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대국 일본의 부활》
反日이라는 권력
한국에선 反日은 일종의 권력이다. 여기에는 여야도 없고 좌우도 없다. 親日이라는 딱지는 그 어떤 것보다 강한 주홍글씨가 되는 게 한국이다. 2005년인가 가수 조영남이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이라는 책을 출간했다가 거의 제목 그대로 될 뻔했다.
이런 분위기니 특히 정치판에선 친일 딱지 휘두르기가 위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매우 웃기는 건, 남에게 친일 딱지를 붙이며 날뛰는 정치인들의 상당수가 사실은 악명 높은 친일파의 후손인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부친이 독립운동을 했다고 내세우며 상대를 말끝마다 친일분자라 공격하던 자가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부친이란 자가 독립군을 때려잡는데 앞장섰던 악명 높은 ‘특무’였음이 드러났다. 부친이 일제 헌병의 오장 군조를 지냈는데 마치 독립투사였던 것처럼 행세를 한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심심찮게 반일친일 소극(笑劇)이 벌어지지만 정작 일본문제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수준은 매우 낮다. 친일이든 반일이든 알고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특히 반일에 목청을 높이는 부류들 치고 뭘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사죄가 없는 이상 우리에게는 전범국가이지 보통국가가 아니다.” 10월 31일 국회 외통위의 외교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의 김한길 대표가 한 말이다. “일본은 적국이지, 보통국가가 아니다.” 역시 같은 날 국감에서 민주당의 유인태 의원이 한 말이다. 일본을 미워하든 좋아하든 당사자 자유다. 그러나 맘대로 떠들어대는 건 창피한 일이다.
일본을 진짜로 적국으로 삼고 싶은가?
한반도가 일본에 침탈돼 합병된 것은 1910년이다. 일본이 전범으로 단죄된 태평양전쟁은 1941년 진주만 폭격으로 시작됐다. 일본이 우리에 대한 식민통치를 사죄를 하든 말든 그것과 일본이 2차 대전의 전범국가라는 사실은 애초에 관계가 없는 문제다. 우리는 일본에게 2차 대전 당시 침략 당한 나라가 아니다. 따라서 일본이 우리에게 그들의 식민통치에 대해 아무리 머리 조아려 사과를 한다 해도 그것을 이유로 일본이 2차 대전의 전범국가라는 사실을 우리가 마음대로 사면해 줄 수는 없다.
한국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올해로 48년, 거의 반세기가 지났다. 그동안 한일 양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에 걸쳐 긴밀하게 교류해 왔다. 그런데 일본이 적국이라고?
적국이라 함은 서로 총을 겨누는 것을 말한다. 일본을 적국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일본이 우리에게 총을 겨누어도 좋을 합법적 이유를 우리가 제공하는 것이다. 한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런데 집단적 자위권은 동맹국이 공격을 받았을 경우 지원을 하겠다는 개념이다. 그런 정도도 못 받아들이겠다면서 공격적 재무장의 확실한 명분을 우리 스스로 제공해준다? 일본으로선 정말 고마운 일이겠다.
아무리 유감이 있다고 해서 적국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런 선언은 총을 겨누고 군비경쟁을 하고 궁극에선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확실한 각오 없이는 결코 뱉어서는 안 되는 말이다. 평범한 이들의 술김의 사석에서라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책임 있는 정치인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여대는 건 국가에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일본과 적국이 된다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를 끝장내고 한편으로는 북한의 위협에 단독으로 맞서면서 또 한편으로는 세계 3위의 경제대국과 대결을 하겠다는 것이다. 냉정히 말해 그렇게 해서 한국이 일본에 이길 수는 있나? 더욱이 우리는 한반도에 대해 수천 년간 야욕을 행사해 온 중국을 또 다른 인접에 두고 있다. 또 다시 중국의 발아래서 사대(事大)를 하면서 ‘잘 지내고’ 싶은가?
일본에 대해 착각하면 안 된다
한국인만큼 일본의 실력에 무지한 사람들이 없다는 얘기가 있다.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이런 착각은 사실 역사적 뿌리가 깊다. 중국에는 머리를 숙이고 사대를 하면서도 일본은 왜놈이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한국인은 일본의 대부분의 문화는 한반도에서 전해진 것이라는 ‘자부심’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자부심을 갖겠다면 중국의 우리에 대한 우월감은 제동을 걸 여지가 없다. 게다가 현대 서구문명은 거의 전부가 일본을 통해서 한국으로 전해졌다. 일본이 그런 이유로 한국에 대해 자부심을 갖겠다면 한국인은 그에 동의해 줄 수 있는가?
