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 韓.中關係

중국 漫畵史

이강기 2018. 11. 18. 21:56

<해외통신 - 중국>

역사를 아는 것은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만약 한국 만화의 문제점 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한국만화의 역사에서 찾을 일이다. 한국 만화의 비젼이 무엇이냐고 묻는 답도 역사에 있다. 한국만화사를 나름대로 애써 공부한 입장에서 본다면 만화진흥을 위한 몇 가지 시사점을 간추릴 수 있다. 첫째는 만화의 한계는 당대의 사회적 인식 수준에 한계를 진다는 것이다. 둘째는 불건전한 시장의 경우 빈번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또 악순환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일본만화의 영향등 외부요인이 강하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만화사에 대한 이해는 중국에 와서도 새록 새록하다. 이들을 전문가적인 식견에서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는 것 또한 역사에 대한 이해 덕분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면 중국만화의 역사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서 지내는 내내 중국만화의 역사에 대하여 공부할 것이다. 수시로 보충하고 맨 나중에 한번 더 정리할 생각으로 처음이지만 이해를 돕는 명목으로 이렇게 무모한(?) 중국만화사를 간략히 정리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중국 문화산업백서의 자료와 양선생님과의 스터디 내용을 주요내용으로 필자가 정리하였다. 간단히 하기 위해서 용감하게(?) 도식화하였다.
 
 
1. 전통만화시기(19세기말 - 1930년대)
 
중국의 만화의 초기 모델은 전통적인 <연화도화> (우리가 <연화화> 라고 부르는 그것)에서 찾는다. 우리만화의 역사와 비슷하게 삽화형식으로 발전하면서 1925년에는 펑즈라이가 일본유학을 다녀와서 <만화> 라는 용어를 쓰기도 했다. 주로 신문을 지면으로 해서 전통적인 형식의 풍자만화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시기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신문 만화사처럼 책이 몇 권 나와 있다.(감히 읽지은 못하고 있다. 나중에 차차) 현대 개념의 스토리 만화는 태생하기 전이라고 할 수 있다



2. 전쟁과 정체, 단절시기(1937 - 1976)
 
 
이시기는 항일전쟁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1937-1949)으로 시작한다. 전쟁기에 만화는 선전선동의 무기가 된다. 선동적인 항일투쟁, 애국운동을 주요내용으로 한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나지만 전통적인 형식을 크게 벗어나진 못한다. 내용은 점차 다양해지는 편이었으나 그나마 문화대혁명(1966-1976)의 시기에 거의 모든 문화예술영역과 마찬가지로 단절에 가까운 암흑기를 경험한다. 문화대혁명은 중국인들이 씻을수 없는 역사의 과오로 인식하고 있는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현재의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실리위주의 개방경제 정책도 문화대혁명의 교훈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만화도 문화혁명기간에는 전멸했다 할 수있다. 특이한 것은 장러핑의 존재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삼모의 유랑기> (1947)정도가 독보적인 작품으로 전쟁후의 페허속에 위안을 주었다. 




3. 문예부흥과 해외만화보급시기(1976 - 1994) 
 
문화대혁명을 청산하고 문예부흥기를 거치며 중국은 개방으로 나아간다. 다양한 스타일과 내용의 다수 작품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스토리 만화, 어린이 만화가 등장한 것도 이시기이다. 1990년대 들어서는 일본애니메이션 <성투사성시> 가 방송됨과 동시에 원작이었던 일본만화가 유입되고 본격적인 해적판도 유행을 하였다. <성투사> <드래곤볼> <시티헌터> 가 초기 3총사다. 지금까지도 사실 거의 모든 일본만화가 해적판으로 소개되었다 할 수 있다. 최초의 만화전문잡지 <화서대왕> (1993)도 창간되었다. 일본만화외에도 대만, 홍콩, 미국, 유럽만화들도 소개되었고. 그중에 정식 출간되었던 <팅팅의 대모험> 은 대히트를 치기도 하였다.
 
 
4. 신만화의 발전기 (1995 - 현재)
 
뤼신의 논쟁이 <연환도화> 의 예술적 기능을 인정하게 만들었듯이, 1995년 장쩌민은 <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 <쩌쟝인민미술출판사> 에 편지를 써 만화의 진흥을 이야기 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중국아동애니메이션출판공정> (흔히 5155공정이라고 부른다) 결정하게 된다. 이건 마치 우리나라의 1994년 만화산업진흥의 해 선포와 1995년 만화진흥정책을 보는듯한 비스한 시기의 이야기이다. 정책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5대전문잡지( <중국카툰> , <베이징카툰> , <소년만화> , <만화대왕> , <카툰선봉> )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현재 만화잡지만도 20여종이 된다.(그렇다고 매우 활성화된 상태는 아니다. 작품의 다양성과 퀄리티, 제작의 질로 보면 아직 많이 미약하다) 또 자국의 만화가를 육성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의 만화가는 3세대 만화가쯤으로 불러야 할까? 이들은 문화혁명이후의 세대로 이전의 전통과는 단절되어 해외만화(특히 일본만화)의 영향 속에서 자신의 만화기법을 만들어 왔다.



