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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기 2018. 11. 30. 14:21

"민노총 막다가 소송당하면 총리·장관이 책임져줍니까"

    입력 2018.11.30 03:02 | 수정 2018.11.30 11:38

불법점거 쳐다만 보는 경찰

29일 오후 3시 경기도 수원의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4층. 지청장 사무실에서는 민노총 양경수 경기본부장이 전기 장판을 틀고 2시간 넘게 잠자고 있었다. 민노총 경기본부와 공공운수노조 잡월드 분회 회원 10여 명은 지난달 26일부터 35일째 이곳을 점거하고 있다. 잡월드가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하도록 정부가 나서라는 것이다.

노조가 불법 점거 중이지만 건물에 배치된 경찰은 한 명도 없었다. 정보 담당 경찰 한두 명이 가끔 왔다 간다고 한다. 경기지청 관계자는 "관할 경찰서에 노조원을 쫓아내달라고 요구했지만 경찰에선 '기관이 감내할 부분도 있다. 폭력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는 경찰이 개입하기 어렵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경기지청 공무원들은 매일 8명씩 당직조를 편성해 4개층을 24시간 자체 경비하고 있다.

불법 행위로부터 국민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경찰관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법원이 불법 집회나 점거 농성에 적극 대응한 경찰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법 집행에 나섰다가 가벼운 절차상 실수로 소송에 걸리고, 재판에서 져 사표를 내거나 자기 돈 수천만원을 물어주는 동료가 나오자 일선 경찰이 몸을 사리는 것이다. 한 경찰관은 "과거 법원은 집회 현장의 긴박성을 감안해 경찰 판단을 존중해줬으나 요즘에는 사후 관점에서 '왜 이런 대안은 고려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치고 있다"고 했다.

경찰 지휘부가 무전기로 '불법 점거를 시도하는 시위대를 막으라'고 명령해도 현장 경찰관이 움직이지 않는 일도 있다. 한 경찰 간부는 "나중에 보니 못 막는 게 아니라 일부러 안 막는 것 같더라"며 "시위대에서 부상자라도 나오면 소송당할 게 뻔하니 차라리 무능한 경찰로 욕먹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경찰 사이에서는 "검찰의 적폐 수사를 보면 상관 지시를 이행했을 뿐이라고 해명해도 대부분 면책받지 못하더라"는 이야기도 많다. 한 경찰 고위 관계자는 "일선 경찰관이 시위대에 소송을 당하면 총리나 장관이 책임져줄 것도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불법 점거나 시위 피해는 기업체나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민노총은 최근 3개월간 관공서나 기업체 등을 8차례나 불법 점거했다. 민원인이 발길을 돌리고 직원들 업무에도 지장을 초래했다.

지난 5일 민노총 화물연대 조합원 130여 명은 경남 양산의 한 자동차 부품 업체 공장 진입로에 11t 트럭 20대를 세워두고 17시간 동안 출입구를 봉쇄했다. 경찰 200여 명이 현장에 출동했지만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뿐 차량 견인 등 조치를 하지 않았다. 하루 170차례 부품을 운송해온 이 업체는 이날 13차례밖에 운송하지 못해 납품 업체들까지 연쇄적으로 피해를 봤다.



'불법점거 막다가 경찰 복 벗는다' 몸 사리는 경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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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8.11.30 08:42



        

    "소송 당하느니 욕듣고 끝내는 게 낫지"… 경찰, 겁먹고 몸사린다

    조선일보
  • 양은경 기자
  • 권순완 기자    

  • 입력 2018.11.30 03:07

    법원, 시위 진압한 경찰 개인에 민·형사 책임… 유죄 받고 퇴직도
    시위대가 경찰 걷어차도 "무죄", 집회 막은 경찰에겐 "배상하라"

    정부 노동 정책에 불만을 품은 민노총 조합원들이 공공기관을 불법 점거하는 일이 이어지자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불법 시위는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지난 20일 전국 지방경찰청과 화상회의를 열고 "불법에는 법대로 적극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다르다. 불법 시위, 농성은 여전하고 이로 인한 시민들의 민원도 계속되고 있다. 경찰은 "불법 시위 등에 적극 대응한 경찰에게 법원이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판결을 내놓는데 어떻게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느냐"고 했다.

