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物

로자 룩셈부르크

이강기 2018. 4. 5. 09:04

[장석주의 사물극장] [40] 로자 룩셈부르크의 '새와 꽃, 조약돌'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 조선일보

입력 : 2018.04.05 03:10

칼럼 관련 일러스트
1893년 취리히에서 열린 제3차 인터내셔널에서 불과 스물두 살의 여성이 '폴란드 왕국 사회주의당'의 존재를 알리며 국제무대에 등장한다. 첫 번째 여성 마르크스주의자, '자본축적론'을 쓸 만큼 역량을 갖춘 여성,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반전 시위를 이끈 '붉은 로자'.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의 생애는 앎과 삶이 하나로 포개진 것이었다. 레닌은 혁명가 로자를 가리켜 '독수리가 암탉보다 낮게 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암탉은 결코 독수리보다 높이 날 수 없다. 그녀는 독수리였으며 독수리로 남을 것이다'라고 했다.

로자는 제정 러시아에 병합된 폴란드의 한 도시의 유대인 부르주아 가정에서 다섯 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려서 골수 결핵을 앓아 다리를 절룩이는 장애를 안고 살았다. 열다섯 살 때 지하 프롤레타리아당에 가입하고, 애국주의 비밀결사에 뛰어들었다. 이 당찬 열여덟 살 소녀는 국경을 넘어 스위스 취리히로 망명했다. 거기서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신문사에서 교정(校正)을 보며 취리히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한편,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교유했다.

강철 심장으로 단련된 로자는 '차가운 태양'이요 '불타는 눈송이'였다. 고양이를 사랑하고, 괴테와 톨스토이 소설을 즐겨 읽던 혁명 전사(戰士)는 인간에게 절망할 때 작고 여린 새와 꽃과 조약돌에 눈길을 돌렸다. 로자는 당 집회에서 반전을 주장하고 파업을 선동했다. 반(反)국가 음모죄와 선동죄 등으로 감옥을 자주 드나들고, 암살의 위협을 받았지만 로자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1914년 유럽이 전쟁에 휘말리고, 1917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다. 세계는 군국주의와 민족주의가 발호하며 '광기의 시대'로 들어섰다. 1919년 1월 15일 밤, 로자는 체포되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로자의 왼쪽 관자놀이를 총알이 꿰뚫었다. 군인들은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여성의 시신에 돌을 매달아 국경 운하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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