한국인의 또 다른 착각 중의 하나가 일본이 작은 나라라는 생각이다. 한국인은 섬나라라는 것을 작은 나라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 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대영제국도 섬나라다. 더욱이 일본 열도는 남한만 비교하면 약 3.8배, 한반도 전체를 비교해도 1.7배에 이른다. 인구도 1억 2천 7백만으로 남한에 대해선 2.5배 한반도 전체 인구에 대해서도 1.7배가 된다.
일본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 20년이 되는 등 경제적으로 오랜 침체기를 겪었다. 반면 그 사이 한국은 급성장하여 이제는 많은 부문에서 맞상대를 넘어 더러는 앞서는 분야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저력은 여전히 막강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중국에 비해 순위가 처졌다지만 여전히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다.
중국이 욱일(旭日)의 성장세로 미국조차 위협하는 듯하자, 일본은 더 이상 관심거리조차 못될 듯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일본 내에서도 《멸망하는 국가》(다치바나 다카하시, 2006)라는 자조적인 책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은 지금 2차 아베 정권 시대를 맞아 재활의 분위기가 확연해지고 있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비관적 전망도 적지 않지만 현재까지는 분명 성과를 보이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미일동맹이 전례 없이 강화되면서 기회를 맞고 있다.
<강대국 일본의 부활>
일본의 이런 부활을 예견한 책이 있다. 2008년 출간된 《강대국 일본의 부활》(한울)이라는 책이다. 2008년이면 미국발 경제위기가 세계를 강타한 시점이다. 일본은 회복은커녕 ‘엎친데 겹친’ 격의 타격을 받았던 상황이었다. 이런 시기에 일본의 부활을 예견한다?
일본 자체의 통속적인 국수주의나 혹은 반일적인 적대적 시각 어느 쪽도 아니다. 저자 케네스 B. 파일(Kenneth B. Pyle)은 미국 최고의 일본 전문가 중의 한 명이다. <저널 오브 재패니즈 스터디즈>의 초대 편집장이며 <포린 어패어즈>를 발행하는 미국 외교협회 회원이다.
책의 원제목은 <Japan Rising>인데 부제로 "The Resurgence of Japanese Power and Purpose"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우리말 제목이 적절하다. 저자는 최고의 일본 전문가답게 냉철하면서도 깊이 있게 일본 근현대사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조심스럽게 점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일본이 국제정치무대로 복귀하는 건 불가피한 흐름으로 진단한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강력한 대두가 운명적으로 일본의 기회가 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시중에 일본에 대한 책은 흔해빠졌다. 그러나 이 정도로 깊이 있는 책은 드물다는 게 책을 읽은 감상이다. 6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도 그렇지만 내용의 밀도가 대단하다. 인용되는 각종 자료와 저서의 범위가 압도적이다. 전문가라는 게 무엇인지를 느끼게 한다.
이 책은 세 가지 차원을 겸비하고 있다. 첫째 외교사를 중심으로 본 일본 근현대사, 둘째 미일관계사다. 그리고 셋째 다른 한편 일종의 일본론이다. 저자는 일본인의 심리의 심층까지 파고들어 일본적 본색을 포착하고 있다. 그래서 통속적인 일본 관련 서적과는 수준을 달리 한다. 일본을 ‘알 수’ 있다.
미국과의 관계가 한국에 대한 안전핀이다
한국인에게 일본은 하나의 트라우마다. 그러나 일본에게 언젠가 ‘한 방 먹이고’ 싶으면 거기에 젖어있는 게 아니라 ‘실력’을 갈고 닦아야 하며 더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도록 국제적 입지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국력이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처지면서도 국제관계의 측면에선 일본에 대해 실력 이상의 발언권을 발휘했다. 이것은 거의 전적으로 미국과의 관계 덕분이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미일동맹관계는 일본을 통제하고 억제하는 힘이기도 하다. 한미동맹관계가 굳건하고 일본이 미일동맹을 필요로 하는 한 일본은 결코 한국에 대해 적대적 야심을 행사할 수 없다. 물론 우리가 미국과의 관계를 깨뜨리면 모든 건 달라진다. 일본에 대한 ‘감정’으로 미국이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 회의를 갖게 하면 한국은 한일관계에서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
감정이 아니라 냉철함이 필요하다. 일본은 원자탄을 두 방이나 얻어맞고 패망한 후, 미국에 대해 큰 굴욕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을 견디면서 차근히 국력을 회복시켜왔다. 우리가 일본의 그런 자세를 배우지 못하면 일본에 한 방 먹일 수 있는 기회는 영원히 갖지 못할 수 있다. / 이강호 나누미
[출처] 《강대국 일본의 부활》|작성자 k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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