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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1㎏ 사려면 지폐 440장 있어야…인플레이션 100만%의 나라 베네수엘라

이강기 2018. 7. 28. 11:48

쌀 1㎏ 사려면 지폐 440장 있어야…인플레이션 100만%의 나라 베네수엘라


조선일보 

    
입력 2018.07.28 07:00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브라질산 수입쌀 1㎏의 가격은 22만볼리바르다. 종이컵 5개 분량의 쌀을 사려면 베네수엘라의 지폐 볼리바르화(貨) 중 가장 작은 단위인 500볼리바르를 440장 들고 가야한다는 얘기다. 우리돈 2000원이면 될 일이다.

일주일을 넘게 기다려야 겨우 살 수 있는 두루마리 휴지 네 개 묶음 한 팩은 17만볼리바르(약 1600원). 두 팩을 사면 베네수엘라 월 최저임금인 39만볼리바르의 86%를 써 버리는 셈이다. 치즈 1㎏을 사려면 한 달 월급만큼의 돈을 내야한다.

그나마 살 수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대부분의 수퍼마켓 선반이 텅 비어서 설탕, 커피, 스파게티면 등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하기 어렵다. 갓난아이에게 먹일 우유도 부족하다. 쌀을 겨우 구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요리를 할 수도 없다. 대통령은 월급으로 300만 볼리바르를 받지만 이 돈으로는 통조림 한 캔도 살 수 없다. 한때 남미에서 가장 잘살던 ‘원유 부국’ 베네수엘라의 처절한 경제 실상이다.

베네수엘라에서 집회 참가자가 ‘배고픔’이라고 쓰여진 대형 볼리바르화 지폐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로이터

지난해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은 4300%. 올해 연말엔 100만%에 달할 것이란 국제통화기금(IMF)의 예측까지 나왔다.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물가 폭등이다.

알레한드로 베르너 IMF 서반구 담당 국장은 23일 이런 예측을 내놓으며 베네수엘라의 물가 위기를 1923년 독일과 2000년대 짐바브웨의 상황과 비교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였던 당시 독일에서는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나 빵 한 덩어리를 사려면 수레에 돈뭉치를 실어날라야 했다.

IMF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계속 돈을 찍어내면 화폐 가치가 종잇조각보다도 못한 신세가 될 것이라 경고했다. 실제로 볼리바르화는 돈이 아닌 공예품으로서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카라카스에 사는 한 부부가 콜롬비아로 이주한 후 볼리바르화 지폐를 접어 가방이나 벨트로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2014년 4월 영국 가디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가디언
초인플레이션의 결과로 베네수엘라는 뜻하지 않게 ‘현금 없는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다. 지폐를 찍어내려면 외국에 위탁해야 하는데, 외화가 부족해 지폐 발행도 어렵다. 동네 작은 가게들도 전용 단말기를 갖추고 직불카드나 스마트폰으로 물건값을 받는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올해 2월 도입한 국가 차원의 가상화폐 ‘페트로’는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다.

베네수엘라 경제는 사실상 파탄났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원유는 GDP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국가 주 수입원인데, 몇 년 전부터 유가 하락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150만 배럴로 3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는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실정이다. 마두로 대통령은 남미 좌파벨트를 이끈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정권을 이어받은 후, 차베스의 좌파 포퓰리즘 정책을 계승했다. 유가가 높을 땐 원유 판매로 번 돈을 무상 교육과 의료 등 선심성 정책에 쏟아부었다.

마두로 정부가 시장 원리를 무시하면서 외국 기업과 자본은 베네수엘라를 빠져나가고 있다. 식량난에 굶주림을 참지 못해 외국으로 탈출하는 베네수엘라인도 급증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베네수엘라를 떠나 콜롬비아로 들어와 머무르는 베네수엘라인이 87만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 인구 3100만명 중 10%가 외국으로 빠져나갔다는 추정치도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2018년 7월 25일 올해 8월 20일부터 볼리바르화 지폐 단위에서 ‘0’을 다섯 개 뺀다고 발표했다. /AFP
베네수엘라 경제는 올해 3년 연속 두자릿수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마두로 대통령은 올해 5월 치러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경제 붕괴를 미국과 유럽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들의 제재로 경제 전쟁을 하느라 경제가 망가졌다는 것이다. 마두로 대통령의 재선으로 베네수엘라 경제가 살아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25일 오는 8월 20일부터 볼리바르화에서 ‘0’을 다섯 개 뺀다고 발표했다. 당초 ‘0’을 세 개만 빼려고 했으나 초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자 다섯 개로 늘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27/20180727022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