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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줌마의 어깨 위에 세워진 나라"

이강기 2018. 11. 15. 15:54

"한국은 아줌마의 어깨 위에 세워진 나라"

조선일보
  • 백수진 기자
    • 입력 2018.11.15 03:44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작가의 한국 관찰기

    "남자 회사원들에게 매일의 면도는 불문율이다. 여자 회사원들에게 힐은 암묵적 의무다. 승용차의 90퍼센트가 까만색, 은색, 혹은 흰색이며 당연히 한국산이다. 길에 쓰레기통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비교적 깨끗하다."

    콜롬비아 작가 안드레스 솔라노(41)가 꼽은 '한국의 신기한 점' 리스트다. 콜롬비아 기자로 일하다 2007년 첫 장편소설을 발표하고 한국문학번역원으로부터 초청을 받은 것이 첫 인연이었다. 한국어 강사로 일하던 아내를 만나 2013년부터 서울 이태원에 정착했다.

    안드레스 솔라노와 번역을 맡은 아내 이수정(위)씨.
    안드레스 솔라노와 번역을 맡은 아내 이수정(위)씨. 솔라노는“한국 소설의 스페인어 번역본을 감수하고 있다. 김승옥의‘무진기행’과 오정희의 소설들을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솔라노는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의 생활기를 담은 '한국에 삽니다'〈작은 사진〉로 2016년 콜롬비아에서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았다. 이태원의 낡은 연립주택으로 이사 온 부부의 사계절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이다. 낡은 도심의 고즈넉한 풍경부터 드러내기 싫은 한국인의 습속까지 이방인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혹은 날카롭게 묘사한다. 아내 이수정씨가 번역해 최근 한국에서도 출간됐다.

    ―평소 한국 사람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편인가.

    "한국어를 못하니까 혼자 잡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젊은 회사원을 보면 두려운 표정이 먼저 눈에 띈다. 그들을 보면 콜롬비아에서 군대에 있던 시절이 떠오른다(콜롬비아도 징병제 국가다). 딱 군대에 처음 온 말단 병사들이 보여주던 표정이다."

    ―한국의 아줌마들에 대해선 '이들의 자녀들이 오늘날의 공장과 회사와 은행과 조선소를 채운다'고 썼다.

    "한국은 아줌마들 어깨 위에 세워진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패션도 독창성이 있다.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패션 테러가 아니라 일종의 '패션 선언'이다."

    ―최근 외국인이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예능이 유독 인기였다.

    "한국은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가 50~60년 만에 세계의 주목을 받는 나라가 됐다. 그러다 보니 '남들은 우리나라를 어떻게 느낄까?' 호기심을 갖는 심리는 자연스러워 보인다."

    ―인터넷에 책이 소개되고 나서 '콜롬비아로 돌아가라'는 악성 댓글도 달렸다.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길에서 누가 나한테 그렇게 말할까 봐 답변도 준비해놨다. '나는 콜롬비아인이고 우리 할아버지 세대가 한국전쟁에 와서 함께 싸워줬다'고 얘기하겠다."

    '한국에 삽니다'
    ―책에서도 한국전쟁 참전 용사 '오르티스 병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잡지사 기자로 일했을 때 인터뷰했던 사람이다. 전쟁 중 절반을 중국군 포로수용소에서 보냈고, 오른쪽 눈까지 잃었다. 그는 처음 부산항에 도착해 '세상에 이렇게 가난한 나라가 있구나!' 하고 놀랐다고 한다. 그분 생각이 나서 한국인 참전 용사도 인터뷰하게 됐다."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은가.

    "글쎄…. 한국의 동그란 무덤에 묻히긴 싫다. 예쁘긴 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웃음). 만약 화장을 한다면 지리산과 자주 가는 이태원 술집에 반반씩 뿌려주면 좋겠다."

    ―두 곳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

    "구례 화엄사를 특히 좋아한다. 화엄사에 들어가기 전 절벽에 조그만 암자 가 있다. 그곳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술집'이란 말도 좋아한다. 이태원 술집은 이 책을 쓰느라 힘들 때 정말 '집' 같은 존재가 되어줬다."

    ―한국어로 또 번역하고 싶은 당신의 소설이 있나.

    "최근에 쓴 소설도 한국과 콜롬비아가 배경이다. 콜롬비아에서 40년 이상 산 한국인 태권도 사범과 한국전쟁 참전 용사가 주인공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15/20181115001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