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術

그의 마지막 1년은 '피 흘리는 소'처럼 아프고 아팠다

이강기 2018. 9. 7. 16:36

그의 마지막 1년은 '피 흘리는 소'처럼 아프고 아팠다

    입력 2018.09.07 03:00

어제 열린 '이중섭과 서귀포' 세미나
日 가족에 보낸 편지화 40여 점과 정신분열 치료중 그린 그림 분석

떨어진 빗방울에서 대기의 상태를 짐작하듯, 작은 습기에서 더 큰 울음을 발견한다. 화가 이중섭(1916~1956) 기일인 6일, 그가 살던 제주에 산발적으로 비가 내렸다. 그리고 이날 서귀포 KAL호텔에서 열린 '2018 이중섭과 서귀포' 세미나에서는 이중섭이 남긴 빗자국, 작품이 아닌 작은 기록을 통해 그의 생애와 정신세계를 추적하는 시도가 있었다.

이은주(43) 명지미술치료연구소장은 이중섭이 1955년 9월부터 3개월간 입원한 서울 성베드로 병원에서의 '그림 치료' 흔적 20점을 들고나왔다. "이 진료 기록은 낙서가 아니라 예술미를 가미하지 않은 순수한 정신세계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이중섭은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에 보내고 서울에서 개인전을 준비했으나 1955년 1월 미도파화랑 전시의 실패로 가족과의 재회가 요원해지면서 망상과 정신분열에 시달린다. 그해 7월 대구 성가병원에 입원했고, 두 달 뒤 서울 육군수도병원을 거쳐 성베드로 병원에서 유석진 원장에게 그림 치료를 받게 된다.
이중섭이 성베드로병원에서 그림 치료의 일환으로 그린 ‘나무’ 연작.
이중섭이 성베드로병원에서 그림 치료의 일환으로 그린 ‘나무’ 연작. /조정자 석사논문 ‘이중섭 생애와 예술’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자신과 주변 인물의 성씨 '兪金黃李'(유김황이)를 서로 다른 크기로 나열하거나, '황소걸음 바람나왔다…'로 시작하는 긴 문장 등 글자만으로 이뤄진 것만 7점이었다. 이 소장은 "이중섭은 기억 속에 떠도는 단어를 종이 위에 나열했는데 '수염은 언제나 자라는 것―못 다 잊어 꽃이 핀다' 같은 문장에서는 성장과 창조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고 했다. 크레파스로 테이블이나 성기, 나무 등의 윤곽을 단순화해 그리기도 했다. 특히 '나무' 연작에 대해 이 소장은 "'摸索(모색)'과 '전기스탠드'라는 단어를 써넣은 '나무2'를 보면 어둠 속에서 불 밝혀 자아를 모색하려는 노력이 느껴진다"고 해석했다. 이 시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유화 '소'는 피를 흘리고 있으나, 지난 3월 그의 그림 중 최고가(47억원)에 낙찰됐다.
온 가족이 함께 남쪽 나라로 향하는 그림을 담은 편지화 ‘길 떠나는 가족’.
온 가족이 함께 남쪽 나라로 향하는 그림을 담은 편지화 ‘길 떠나는 가족’. /이중섭미술관
전은자(62)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는 이중섭이 정신질환을 앓기 전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주목했다. 그는 글과 그림을 함께 넣은 이중섭 편지를 '편지화'로 정의한 뒤 "이중섭 생애 말기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타임머신"이라며 "생애사와 감정의 변화, 가족 간 연민과 갈등 구조를 드러내 이중섭 예술 세계의 모티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텍스트"라고 했다.

40여 점의 편지화는 대개 가로 20㎝·세로 26㎝ 정도 크기로, 펜 선을 그은 뒤 물감·크레파스로 채색했다. 활발히 개인전을 준비하던 1954년 7월부터 가족 그림의 비중이 높아지고 물고기, 게, 새 등 여러 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편지화 속 가족은 홀로 고단한 생활을 이어가던 이중섭의 현실과는 달리 활기가 넘치는데, 부부의 입맞춤 장면에서는 눈이나 입술 등에 부분 채색을 하거나 글자에 크레파스나 유화 물감으로 선을 그어 포인트를 줬다. 부부의 팔을 길게 그리거나 '뽀뽀'라는 글자를 반복적으로 넣어 편지글의 테두리를 만들기도 했다. 전 큐레이터는 "이 '고리'는 가족과 하나 되기를 희망했던 이중섭 특유의 표현 방식"이라고 했다.
6일 제주도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앞에 모인 윤진섭 미술평론가, 민정기 화백, 강경구 화백, 김종학 세종대 교수, 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 이은주 명지미술치료연구소장(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6일 제주도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앞에 모인 윤진섭 미술평론가, 민정기 화백, 강경구 화백, 김종학 세종대 교수, 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 이은주 명지미술치료연구소장(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정상혁 기자
이날 행사엔 양윤경 서귀포시장, 오광협 전(前) 서귀포시장, 강명언 서귀포문화원장, 홍명표 이중섭탄생100주년기념사업 공동추진위원장, 김유정 이중섭미술관 운영위원, 23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 김종학 교수 , 민정기·강경구·윤진섭 이중섭미술상 운영위원, 이경용 제주도의원, 현영모 소암기념관 명예관장, 고영우 기당미술관 명예관장, 유족 대표로 이중섭 조카인 고(故) 이영진씨의 아내 강순남씨와 조카손녀 이지연·지향씨, 이중섭 가족에게 1.4평 셋방을 내준 집주인 김순복 할머니, 김문순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 이사장 등 각계 인사와 제주도민 100여 명이 참석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07/20180907001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