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뀐 집필기준에 27년 전 논쟁 재연
새 역사교과서 교육과정과 집필기준 시안에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이 빠지면서 역사학계의 해묵은 논쟁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교육과정은 학생이 반드시 배워야 할 내용이고, 집필기준은 교육과정을 어떻게 교과서에 담을지를 정리한 지침이다. 출판사는 교과서를 만들 때 집필기준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 논쟁은 2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데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1991년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면서 1948년 유엔 총의 결의안에 대한 해석 문제가 불거졌다. 보수진영에선 종전처럼 한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한민국이 ‘유엔한국임시위원단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 수립된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유엔 결의안은 1948년 당시 선거가 가능한 ‘남한지역에서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봐야 한다는 게 진보진영의 주장이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일부 출판사가 2009 개정 집필기준과 달리 합법정부의 전제로 ‘38도선 이남 지역’이라는 단서를 달자 교육부는 “객관적 사실을 오해하도록 했다”며 수정 명령을 내렸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이 유지됐으나 이번에 빠진 것이다.
● “역사교과서에 정치색 입히는 정권이 문제”
학계의 평가는 엇갈린다.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아니라면 6·25 전쟁 당시 유엔군의 개입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1948년 총선거 당시 유엔 임시위원단은 소련의 반발로 북쪽에 가지 못했다”며 “임시위원단이 관리한 선거는 한반도 남쪽뿐이기에 ‘한반도 이남’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해석해야 한다”고 맞섰다.
대한민국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주의’인지 ‘민주주의’인지도 오랜 논쟁거리다. 노무현 정부까지 역대 모든 역사교과서에서는 민주주의라고 기술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꿨다. 민주주의라고만 쓰면 북한의 정치체제인 ‘인민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보수 진영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도 이를 유지했으나 정권 교체와 함께 다시 민주주의로 원상 복귀했다.
김덕수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정권의 양 극단에 있는 사람들이 역사교육을 자기 생각대로 하려다보니 소모적 논쟁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