    법원은 최근 시위대의 권한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지난 20일 대구지법은 올 초 대구지검 청사 1층 현관을 총 6차례 점거하고 농성을 벌여 기소된 민노총 조합원 10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7월 서울중앙지법은 정부서울청사 앞에 설치된 불법 농성 천막을 철거하려는 경찰관을 걷어차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기소된 시위대 2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불법 시위에 적극 개입하는 경찰관에게는 민·형사상 책임을 묻고 있다. 작년 3월 대법원은 2009년 쌍용차 불법 점거농성 진압 과정에 투입된 류모 경찰 중대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민변 소속 변호사가 경찰 호송차를 가로막고 체포된 노조원 접견 요청을 했는데 이를 들어주지 않아 직권을 남용했다는 것이다. 경찰공무원법상 자격정지 이상의 형(刑)을 받으면 자동 퇴직 처리돼 류씨도 경찰복을 벗었다.

    경찰은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 상징적 사건으로 백남기씨 사망 사건 재판을 꼽는다. 백씨는 2015년 민중 총궐기 집회 참가 도중 경찰 버스에 줄을 묶어 끌어내려다 경찰 물대포를 맞고 숨졌다. 당시 불법 폭력 시위로 경찰은 경찰관 76명이 다치고 경찰 버스 43대가 파손되는 등 3억원이 넘는 피해를 봤다.

    검찰은 박근혜 정부에선 이런 경찰의 시위 진압을 문제 삼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자 검찰은 작년 10월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로 구은수 당시 서울경찰청장(치안정감)과 신윤균 서울청 제4기동단장(총경), 물대포 살수(撒水) 요원인 한모 경장, 최모 경장을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신 단장과 살수 요원 2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세 사람은 백씨 유가족에게 따로 6000만원을 배상했다. 한 경찰 간부는 "현장에 있는 말단 경찰에게까지 책임을 묻다 보니 예전처럼 '지휘권자인 내가 책임질 테니 명령을 따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경찰 수뇌부가 자기 손발을 묶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 들어 출범한 경찰개혁위원회는 '사소한 불법을 이유로 시위를 막지 마라'고 권고했고, 경찰청은 이를 받아들였다. 시위 진압 도중 경찰이 피해를 보더라도 시위대를 상대로 한 소송은 자제하라는 권고도 수용했다. 한 경비 담당 경찰은 "시위대에게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고 했다.

    경찰은 시위대가 관공서나 기업체를 불법 점거하는 경우 건물주나 시설관리자가 퇴거 요청 서한 등을 보내기 전에는 강제 해산하지 않는다. 한 경찰 간부는 "(지휘부가) 무전으로 시위대 해산을 채근해도 현장 경찰들은 '욕 듣고 끝내는 게 (시위대와의) 소송보다 낫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다른 경찰관은 "상관이 부하 경찰에게 무조건 강경 대응을 지시할 경우 상관도 직권 남용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지난달 말 김천시장실과 로비·민원실을 불법 점거한 민노총 같은 경우 집회·시위법 위반에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해 현행범으로 체포했어야 한다. 경찰이 직무유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법원 판결의 흐름은 진보적 성향 판사들이 사법부의 핵심을 장악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은 쌍용차 해고자 등이 "집회 장소인 덕수궁 대한문 앞에 경찰관이 배치돼 집회의 자유 를 침해당했다"며 서울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과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경찰에게 1200만원을 시위대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장이던 김기영 부장판사는 헌법재판관이 돼 있다. 한 고위 법관은 "시위대에게 우호적인 판결을 하면 '인권에 눈을 떴다'는 평가를 받고, 사법부 신(新)주류가 될 수 있는 분위기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30/20181130002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