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2000년 앞선 손바닥 스텐실, 5000년 빠른 4만년 전 동물 그림도
“현생 인류가 호주로 가던 길목 세계 각지 자체적 문화 탄생 입증”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동쪽 동굴에서 발견된 세계 최고(最古) 벽화의 일부. 소를 닮은 동물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을 포함해 세 마리 소 그림 바로 옆에서 연대를 측정한 결과 약 4만 년 전 작품임이 밝혀졌다. 오른쪽 사진은 손 스텐실로 가운데 진한 부분은 약 2만 년 전에, 주변 엷은 부분은 약 4만 년 전에 그려졌다. 네이처 제공
현생인류(호모사피엔스)가 남긴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의 기록이 깨졌다. 호주 그리피스대와 인도네시아 반둥공대, 인도네시아 국립고고학연구소 공동연구팀은 보르네오섬 동쪽 칼리만탄 지역의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를 ‘네이처’ 7일자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손바닥을 벽에 대고 입으로 염료를 뿜어 손의 윤곽을 새긴 ‘손바닥 스텐실’은 최고(最古) 5만2000년 전에, 소로 추정되는 동물을 그린 그림은 최고 4만 년 전에 그려졌다. 각각 기존에 알려진 가장 오래된 벽화보다 1만2000년, 5000년씩 빠른 것이다.
연구팀은 칼리만탄 지역에 흩어진 석회동굴 6곳에 그려진 13개 그림 부근에서 15점의 탄산칼슘 시료를 얻은 뒤 우라늄-토륨 방사성 연대측정법을 이용해 연대를 측정했다. 땅에서 출토돼 지층 정보를 참고할 수 있는 석기 등 유물과 달리, 벽화는 연대를 직접 측정하기 어려워 벽면에 쌓인 탄산칼슘(석회암의 주성분)의 연대로 그림의 나이를 추정한다.
가장 오래된 그림 외에, 다양한 연대의 그림도 나왔다. 약 25km 떨어진 리앙방텡 동굴에서는 보라색 염료를 이용해 손바닥과 나무 등이 그려졌는데, 이곳은 약 2만 년 전에 그려진 것이었다. 한 동굴에서 2만 년 이상의 간격을 두고 서로 다른 인류가 ‘작품 활동’을 한 경우도 있었다. 이형우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인류가 점유하며 작품을 남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발견으로 예술의 역사가 크게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스의 쇼베, 라스코 등 교과서에 등장하는 동굴벽화는 대개 1만∼3만 년 전 그림이다. 2012년 스페인 엘 카스티요 동굴에서 약 3만5000∼3만7000년 전 손바닥 스텐실과 동물 그림이 나와 최초의 동굴벽화 기록이 깨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부 유럽에서만 오래된 벽화가 나와 예술의 고향이 유럽이라는 주장이 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