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 韓.中關係

베이징 서민 식당에서 文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강기 2018. 8. 17. 08:22

[박정훈 칼럼] 베이징 서민 식당에서 文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조선일보
  • 박정훈 논설위원   

         

    입력 2018.08.17 03:17

    '혼밥' 한 대통령 마음이 편하진 않았을 것이다
    약한 나라가 받는 수모에 대통령이 위기를 느끼고 이를 악물었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


    박정훈 칼럼

    박정훈 논설위원
    박정훈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꺼내 든 규제 혁신 드라이브가 진심일 것이라고 믿는다. 다른 걸 떠나 그의 개인 체험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말 중국 방문 때다. 세계 첨단을 달리는 중국의 핀테크 산업 현장을 문 대통령이 생생하게 목격했다. 거지도 스마트폰으로 동냥한다는 중국이다, 문 대통령이 놀란 것은 당연했다. 그는 지난주 인터넷 금융 규제 점검 행사에서 이때 경험담을 꺼냈다. "아주 놀랐다"는 표현까지 썼다.

    문 대통령을 놀라게 한 현장은 베이징의 서민 식당이었다. 방중 둘째 날, 문 대통령 내외는 이곳을 찾아 중국인 틈에서 식사를 했다. 청와대는 '서민 행보'로 포장했지만 사실은 공식 일정이 없어 '혼밥' 한 것이었다. 계산은 대사관 직원이 했다. 테이블 위 바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앉은 자리에서 68위안을 결제했다. 문 대통령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걸로 다 되냐"고 묻는 사진이 각 신문에 실렸다.

    당시 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수모론'에 휘말려 있었다. 3박4일 일정 중 중국 지도부와 식사는 두 차례뿐이었다. 여섯 끼를 우리끼리 '혼밥'으로 해결했다. 수행기자가 폭행당하고, 중국 외교부장이 문 대통령 어깨를 툭 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혼밥 하는 대통령 마음이 결코 편하진 않았을 것이다. 약한 나라의 무력감을 속으로 삼켰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됐다. 중국 측 홀대 덕에 문 대통령이 중국의 혁신 현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국의 실체에 번쩍 정신 드는 계기도 됐다.

    대기업 싱가포르 지사장을 지낸 전직 기업인 C씨가 블로그에 경험담을 올렸다. "중국 기업인 90여명 앞에서 강연을 했다. 강단에 올라 인사를 했는데도 전화하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분위기가 산만했다." 어찌어찌 추슬러 강연을 마쳤더니 이번엔 '힐난조' 질문이 쏟아졌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이제 초일류 기업이 아니다. 한국에선 왜 우버(차량공유서비스)를 못 하나, 정부와 기업이 왜 싸우나…."

    C씨는 2~3년 전만 해도 달랐다고 했다. "그때는 한국 기업의 경영 전략이나 국가 정책을 하나라도 더 들으려고 안달이었다. '한국을 존경한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완전히 우리를 깔보는 분위기였다. 한국을 저 아래 있는 2류 국가 정도로 보는 것 같았다." 그는 "중국은 더 이상 한국에서 배울 것이 없으며 경쟁 상대도 아니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썼다. 지금 중국이 우리를 대하는 시선이 대체로 그럴 것이다.

    우리는 '오만한 중국'을 일상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중국 관광객들 목소리가 커지고 행동이 무례해졌다. 중국의 횡포를 전하는 뉴스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다. 중국 군용기는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을 수시로 넘나들고 있다. 어선 불법 조업을 단속하자 중국 외교부가 '문명적 법 집행' 운운하는 적반하장도 있었다. 사드 때 막무가내 보복은 기가 찰 정도였다. 사드의 소유자인 미국이나, 더 강력한 레이더를 운용하는 일본엔 한마디 못했다. 만만한 우리만 쥐어팼다.

    중국은 DNA에 패권 본능이 새겨진 나라다. 그런데 상대가 약할수록 더 거칠어진다.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국은 중국의 속국(屬國)이었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발언은 사실일 것이다. 중국이 '현대판 조공(朝貢) 체제'를 꿈꾼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중국의 힘이 커질수록 우리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커질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버티는 것은 한·미 동맹과 산업 기술력 덕분이다. 중국은 우리와 동맹으로 묶인 미국의 존재를 겁낸다. 한국이 우위를 점한 제조업 경쟁력도 두려워한다. 한국산 핵심 부품 없이는 중국 공장이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만 확실하게 지켜내면 중국도 함부로는 못한다. 뒤집어 말하면 두 가지가 흔들리면 중국에 휘둘린다는 뜻이다.

    안타깝게도 상황은 나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미 동맹은 예전 같지 않다. 트럼프는 동맹에도 상업적 계산법을 들이대고 있다. 산업 경쟁력은 퇴조 기미가 역력하다. 주력 산업들이 속속 중국에 따라잡히고 있다. 인공지능 같은 미래산업은 중국에 뒤진 지 오래다. '반도체 굴기(崛起)'마저 성공하면 중국은 무서울 게 없어진다. 이러다가 우리 가 중국인에게 발 마사지 해주는 날이 온다는 말이 나온다. 100% 농담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베이징 식당에서 문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4차 산업혁명에서 뒤처진 현실을 목격하고 위기감을 느꼈을까. 산업 기술마저 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았을까. 힘 약한 나라가 받는 수모를 곱씹으며 문 대통령이 이를 악물었다면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16/20180816042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