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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대통령이 원전 세일즈에…‘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격’?

이강기 2018. 2. 4. 16:26

탈핵 대통령이 원전 세일즈 나선다

주간동아입력 2018-02-03 20:46수정 2018-02-03 20:52


    
1월 9일 청와대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행정청장.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자신과 아부다비 왕세제의 교차방문을 요청했다. [동아일보]

전기는 100을 생산해 100을 소비하는 식으로 유통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동 중인 발전소가 갑자기 멈추면 발전량이 소비량을 맞추지 못해 모든 전기가 나가는 블랙아웃(black out) 현상이 일어난다. 블랙아웃은 국가적 위기이기에 보통은 15%가량을 더 발전(發電)한다. 전기는 저장이 어려워 소비되지 않은 예비전력 15는 버린다.

그런데 전기 소비는 일정하지 않다. 매우 덥거나 추우면 급증한다. 그럼 예비전력으로 대응하다 그마저도 부족하면 쉬고 있는 발전소를 돌린다. 대기 중인 발전소에 가동 명령을 내리는 것을 ‘급전(給電)지시’라 한다.  

그래도 감당하지 못하면 특정 지역의 전기 공급을 끊어 블랙아웃을 피한다. 강제정전을 당한 지역 주민들로부터 엄청난 항의를 듣지만, 그래도 블랙아웃보다 낫다. 2011년 9월 우리는 피크타임을 견디지 못해 몇 개 지역의 전기를 돌아가면서 끊는 순환 강제정전을 시행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했을 때 만난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을 청와대에서 다시 만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임 실장은 원전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아일보]

○ 강추위에 전력수요 급증하자 원전 가동 

피크타임은 하루 3~4시간, 길어도 12시간을 넘기 어렵다. 연중 한두 차례인 피크타임에 대처하려고 발전소를 많이 지어놓으면 평소에는 놀려야 한다. 그래서 피크타임 때 전기 소비가 많은 공장을 잠시 멈추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공장을 세우면 여유가 생겨 발전소를 돌리는 것과 결과가 같으니 이것도 ‘급전지시’로 명명했다.


2014년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는 급전지시에 응할 공장을 모집했다. 참여하는 것 자체로 사전에 상당한 대가를 주고 피크타임 때 공장을 세우면 추가로 혜택을 주는 조건이었다. 2014년 산자부는 급전지시를 한 번 내렸다. 2015년에는 피크타임이 없어 내리지 않았고, 2016년에는 두 번 내렸다. 1년에 한두 번 공장을 세우고 상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참여 공장이 3000여 개로 늘어났다. 이를 위한 정부 지원금 총액은 약 1700억 원에 달했다. 이들이 평소 쓰는 전기량은 우리나라 전기소비량의 5%(약 430만kW) 수준이었다.  

한국은 그동안 발전단가가 싼 원전을 활용해 전기요금을 낮게 유지해왔다. 그런데 탈원전을 내건 문재인 정부는 원전을 더 짓지 않기 위해 전기소비량과 증가량을 적게 잡은 8차 전력수급(需給) 기본계획을 만들었다.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전기가 많이 필요하지 않으니, 원전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게 주된 논리였다. 이어 한빛 4호기 원자로 건물의 철판이 부식됐다는 것 등을 이유로 다른 원전도 조사에 들어갔다. 이를 위해 24기 원전 가운데 11기의 가동을 멈췄다.  


그런데 이번 겨울 맹추위가 급습해 전기 수요가 폭증하자 급전지시를 8번이나 내려야 했다. 한두 번 세울 때는 군소리가 없던 공장주들이 “이렇게 자주 세우면 어떡하란 말이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맹추위가 수그러들지 않자 진퇴양난에 처한 정부는 발전단가가 매우 비싸 정말 시급하지 않으면 돌리지 않는 구식 가스발전소를 가동하게 했다. 탈원전을 하면서 문 정부는 향후 5년간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한국전력공사(한전) 등이 “전기요금은 붙잡아놓고 비싼 가스발전소만 돌리면 적자가 난다”고 아우성치자 그제야 문 정부는 멈춰놓았던 원전의 가동을 허가했다. 그리고 “공장 세우는 것을 전기를 공급하는 급전(給電)으로 부르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지적에 밀려 ‘수요 감축 요청’으로 개명했다.  

청와대의 탈원전에 일변도 분위기에 브레이크를 건 인물이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알려져 있다. 집권 초기 청와대에서는 김수현 사회수석과 문미옥 과학기술보좌관 등이 탈원전 분위기를 만들었으나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결정, 아랍에미리트(UAE) 사태, 피크타임 대체 실패 등으로 임 실장의 입지가 넓어졌다. 임 실장의 중재로 한국에 온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은 문 대통령을 만나기까지 했다.  

몇 년 전 영국이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을 시작했을 때 한국은 조건이 좋지 않다며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영국은 ‘한국 원전이 싸고 안전하다’는 이유로 한전을 초청해 무어사이드 원전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했다.

한국이 건설 중인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동아DB]

○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격” 

사우디아라비아도 원전을 지으려 한다. 사우디는 2015년부터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함께 2조 원대의 중소형원자로 ‘스마트’ 건설 사업을 해오고 있다. 사우디는 지난해 원전 사업을 시작했는데, 문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사우디는 한국의 원전 기술을 잘 아는 데다 형제국인 UAE의 권유도 있어 영국처럼 최근 한국 정부에 원전 수출 의사를 타진했다. 이에 임 실장 등이 줄탁동시(啄同時)로 호응하자, 청와대 분위기는 ‘탈원전을 하더라도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원전 수출은 하자’는 쪽으로 돌아섰다.  

탈원전 정책 기조를 내세우던 문 대통령은 담당부처인 산자부의 장관으로 전지 분야 전문가인 백운규 한양대 교수를 임명했다. 당시 청와대 기조가 탈원전이었으니 백 장관도 탈원전 정책을 따랐다. 그런데 임 실장의 활약으로 기조가 바뀌자 그도 노선을 수정했다. 원자력 분야에서 근무해온 공직자들을 중용한 것이다. 백 장관은 2월 한국이 짓고 있는 UAE 바라카 원전을 둘러보고 사우디도 방문하는 원전 세일즈 외교에 나설 예정이다.  

한국은 기일에 맞춰 UAE 원전 공사를 마무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원전을 운영할 회사인 나와(NAWAH)의 준비가 부족해 UAE는 준공일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UAE는 한국 측에 원전 운영도 지원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청와대는 원전 수출 확대를 위해 문 대통령의 UAE 및 사우디 방문을 적극 검토 중이다. 백 장관의 2월 방문은 이에 대비한 사전 작업인 셈이다.


원자력업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원전 세일즈 외교는 3~4월 중 이뤄질 듯하다. 원전 관계자들은 “왼쪽 깜빡이를 켜놓고 우회전하는 격”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것이 국익에는 도움이 되는 길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청와대가 탈원전 기조와 원전 수출 확대라는 이율배반적 상황을 어떻게 정리할지 궁금한 시점이다.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8년 112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Main/3/all/20180203/88495167/1#csidx7dce4b67be55d3eb8a2aea294fd6a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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