이를 통해 중국 만화를 내용적으로 구분하자면 하나가 <풍자만화> , 둘이 <연화화> , 셋이 <신만화> 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라면 이러한 만화들이 연결된 흐름을 갖고 있지만, 중국상황의 특이성은 이러한 장르들이 단절되어있고, 공존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만화계의 지도자들은 <연화화> 작가들이고,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것은 <신만화> 이며, 대중지면에 여전히 활약하고 있는 것은 <풍자만화> 인 것이다. 점차 <신만화> 중심으로 옮겨가는 추세이지만 만화의 개념을 확립하고 문화와 산업의 토대를 갖추어야할 중국의 기성세대는 <신만화> 가 너무도 낯설기만 한 실정이다.
 
중국 만화사를 통해 몇가지 시사점을 유추해 보자면 중국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시대의 질곡과 시대상의 편협한 인식속에 불우한 시절을 거쳐 최근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그리고 일본만화의 영향을 압도적으로 많이 받았다는 점도 공통점이다.(음 어떤 면에서 좀 더 심하고 집중적이었다고 할까.) 그리고 불우하게도 만화세대간의 단절이 심하다. 서로를 존중하려면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필자가 만나보았던 원로 만화가(연환화작가)나 젊은 만화가(신만화작가)나 서로에게 대하여 희망적인 기대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특이한 도시는 상해이다. 연환화를 비롯해서 지금까지 가장 만화가 활발하고 선도적인 곳은 상해였다. 요즘도 <동만기지> 건설등으로 활력이 넘치는 곳이다. 역사적으로 일찌감치 문호를 개방하였던 도시고 현재도 경제수도라 불리울정도로 개방경제의 첨단이므로 이해가 될만하다. 잼있는 점은 중국을 반으로 갈라서 북방은 남자만화, 남방은 순정만화가 주류였는데... 최근에는 거의 순정만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역시 경제력이 있는 남방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고, 또 필력이 약한 자국만화와 시스템에서는 우선 순정체가 자국만화가에게는 접근하기 쉬운 스타일이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거의 구분하지 않는다. 우선 <동만> 이라는 단어가 <동화> (애니메이션)와 <만화> (만화)를 합친 용어이고, 어떨 때는 만화-애니메이션-캐릭터-게임까지 통틀어 이야기 해버린다. 우리도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요즘은 콘테츠 연계와 통합 추세도 있고 해서 크게 말릴 수는 없지만... 사람 헛갈리게 만들 때는 정리가 꼭 필요하곤 한다.
 
☆도판설명☆
 
도판1(신문만화)

우리나라의 초기 만화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민간의 민화나 풍자화, 목판 인쇄의 도판을 초기 만화형태로 꼽고 있다. 그리고 인쇄술이 도입된 뒤로 신문을 중심으로 초기 현대적 의미의 만화가 출현하였다.
 
도판2(연환화)

우리가 매력을 느끼는 것중의 하나가, 중국의 전통적 만화라고 불리우는 연화화이다. 10여페이지의 작은 사이즈의 책자 형태를 갖추고 있다. 위의 도판은 주로 1970년대의 작품들이다. 맨처음의 이미지가 연화화를 팔고 보는 장터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이다. 선전선동의 무기 역할도 했기 때문에 정치적인 내용이 많다. 그 외에 전통 고전을 소재로 한 것이 인기 있었던 것 같다. 연환화는 만화에 속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독립적인 장르로 평가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예술적인 성취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독특한 연출과 작가군들이 독립적이다. 연환화의 작가가 현대의 신만화를 그리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도판3(장락평)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잘 알려진바있는 작품이다. 올해(2005년)는 장락평( 張樂平 )선생의 삼모( 三毛) 탄생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니까 대표작 삼모의 탄생은 1935년이라는 이야기다. 신문만화, 카툰, 연환화등이 대부분인 시절, 그리고 해외 만화들이 판치던 현대까지 중국에는 뚜렷한 국민만화라는 것이 삼모가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복간되어 나오고 있는 책들을 보면 그 필력과 풍자와 연출, 스토리가 놀랍기만 하다. 70주년을 기념하여 대대적으로 장락평선생에 대한 조명과 복간, 애니메이션 작업, 캐릭터 상품, 뮤지컬등이 만들어지고 있다. 마지막 사진은 지난 항주에서 열렸던 <중국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의 포스터중 하나인데, 삼모의 머리에 달려있던 머리털 3개가 이제는 나이를 먹어 수염처럼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