년의 [알쓸신세-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 뉴스]의 자매품 격인 [알쓸로얄]은 현대 지구촌에 존재하는 절대군주 혹은 입헌군주제 국가들의 이면을 들여다봅니다.
2016년 통계로 이런 군주제 국가는 총 43개국이나 되는데요, 이 가운데 영연방 국가에 속한 나라가 16개국입니다. 지역도 다양해서 벨기에·모나코 등 유럽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바레인 등 중동에도 왕정이 존재하고 일본·부탄·태국 등 아시아와 레소토·스와질란드 등 아프리카에도 있지요.
세계 어느 곳에 있건 부와 명성을 타고나는 왕족들은 숙명적으로 대중의 관심 속에 권력·애정 다툼에 휘말리게 됩니다.
그런 ‘알고 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로얄 이야기’를 [알쓸로얄]에서 들려드리겠습니다. 1편은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쫓겨난 이란 팔라비(팔레비) 왕조 이야기입니다. 수천년을 호령한 페르시아 제국에서 이어졌던 팔라비 왕조는 혁명으로 이란 땅에서 쫓겨나긴 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답니다.
미국에서 권총 자살한 팔라비 왕자
최근 중동의 맹주 이란이 연일 반정부 시위로 시끄러웠습니다. 민생고를 호소하던 시위대는 이슬람 신정 체제에 대한 비판을 넘어 ‘왕정 시대로 돌아가자’는 구호까지 외쳤지요. 이란 왕정이 폐지된 것이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혁명 때였으니 실제 그렇게 오래된 얘기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때 쫓겨난 팔라비(Farah Pahlavi, 또는 팔레비) 왕조가 미국에 망명 가 있는 것을 아시나요? 지금은 미국을 불구대천 원수 대하듯 하는 이란은 팔라비 왕조 때만 해도 미국과 ‘절친’ 관계였답니다.
아버지와 여동생의 죽음도 알리레자의 자살에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1941년 즉위했던 팔라비 국왕은 왕좌에서 쫓겨난 다음 해인 1980년 이집트에서 췌장암으로 사망했습니다. 2001년에는 당시 31세였던 막내딸 레일라가 영국 런던의 한 호텔에서 약물과용으로 숨졌습니다. 왕궁에서 쫓겨날 당시 9살이었던 레일라는 오랫동안 거식증과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왕관에 장식된 다이아몬드만 1469개
1966년 왕실은 세계적인 보석 브랜드 반클리프 아펠을 왕실 장식품을 만드는 공식 브랜드로 선정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보석세공 브랜드 50곳이 경합한 결과입니다. 국왕은 1959년 결혼한 세 번째 부인 파라 디바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파라 디바 왕비에겐 근대 이란 왕조 처음으로 ‘황후(Shahbanu)’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화려한 대관식을 열었습니다.
이란 전통에 따라서 왕관은 이란 중앙은행 내 국고에 보관된 보석으로만 장식해야 했습니다. 진귀한 보석들을 국외로 반출할 수 없었던 까닭에 당대 최고의 세공사로 불렸던 피에르 아펠이 프랑스 파리에서 이란 수도 테헤란으로 향했습니다. 아펠은 이란 중앙은행 지하 금고에서 몇 날 며칠 숙고한 끝에 왕관에 세팅할 스톤을 선정했습니다.
파라 팔라비 황후 외에 팔라비 국왕의 여동생과 딸들을 위한 주얼리 세트도 제작됐습니다. 지금도 반클리프 아펠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때 대관식을 브랜드 역사 최고의 기념비적 장면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차도르 벗어라" 이란 서구화 주도한 왕실
팔라비 왕조는 1925년 육군 장교 출신 레자 팔라비가 카자르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통치자로 등극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레자 팔라비 재임 기간 이란엔 횡단철도가 건설되고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는 지선이 만들어지는 등 근대국가의 인프라가 확충됐습니다. 도로·학교·병원이 건설됐고 34년 첫 대학교가 창설되기도 했습니다. 35년엔 궁정 여성들에게 차도르를 벗으라는 명령이 내려지는 등 개방화·서구화 정책이 추진됐습니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의 옛 모습을 담은 한장의 사진이 미국 언론을 중심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지금은 아프간이 원리주의 이슬람을 신봉하는 탈레반 세력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지만 수십 년 전 탈레반이 권력을 휘두르기 전에는 여성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활보하는 근대국가였음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왕실 사치가 원리주의 무슬림 '혁명' 불러
팔라비 왕조의 몰락을 역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왕권 안정을 위한 국방비 증액과 함께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면서 생필품 부족 등에 대한 국민의 불만도 쌓여갔다. 여기에 이슬람 전통을 중시하는 원리주의 무슬림·민족주의 세력이 힘을 얻으면서 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란에서 쫓겨난 팔라비 왕족은 뿔뿔이 흩어졌다가 미국을 중심으로 정착합니다. 호화로운 왕관을 뽐냈던 팔라비 황후 역시 미국에 현재 건재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이들은 해외로 흩어진 이란인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 속에 사실상의 신정국가인 이란에 ‘불손한’ 전파를 송출하고 있답니다.
이란 대중문화를 은밀히 파고드는 이란 왕실과 국외 이란인들 미디어의 ‘선전선동’에 대해선 다음 편에 들려드리겠습니다. 보너스로 '아시아의 비너스'로 불렸던 팔라비 국왕의 다른 왕비들 얘기도 기대하세요.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알쓸로얄] 보석 1541개 박힌 왕관 썼던 이란 황후의 몰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