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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한국 모델’ 논쟁

이강기 2018. 6. 4. 09:02

횡설수설

터키의 ‘한국 모델’ 논쟁

동아일보
 2018-06-04 03:00수정 2018-06-0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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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키 병사 슐레이만에게 한국은 평생 애틋한 나라였다. 피보다 진한 정(情)을 나눈 다섯 살짜리 한국 소녀를 만난 곳이기 때문이다. 슐레이만은 전쟁 통에 부모를 잃은 소녀에게 터키어로 달을 뜻하는 ‘아일라’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정성껏 보살폈다. 아일라도 그를 ‘바바’(아버지)라며 따랐다. 곧 개봉하는 한-터키 합작영화 ‘아일라’는 이들이 전쟁이 끝나며 헤어진 뒤 60년 만인 2010년 기적처럼 만난 사연을 담았다.  


▷터키인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 한국전쟁에서의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 자연히 전쟁 후 최빈국이던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데 대한 관심도 높다. 한 달도 남지 않은 터키 대선 정국에서도 한국이 화제다. 제1야당 공화인민당의 무하렘 인제 후보가 ‘한국 모델’을 터키의 발전 모델로 제시한 데 따른 것이다. 그는 유세마다 “터키가 베네수엘라처럼 되려는가, 한국처럼 되려는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는 ‘한국 논쟁’으로 번졌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이끄는 친이슬람 성향의 정의개발당은 ‘한국 모델=미국 추종’으로 규정했다. 한 친여 매체는 “한국은 미국의 점령 아래 있는 나라”라며 그 근거로 서울의 중심에 미군기지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도 걸고넘어졌다. 다른 유력 일간지 칼럼니스트도 “째진 눈의 아시아인을 통해 팝송을 들려주는 게 서양의 전략”이라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놨다.  

▷이들의 논쟁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에 대한 얄팍한 이해에 실소가 나올 따름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타국의 사정을 국내 정치에 끌어들여 찧고 까부는 일이 먼 나라 얘기만도 아니다. 지난해 말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특사 방문 이유를 놓고 탈원전 정책 불만 무마용, 왕가 비자금 마찰설 등 갖가지 ‘설(說)’이 쏟아진 게 대표적이다. 당시 한 UAE 교민이 필자에게 “한국 참 웃기는 동네”라는 현지 분위기를 이메일로 보내온 게 기억난다.  
 
홍수영 논설위원 gaea@donga.com 



“째진 눈” “美 점령지”… 터키 친정부언론, 한국 비하 왜?

동아일보
2018-06-04 03:00수정 2018-06-04 09:13


野대선후보 “한국이 롤모델” 강조에 親與 일간지 왜곡된 반론 칼럼 실어24일 실시되는 대선·총선을 앞두고 터키에서 잇달아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과 한류를 비하하는 칼럼들이 현지 신문에 실려 논란이 되고 있다. 제1야당의 대선 후보가 유세 과정에서 한국을 터키가 가야 할 발전 모델로 언급하자 친정부 언론이 이를 반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국 때리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터키 유력 일간지 예니샤파크의 필진 파루크 악소이는 지난달 31일 칼럼을 통해 “서구화를 원하면서도 이를 드러내는 데 눈치를 보는 이들이 ‘한국처럼 되고 싶다’고 말한다”며 “한국(모델)이라는 말은 미국을 기쁘게 하는 것이고 아무런 의문과 생각도 품지 않고 나라를 미국의 문화에 바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정의개발당(AKP)의 의중을 대변하는 친정부 성향의 매체다.

그는 같은 칼럼에서 한국의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을 사례를 들며 인종차별적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악소이는 “째진 눈의 아시아인을 통해 팝송을 들려주면서 사람들에게 이것을 보수적(자신의 것을 보존한다는 의미)이라 여기게 만드는 것이 바로 서양의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터키 일간지 아이든르크도 칼럼에서 한국을 ‘미국의 점령지’라고 왜곡했다. 이 칼럼은 “수도 서울의 중심에는 미군기지 본부가 있다”며 “한국은 미국의 점령 아래 있는 나라”라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의 프로젝트 국가’, ‘아시아에서 미국의 전진기지’ 등의 표현으로 한국의 위상을 깎아내렸다. 

이 같은 터키 친정부 매체들의 한국 폄하는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의 대선 후보 무하렘 인제가 최근 한국을 터키의 발전 모델로 계속 언급하면서 촉발됐다. 인제 후보는 지난달 25일 CNN튀르크 인터뷰에서 “198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이 터키와 비슷한 2000달러 수준이었던 한국은 교육을 통해 기술 인력을 대거 배출했고 그 결과 국민소득이 3만 달러까지 불어났다”며 “우리도 교육 투자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흘 뒤 서부 대도시 이즈미르 유세에서도 ‘터키가 베네수엘라처럼 되려는가, 한국처럼 되려는가’라고 반문한 뒤 “석유 부국인 베네수엘라는 화장실 휴지조차 사기 어렵게 된 반면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로 발전했다”며 한국을 칭찬했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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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Main/3/all/20180603/90387604/1#csidxddd59ddb63088da90bfa28eec2f58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