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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엑소더스’… 포퓰리즘의 처참한 최후

이강기 2018. 8. 27. 13:48

‘베네수엘라 엑소더스’… 포퓰리즘의 처참한 최후

동아일보
입력 2018-08-25 03:00수정 2018-08-27 11:33


각종 선심정책 남발하다 경제 파탄… 경기침체-살인적 인플레이션 피해
올들어 400만명 넘게 해외로 탈출
경제난으로 베네수엘라를 탈출한 사람들이 에콰도르에 들어가기 위해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국경을 연결하는 루미차카 다리 앞에서 입국 수속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출처 구글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국경을 가로지르는 루미차카 다리에는 요즘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넘쳐난다. 에콰도르에 입국하려고 베네수엘라를 출발해 콜롬비아를 통과해 온 사람들이다. 주변국들이 곧 국경을 폐쇄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베네수엘라인들의 ‘엑소더스(대탈출)’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14일 하루에만 베네수엘라인 4만3000명이 루미차카 다리를 건넜다고 외신은 전한다. 

유엔에 따르면 2017년 베네수엘라 인구의 5.1%인 164만 명이 브라질,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등으로 떠났다. 올해는 7월 말까지 400만 명 이상이 고국을 등지고 떠났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국이었던 베네수엘라가 주변국에 난민을 내보내 눈총을 받는 남미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정부의 비효율적인 국가 경영과 빗나간 포퓰리즘 정책 등으로 나라 곳간이 거덜 나고 살인적인 물가는 국민들을 ‘경제 난민’으로 내몰고 있다.

베네수엘라 경제는 2013년 말부터 시작된 하이퍼(초)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에 허덕이며 파탄 났다. 베네수엘라 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1년간 물가상승률은 1만3779%에 이르렀다. 지난주에는 불과 1주일 만에 물가가 무려 3만2000% 상승했다. 현금을 한 상자 들고 가야 고작 두부 한 모를 살 수 있다.

3년 연속 두 자릿수 마이너스 성장률에 제조업 기반이 붕괴됐고 식량과 생필품 품귀 현상도 심각하다. 베네수엘라 주요 3개 대학의 조사 결과 베네수엘라인들의 몸무게도 식량난으로 지난해 평균 11kg이나 줄었다. 


경제가 엉망이 되자 다국적 기업들도 줄줄이 철수하고 있다. 미국 식품기업 켈로그는 원자재난과 정부의 가격 통제에 시달리다 5월에 영업 중단을 결정했다.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드문 베네수엘라 경제의 추락은 2014년 국제유가 폭락과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시기에 만들어진 포퓰리즘 정책이 기폭제가 됐다.




베네수엘라 경제에서 석유의 비중은 막대하다. 2013년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석유 부문이 차지했고 외화의 95%를 석유 수출로 벌어들였다. ‘21세기 사회주의’를 주창하며 2013년 사망할 때까지 14년간 장기 집권한 차베스는 고유가에 힘입은 오일머니로 각종 선심 정책을 남발했다. 그런 베네수엘라에 장기 저유가 추세는 직격탄이 됐다. 


후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차베스보다 더한 포퓰리즘 정책을 폈다. 나라 곳간이 비면 국채를 남발하고 화폐를 더 찍어냈다. 이로 인해 물가가 오르면 시장 가격을 억눌렀고 결국 기업들은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이런 가운데 마두로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부정선거 의혹 속에 재선에 성공하자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금융제재를 강화하면서 어려움이 가중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현재 베네수엘라 상황은 1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인 1923년 독일이나 로버트 무가베 독재정권 시절인 2000년대 말 짐바브웨와 비슷하다”고 경고했다. 

마두로 정권은 20일 기존 화폐에서 뒷자리 ‘0’을 5개 떼어내는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아울러 최저임금을 3000% 인상하고 법인세율을 높이는 등 ‘경제 회복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오히려 경제난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칼럼니스트인 케네스 라포자는 “국민 상당수가 발효된 지 사흘도 안 된 새 조치를 실패로 보고 난파선을 탈출할 채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