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韓.유럽 關係

'우파 포퓰리즘'이 불길처럼 유럽 대륙에 번지고 있다

이강기 2018. 6. 8. 09:13

[이철민의 뉴스 저격]

'우파 포퓰리즘'이 불길처럼 유럽 대륙에 번지고 있다

조선일보
  • 이철민 선임기자       
  • 입력 2018.06.08 03:13

    오늘의 주제: 왜 포퓰리즘 정당 득세하나

    '하나의 유럽'을 꿈꾸는 유럽연합(EU)의 모태는 유럽경제공동체(EEC)이다. 이 EEC를 창설한 로마조약(1957년)이 체결된 이탈리아 로마에선 이달 1일, '탈(脫)유럽연합'을 내건 극좌·극우 포퓰리즘 2개 정당의 연립정권(연정)이 들어섰다.

    같은 날, 스페인 사회당은 제3당인 극좌 포퓰리즘 정당 포데모스의 도움으로 집권 국민당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키고 집권했다. 슬로베니아의 이달 3일 총선에선 '슬로베니아 퍼스트'를 외치는 극우 정당이 25%로 1위였다. 체코의 작년 10월 총선·1월 대선, 헝가리의 4월 총선의 승자(勝者)는 모두 포퓰리즘 정당이었다.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지중해 연안까지 유럽을 뒤덮는 포퓰리즘 물결의 원인은 무엇이고 파장은 어떤지를 짚어본다.

    ◇5개국 집권…16개국에서 聯政 참여 중

    지난해부터 이달까지 1년 반 동안, EU 28개 회원국에서 이뤄진 각종 선거에서 포퓰리즘을 표방한 정당은 22개국에서 약진하거나 승리했다. 포퓰리즘 정당은 이탈리아·그리스·체코·헝가리·폴란드 등 5개국에선 정권을 잡았고, 이들을 포함한 16개국에선 연정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3월 이탈리아 총선을 앞두고, 극우 포퓰리즘 ‘동맹’당 지지자들이 ‘이탈리아인이 먼저다(PRIMA GLI ITALIANI)’라는 구호를 내건 집회에서 동맹당 지도자 마테오 살비니의 연설에 깃발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지난 3월 이탈리아 총선을 앞두고, 극우 포퓰리즘 ‘동맹’당 지지자들이 ‘이탈리아인이 먼저다(PRIMA GLI ITALIANI)’라는 구호를 내건 집회에서 동맹당 지도자 마테오 살비니의 연설에 깃발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AFP 게티이미지

    이 중 가장 선두주자는 2015년 단독 정권으로 집권에 성공한 그리스의 극좌 포퓰리즘 정당 '시리자'이다. 이어 2016년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찬성 가결로 동력을 확보했고 작년 9월 독일과 노르웨이 총선에선 각각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진보당'이 제3당으로 도약했다. 10월 오스트리아 총선에선 자유당(FPO)이 최초로 연정 참여에 성공했다. 모두 우파 포퓰리즘 정당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작년 5월 프랑스 대선에서 '강력한 중도'를 내세운 에마뉘엘 마크롱이 이긴 것은 순간적인 예외였을 뿐이다.

    EU 내 포퓰리즘을 선호하는 지지도(支持度)는 2000년 8.5%대에서 지난해 24.1%로 16년 새 3배 가까이 뛰었다. 2007~2010년 유럽 경제 침체기를 넘기면 포퓰리즘이 수그러질 것이라는 전망은 착각으로 판명 난 것이다.

    ◇自國 최우선주의·엘리트 배격

    포퓰리즘(Populism) 정당은 사회를 '선량한 시민 대(對) 자기 이익만 챙기는 엘리트 기득권층'으로 나누고 대중 최우선주의를 내세운다. 또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같이 시민의 목소리를 곧바로 반영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사법부 독립이나 기성의 언론 자유 등은 중시하지 않는다.

    '이건 우리나라다'(프랑스 우파 포퓰리즘 '국민전선') '영국의 통제권을 되찾자'(브렉시트 지지자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트럼프 대통령)처럼 유럽연합 같은 국제주의를 외면하고 국가와 민족, 즉 철저한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한다.

