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이어 '흰' 영어 번역에도 오류 많아"
- 조선일보
입력 : 2018.05.02 03:00 | 수정 : 2018.05.02 11:30
맨부커 최종심 오른 한강 소설 '흰'
'채식주의자' 논문쓴 김욱동 교수 '흰'에서도 어휘·문법 오류 발견
"韓문학 세계화위해 더 엄격해야"
맨부커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오른 한강(48)의 소설 '흰'(The White Book)에서 오류가 여럿 발견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번 영역(英譯)도 한강의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 '채식주의자'를 옮긴 영국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31)가 맡았다. 맨부커상은 작가와 번역자 모두에게 수여된다.
지난달 미국 국제학술지(Translation Review)에 '채식주의자' 오역 지적 논문을 실은 김욱동(70) 번역가 겸 서강대 명예교수는 최근 '흰' 영역본을 검토한 뒤 "'팔'과 '다리'조차 구별 못 했던 '채식주의자'에 비해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다"면서도 "'흰' 역시 오역이나 졸역(拙譯)을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흰'은 태어나 2시간 만에 숨진 작가의 친언니를 향한 기억에 바탕해 강보·배내옷·소금 등 세상의 흰 것에 대한 사유를 담은 65편의 시(詩)처럼 짧은 글이다.
지난달 미국 국제학술지(Translation Review)에 '채식주의자' 오역 지적 논문을 실은 김욱동(70) 번역가 겸 서강대 명예교수는 최근 '흰' 영역본을 검토한 뒤 "'팔'과 '다리'조차 구별 못 했던 '채식주의자'에 비해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다"면서도 "'흰' 역시 오역이나 졸역(拙譯)을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흰'은 태어나 2시간 만에 숨진 작가의 친언니를 향한 기억에 바탕해 강보·배내옷·소금 등 세상의 흰 것에 대한 사유를 담은 65편의 시(詩)처럼 짧은 글이다.
먼저 김 교수가 지적한 것은 어휘다. 예를 들어 수록작 '배내옷'에서 "달떡처럼 얼굴이 흰 여자아이" 부분의 "달떡"이 "a crescent-moon rice cake"(초승달 떡)로 번역됐는데, 갓난아이의 둥글고 흰 얼굴을 묘사하는 달떡을 "초승달"로 옮기는 건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 다른 수록작 '달떡'에 송편이 언급돼 있어 착각한 듯하다"고 부연했다. '문'에서는 "칠이 흐려져 있었다"가 "the paint had run"으로 번역됐는데, 김 교수는 "'흐려지다'를 '흘리다'와 혼동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스미스의 번역에서 더 심각한 문제는 문장 구조와 관련한 통사론적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어 문장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대목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여기가 어딘지, 방금 무엇이 시작됐는지 모르는 사람"('강보')을 스미스는 "Person who does not know who they are, where they are, what has just begun"으로 옮겼는데, 여기서 'Person'은 갓난아이임에도 3인칭 단수형이 아닌 복수형 'they'를 써서 문법적 혼란을 일으켰다는 지적이다. '흰 도시'에서도 "이 도시와 같은 운명을 가진 어떤 사람. (중략) 그을린 잔해들 위에 끈덕지게 스스로를 복원한 사람"은 "A person who had met the same fate as that city. (중략) Who had painstakingly rebuilt themselves on a foundation of fire-scoured ruins"로 번역됐다. 단수형 'A person'을 복수형 'themselves'로 받은 것. 김 교수는 "일단 문법이 틀리니 번역의 의도를 모르겠다"며 의아해했다.
김 교수는 "스미스의 번역에서 더 심각한 문제는 문장 구조와 관련한 통사론적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어 문장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대목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여기가 어딘지, 방금 무엇이 시작됐는지 모르는 사람"('강보')을 스미스는 "Person who does not know who they are, where they are, what has just begun"으로 옮겼는데, 여기서 'Person'은 갓난아이임에도 3인칭 단수형이 아닌 복수형 'they'를 써서 문법적 혼란을 일으켰다는 지적이다. '흰 도시'에서도 "이 도시와 같은 운명을 가진 어떤 사람. (중략) 그을린 잔해들 위에 끈덕지게 스스로를 복원한 사람"은 "A person who had met the same fate as that city. (중략) Who had painstakingly rebuilt themselves on a foundation of fire-scoured ruins"로 번역됐다. 단수형 'A person'을 복수형 'themselves'로 받은 것. 김 교수는 "일단 문법이 틀리니 번역의 의도를 모르겠다"며 의아해했다.
스미스 번역이 특히 비판받는 부분은 역자의 과도한 윤문이다. 정과리 연세대 교수 등 국내 학자들이 '채식주의자' 번역을 "자의적 해석이 들어간 제2의 창작"이라며 평가절하한 이유다. 김 교수 역시 "'흰' 원문의 축소·과잉 번역이 눈에 띈다"며 수록작 '강보'의 예를 들었다. "갓 태어난 새와 강아지보다 무력한, 어린 짐승들 중에서 가장 어린 짐승"이란 문장은 "The most helpless of all young animals, more defenceless even than a newborn chick"으로 번역됐다. 원문의 '새와 강아지'가 사라지고 '갓 부화한 병아리'가 등장한 것이다. 김 교수는 "이것이 스미스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창조적 번역'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이는 "창조적이지 않은 번역은 있을 수 없다"는 스미스의 기존 입장을 비꼰 것이다.
스미스의 방식에 공감하는 국내외 전문가도 적지 않다. "원작보다 잘 읽히도록 가공해 널리 알려지고 문학상도 받으면 좋은 것 아니냐"는 것. 다만 김 교수는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려면 축제 분위기에 들떠 '이 정도면 되지 않느냐'에 그쳐선 안 된다. 피곤하더라도 사소한 것을 하나씩 짚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 연구를 다듬어 국제 학술지에 발표할 예정이다. 올해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은 22일 발표된다.
스미스의 방식에 공감하는 국내외 전문가도 적지 않다. "원작보다 잘 읽히도록 가공해 널리 알려지고 문학상도 받으면 좋은 것 아니냐"는 것. 다만 김 교수는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려면 축제 분위기에 들떠 '이 정도면 되지 않느냐'에 그쳐선 안 된다. 피곤하더라도 사소한 것을 하나씩 짚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 연구를 다듬어 국제 학술지에 발표할 예정이다. 올해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은 22일 발표된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01/2018050102663.html
'文學, 語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일제에 맞선 詩, 민족적 양심ㆍ실존적 성찰의 등불 되다 (0) | 2018.05.07 |
---|---|
Whatever Happened to the Book Herman Melville Wrote After ‘Moby-Dick’? (0) | 2018.05.03 |
T.S. Eliot Was A Terrible Hip-Hop Artist/Discoveries (0) | 2018.04.29 |
4월은 왜 가장 잔인한 달이 됐을까 (0) | 2018.04.23 |
Kay Boyle Knew Everyone and Saw It All (0) | 2018.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