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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초상, 마키아벨리와 16세기 관상학

이강기 2019. 1. 18. 22:04

악마의 초상, 마키아벨리와 16세기 관상학

운비

한겨레, 2019-01-18


책과 생각] 윤비의 이미지에 숨은 정치
④ 마키아벨리의 초상화

그토록 많은 마키아벨리 연구자들과 전기작가들이, 그토록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경탄해 마지않으며 매달려온 마키아벨리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하필이면 비난과 경멸을 담아 그려낸 산티의 초상화를 앞에 내세웠다는 것은 확실히 아이러니이다.

그림 1. 이탈리아 화가 산티 디 티토가 마키아벨리 사후 16세기 후반에 그린 마키아벨리의 초상화.
그림 1. 이탈리아 화가 산티 디 티토가 마키아벨리 사후 16세기 후반에 그린 마키아벨리의 초상화.



악마는 어떻게 생겼을까? 지난 글에서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 중세와 르네상스의 악마의 모습을 보았으며, 블랙 스파이더맨에게서 악마에 대한 현대적 상상을 보았다. 오늘 우리는 16세기가 상상한 악마의 모습을 본다. 그것은 1469년에 태어나 1527년에 죽은 <군주론>(Il principe)의 작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를 그린 초상화 한 점이다.(그림 1)


그 유명한 마키아벨리의 초상

이 초상화는 현재 알려진 바로는 이탈리아의 화가 산티 디 티토가 마키아벨리 사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16세기 후반기에 그린 것이다. 사실 마키아벨리 생전에 그려진 초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명한 마키아벨리 전기작가 로베르토 리돌피는 그래도 산티의 작품이 어딘가 마키아벨리의 실제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리라고 기대를 내비치지만 근거는 희박하다. 작가가 나름대로 마키아벨리의 모습을 이러저러하게 상상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산티의 초상화는 마키아벨리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유난히 인기가 있다. 이 초상화는 방금 언급한 리돌피의 유명한 마키아벨리 전기에 실려 있고, 케임브리지 학파의 거두이며 20세기 마키아벨리 사상 연구의 변환점을 마련한 퀜틴 스키너의 마키아벨리 소개서 표지에 등장하며, 알레산드로 카파타가 펴낸 1998년판 마키아벨리 저작선의 표지에, 이탈리아 출신의 마키아벨리 연구가인 마우리치오 비롤리가 1998년에 쓴 마키아벨리 평전의 표지와 2008년판 마키아벨리 소개서 표지에, 필자의 스승이고 독일의 저명한 마키아벨리 연구자인 헤어프리트 뮌클러가 편집한 마키아벨리 정치저작선과 볼프강 케르스팅이 쓴 마키아벨리 연구서의 표지에 등장한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이 초상화는 시오노 나나미가 쓴, 학문적 작업이라기보다는 수필에 가까운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라는 작품의 표지에도, 그리고 한국의 마키아벨리 연구에서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로 남게 될 곽차섭의 <군주론> 번역본의 표지에도 등장한다. 여기서 지면상 언급할 수 없는 다른 마키아벨리 연구서나 전기는 빼고서도 이렇게 많은 현대의 마키아벨리 연구자들이 이 초상화를 마키아벨리에 대한 자신들의 이야기 앞에 내세웠다.

나는 여기서 산티와 얼추 비슷한 시기에,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잠바티스타 델라 포르타가 1586년 펴낸 <관상학>에 실린 그림 하나를 같이 살펴보려 한다. 델라 포르타의 관상서는 당시에 알려진 관상학의 지식을 집대성한 책으로서 당대에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책은 인간의 얼굴을 동물의 얼굴과 비교하여 눈, 코, 입, 얼굴 윤곽의 각 부분을 고찰하면서 어떻게 인상이 내면의 성격을 드러내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작품에는 설명을 돕기 위한 삽화가 많이 실려 있는데, 그중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원숭이 상에 대한 묘사와 삽화이다.(그림 2 위)

그림 2. 잠바티스타 델라 포르타가 1586년 펴낸 <관상학>에 실린 원숭이 상(위)과 고양이 상(아래)에 관한 삽화.
그림 2. 잠바티스타 델라 포르타가 1586년 펴낸 <관상학>에 실린 원숭이 상(위)과 고양이 상(아래)에 관한 삽화.


나는 학생들에게 이 삽화를 산티의 마키아벨리 초상화와 나란히 보여준 일이 있다. 그때 여러 학생이 탄성을 내었던 것을 기억한다. 두 그림이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마, 작고 약간 게슴츠레한 눈, 광대뼈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아래로 홀쭉하게 내려간 뺨과 입술의 윤곽, 귀의 모양까지 둘 사이의 유사성은 확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델라 포르타는 원숭이 상에서 보이는 작은 귀를 가진 사람은 품행이 나쁘고 강도 기질이 있으며 사치스럽고 음탕하다고 말한다. 또 원숭이 상에서 보이는 아주 작은 눈은 그 사람이 교활한 자임을 알려준다고 한다. 그리고 원숭이처럼 지나치게 여윈 뺨을 가진 자는 약삭빠르고 음흉하며 남의 물건을 잘 훔친다고 한다.