    롤런드 프러이덴슈타인 '윌프라이드 마르텐스 유럽학센터' 정책국장은 "유럽에서 포퓰리즘이 번지는 것은 ▲경제 상황 악화 ▲외부 난민 대량 유입에 따른 문화적 정체성 혼란 ▲소셜미디어를 통한 선동적 구호 확산 등 세 가지 요인이 크다"고 말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2차 대전 후 교차 집권하던 중도 및 좌·우파 정당들과 난민 유입·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유권자들 사이에 괴리감이 커졌고 그 빈 공간을 포퓰리즘 정당이 메웠다"고 밝혔다.


    ◇중도 좌파 퇴조… "완전히 다른 유럽을"

    유럽 포퓰리즘의 물결은 당분간 더 거세질 분위기다. 기존 정당들까지 포퓰리즘 정책을 따라 하는 현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게 그 방증이다. 일례로 오스트리아 제1당인 보수 우파 '오스트리아국민당'은 이슬람인 경전(經典)인 코란의 유포를 제한하고 이슬람 사원에 대한 외국 정부 지원 금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터 총리(중도 우파 소속)는 공공장소에서의 부르카(무슬림 여성의 얼굴을 가리는 복장) 착용을 금지하고 "네덜란드인처럼 행동하지 않으려면 꺼지라"고 했다. 포퓰리즘이 인기를 끌기 전까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변화이다.

    그 파장으로 유럽 정계에서 중도 좌파 퇴조(退潮)세가 가속화하고 있다. 중도 좌파 정당인 프랑스 사회당·네덜란드 노동당·체코 사민당 등은 모두 최근 득표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독일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AfD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난해 총선 2위였던 사민당을 압도했다.

    서민 복지와 고용 안정, 사회적 불평등 축소 등을 내건 중도 좌파의 몰락 원인에 대해, 토니 바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유럽판 에디터는 "중도 좌파 정당이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 자부심이 매우 낮고, 난민 유입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무능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존 좌·우파 정당들이 유럽 사회와 자국 내 지배 엘리트층에 편입돼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안락한 구성원이 됐다는 불신감도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스웨덴과 덴마크의 중도 좌파 정당들은 최근 연이어 난민 신청 거부자의 신속한 추방·이슬람 종교학교 폐쇄 같은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포퓰리즘 정당들은 내년 5월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를 겨냥하고 있다. 선거 압승을 통해 'EU 탈퇴' 수준이 아니다. 프랑스 극우 '국민전선'의 니콜라 베이는 "현재 EU 본부가 구상하는 EU의 미래 모습을 완전히 허물고 완전히 다른 '또 다른 유럽(Another Europe)'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들판의 불길처럼 타오르는 인기를 감안한다면 허황된 꿈만도 아닌 것 같다.

    민주주의의 위기… "정치인들은 대중의 불만이 어디서 싹텄는지 살펴야"


    포퓰리즘은 사회적 불만을 토양으로 삼아, 엘리트층을 적대시하며, 대중 선동을 하는 게 특징이다. '오성운동'(이탈리아·M5S·2009년 창립), '독일을 위한 대안'(AfD·2013년) 같은 포퓰리즘 정당은 급격한 산업 변동·대량 이주·공동체 가치 훼손 등 최근 세계화가 초래한 혼란 속에서 태동했다.

    그리스의 극좌연합 '시리자'는 2004년 국가 채무 위기 당시 IMF·유럽집행위원회·유럽중앙은행의 긴축정책과 대량 실업을 맞아 '이익보다 사람이 먼저'를 구호로 출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수 엘리트가 성(性) 소수자와 불법 이민자 권익 보호에 관심을 쏟아 '진짜 미국인의 삶'이 위협당한다고 여기는 백인들의 위기감을 부추겨 당선됐다.

    하지만 포퓰리즘은 '사회적 재건'이란 순기능도 한다. 19세기 말 초호황 '금박(金箔)시대' 미국 정부가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에 맞서 대재벌의 석유·철도 카르텔을 해체한 것과 비스마르크가 유럽 사회주의 세력 견제를 위해 1880년대 의료·산재·연금보험을 실시한 게 이에 해당한다.

    포퓰리즘 전문가인 야사 멍크 하버드대 교수는 "주류 정치인들은 대중의 불만 원인을 파악하고, 민주주의의 도덕적 기초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했다. 경쟁자를 섬멸해야 할 적(敵)으로 보고, 다른 주장은 '가짜뉴스'로 몰고, 민주적 안전장치를 허무는 권위주의·포퓰리즘 등이 자유민주주의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을 학교에서부터 확실히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07/201806070425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