델라 포르타의 관상학에서 고양이 상의 전형으로 제시된 삽화 역시 턱과 코 모양에서 산티의 그림 속 마키아벨리와 상당히 닮아 보인다.(그림 2 아래) 고양이 상의 소유자 역시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그런 사람은 간계에 능하고 음험하다.


마키아벨리의 얼굴에 담긴 악

산티의 마키아벨리 초상화 안에 동시대에 유행한 관상학서가 묘사하는 사악하고 위험한 얼굴의 특징이 나타나는 것을 우연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1559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교회의 ‘금서목록’(Index prohibitorum librorum)에 공식적으로 포함된다. 1576년 프로테스탄트 법률가 장티예는 <바른 통치법에 대한 논고>(Discours sur les moyens de bien gouverner)에서 종교와 윤리의 가르침이 반드시 정치적인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위험한 전제주의라고 비난하였다. 마키아벨리의 악명은 대륙의 경계를 넘어 영국에도 미쳤다. 크리스토퍼 말로의 1589년 작품 <몰타의 유대인>에서는 마키아벨리가 모든 윤리와 종교의 적으로 등장한다. 16세기 후반기를 살았던 많은 이들에게 마키아벨리는 극한의 악 그 자체였다. 산티는 자신의 시대에 바로 그렇게 이해된 마키아벨리를 초상화 안에 담아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당시에 유행하던 관상학의 지식을 이용하여 악의 현신으로서 마키아벨리의 얼굴을 창조해내었다.

물론 마키아벨리는 악마가 아니다. 그는 악마는커녕 제대로 악인이 되도록 가르칠 만큼 악을 이해하지도 못한 위인이었다. 나는 단지 마키아벨리라는 개인의 사람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막상 <군주론>을 읽어보면 전제군주에 대한 그의 혐오가 가감 없이 드러난다. 마키아벨리는 낮은 신분에서 위계와 잔인함, 능력으로 권좌에 오른 고대 시칠리아의 군주 아가토클레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개인의 권력욕 때문에 동료 시민을 학살하는 행위를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의 주장은 결코 ‘힘이 곧 정의다’라는 단순한 도식으로 요약될 수 없다. 다음에 좀 더 이야기하겠지만 그가 주장한 것은 완전히 퇴락한 국가를 다시 되살리기 위해서는 법과 윤리의 틀 안에만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산티의 마키아벨리 초상화에 담긴 것은 한 집단, 혹은 한 사회, 나아가 한 시대가 상상한, 보다 정확히는 오해한 마키아벨리이다. 그토록 많은 마키아벨리 연구자들과 전기작가들이, 그토록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경탄해 마지않으며 매달려온 마키아벨리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하필이면 비난과 경멸을 담아 그려낸 산티의 초상화를 앞에 내세웠다는 것은 확실히 아이러니이다. 오늘날 마키아벨리 연구는 하나의 산업이 되어버렸다. 마키아벨리의 전문 연구자부터 대중 저술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 인물을 다룬다.(그 가운데에는 <경영인을 위한 마키아벨리> 같은 책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마키아벨리와 그의 시대를 사실에 가깝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사족 하나. 사상의 역사를 연구하다 보면 동양과 서양이라고 우리가 구분하는 양 세계 간에 종종 놀라운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두개골의 모습, 이목구비의 형태와 배치가 성격과 자질을 포함한 숨겨진 내면을 드러낸다는 생각, 심지어 미래의 가능성이나 운명에 대한 결정적 힌트를 담고 있다는 생각은 우리에게 여러 이야기를 통해 이미 익숙하다. 황현의 <매천야록>은 청도에 사는 관상쟁이 박유봉이 자신의 관상을 보고, 귀하게 되려면 한쪽 눈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 스스로 눈을 찔러 애꾸가 되었다고 전한다. 꽤 인기를 끌었던 영화 <관상>에서 송강호는 수양대군을 보고 “남의 약점인 목을 잡아뜯고 절대로 놔주지 않는 잔인무도한 이리”의 본성을 찾아낸다.

산티의 마키아벨리 초상화에서도 보이듯 관상에 대한 유사한 관심은 서양에서도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왔다.(혹시 관심이 있는 독자는 아리스토텔레스 <관상학>의 좋은 한국어 번역이 있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과학의 세기라 불리는 현대에도 비슷한 생각이 꽤 유행하였다. 코넌 도일의 <배스커빌가의 개>에는 제임스 모티머라는 외과의사가 셜록 홈스의 얼굴 골격에 강한 흥미를 보이는 장면이 있다. 그는 인간의 두개골 모양으로부터 성격과 지적 능력을 유추할 수 있다고 믿는 골상학자이다. 셜록 홈스 스스로도 곳곳에서 사람의 인상을 기질이나 성격과 연관 짓는 듯한 발언을 한다.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마디 더 덧붙이겠다. 마키아벨리의 초상과 델라 포르타의 관상학에 나오는 삽화 간의 유사성에 주목한 것은 필자가 처음은 아니다. 처음 유사성에 주목한 것은 2007년 독일 대학에서 마키아벨리 정치사상을 강의할 때였다. 그 후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미 1883년에 오레스테 톰마시니가 마키아벨리 평전을 쓰면서 유사성을 지적했던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다소 나이브하고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유튜브에도 비슷한 생각을 담은 짧은 게시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