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꼴은 말이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 살인율은 인구 10만 명당 81.4건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전, 단수, 생필품 부족 현상은 일상이다. 홍역, 결핵 등 전염병이 창궐하고 굶주림에 죽어가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좌우 구분 없는 정권의 무능, 미국의 경제 제재 등도 요인이지만, 1922년부터 약 100년간 이 나라를 옭아맨 ‘원유의 저주’를 빼놓을 수 없다. 원유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대외변수에 극히 취약한 경제구조를 만들었고 산업화를 이룰 기회나 성장 잠재력까지 갉아먹은 것이다.
○ 원유에 울고 웃는 천수답 경제
베네수엘라는 1920년대 초까지 커피와 옥수수가 주산물인 가난한 농업국이었다. 1922년 북서부 마라카이보 호수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나라의 운명이 바뀌었다. ‘검은 황금’이 뿜어져 나오면서 1970년대까지 경제는 줄곧 상승세를 탔다. 2017년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원유 매장량은 3008억 배럴로 독보적 세계 1위이다. 중동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2664억 배럴), 이란(1584억 배럴)보다 많다.
갑자기 돈방석에 앉은 국민의 씀씀이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 마이애미 번화가에서 닥치는 대로 물건을 사들였고 “싸네요. 2개 주세요(Dame Dos)”를 외쳤다. 수도 카라카스는 1970년대 말 엄청나게 비싼 항공료로 유명했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의 거점 도시였다. 카라카스에서 콩코드를 타고 프랑스 파리로 간 부유층은 사치품 쇼핑에 빠졌다.
1980년대에 들어 ‘저주’가 시작됐다. 세계 경제 불황으로 원유 수요가 줄면서부터다. 수출의 약 95%, GDP의 50%를 원유에 의존했던 베네수엘라는 저유가로 인한 수출량 급감에도 석유 수출을 대체할 산업을 키우지 못했다. 호황기 때 복지 정책을 고수하며 부족한 재정을 메우려 돈만 찍어댔다. 당연히 물가는 치솟고 생필품 품귀와 화폐 가치 하락이 뒤따랐다.
이후 약 40년간 베네수엘라에서는 ‘유가 등락에 따른 흥망성쇠’가 지겹도록 되풀이되고 있다. 지도자는 석유 대체 산업을 키우지 않았고, 보조금의 단맛에 길들여진 국민도 구조조정을 비롯한 허리띠 졸라매기를 거부해 ‘저주 후폭풍’만 거세졌다.
‘원유의 저주’ 뒤에는 세 사람이 있다. 저주의 씨앗을 심은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전 대통령(1974∼1979년, 1989∼1993년 재임), 싹을 키운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1999∼2013년), 치명타를 날린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이다.
1976년 페레스 당시 대통령은 ‘자원 민족주의’를 주창하며 국영석유회사인 PDVSA를 설립했다. 서구 선진국 회사들이 주도했던 석유산업 국유화로 정부가 판매 수익을 독점했다. 하지만 선진 석유회사와 달리 장비, 기술 고도화나 인재 양성에 소홀해 지천에 넘쳐나는 원유를 석유로 정제하지 못하는 비극의 토대도 쌓았다.
1980년대 찾아온 두 번의 유가 급락으로 외채가 급증했다. 페레스 정권은 1989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휘발유값 자유화’ 등 IMF가 요구했던 신(新)자유주의 개혁으로 대중교통 및 각종 생필품 가격이 치솟고 알짜 기업들이 외국 자본에 넘어갔다. 피폐한 삶에 지친 서민들은 우파 정부에 등을 돌렸다.
1999년 사회주의 개혁과 빈곤층 퇴치를 주창한 남미 좌파의 거두 차베스가 대통령에 올랐다. 중국 경제 급성장으로 2000년대 유가가 고공 행진하자 차베스는 페레스의 실수를 되풀이했다. 석유 수출로 번 돈을 무상의료, 무상교육, 저가주택 공급에 쏟아부었다. 음식, 의약품, 화장지 등 생필품 가격도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했다. 정치 노선은 달랐지만 원유를 통한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정책에는 좌우가 없었다.
차베스 사망 후 2013년 권좌를 이어받은 마두로 대통령은 유가 하락기에 집권했음에도 전임자의 복지정책을 줄이지 않았다. 2014년 6월 배럴당 115달러였던 유가가 2016년 2월 35달러까지 급락했는데도 볼리바르화 발행만 늘렸다. 그의 집권 후 베네수엘라는 초(超)인플레 수렁에 빠졌다. IMF는 지난해 137만 %였던 물가 상승률이 올해 1000만 %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대 경제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준. 지난해 2월 14일 0.5볼리바르에 불과했던 커피 한 잔은 1년 만인 올해 2월 1억8000만 볼리바르(1800볼리바르소베라노)로 가격이 약 36만 % 상승했다. 달러화로는 0.5달러도 안 되는 가격이다. 볼리바르소베라노는 지난해 8월 정부가 기존 통화 볼리바르를 10만 대 1로 액면 절하한 것이다.
7일 미국은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야당 지도자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약 2000만 달러(약 225억 원)어치의 구호품을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접한 콜롬비아 쿠쿠타에 보냈다. 미국은 군사 개입 가능성도 꾸준히 거론하고 있다.
한때 베네수엘라에서 하루 100만 배럴 규모의 원유를 수입했던 미국이 칼을 빼든 것이다. 이런 행보는 셰일가스 생산 효율이 높아져 미국이 에너지 자급자족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가능해졌다. 지난해 미국은 45년 만에 세계 최대 산유국 타이틀을 되찾았고 현재 하루 평균 119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EIA에 따르면 2018년 11월 현재 미국은 여전히 베네수엘라에서 하루 평균 56만 배럴의 석유제품을 수입한다. 캐나다(474만 배럴), 사우디아라비아(100만 배럴), 멕시코(60만1000배럴)에 이은 4번째 수입국이다. 특히 미 정유회사들은 중동산에 비해 저렴한 베네수엘라산 고유황 중질유를 선호한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이 황금 유전을 차지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미군 철군을 포함한 ‘고립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독 베네수엘라 사태에 깊숙이 개입하는 이유다. 그는 5일 국정연설 때도 “자유를 찾기 위한 베네수엘라 국민의 노력을 지지한다”며 과이도 지지 의사를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이웃나라인 브라질(철광석, 석유), 칠레(구리)도 ‘자원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다. 2000년대 중국 경제의 급성장으로 세계 원자재 수요가 늘자 수출 특수를 누린 나라들이다. 2010년대 원자재 수요가 급감했지만 핵심 지지층인 저소득층의 반발을 우려해 호황 때 설계된 공공지출과 복지를 줄이지 않았다. 결국 경제난과 물가 상승으로 좌파 정권들은 우파 정부로 교체됐다.
후안 파블로 알폰소 전 베네수엘라 개발장관(1903∼1979)은 1960년대 석유수출국기구(OPEC) 탄생을 주도했음에도 줄곧 탈(脫)석유와 산업화를 외친 인물이다. 그는 1976년 “지금으로부터 10년 혹은 20년 안에 원유가 우리를 파멸시킬 수 있다. 원유는 ‘악마의 배설물(devil‘s excrement)’”이라고 경고했다. 43년 전 경고가 지금의 베네수엘라를 예견이나 한 듯 생생하고 섬뜩하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정권 몰락 재촉하는 마두로 족벌정치와 부패
동아일보, 2019-02-16 03:00수정 2019-02-16 03:00
아들 호화 방탕생활 구설… 재혼한 부인 플로레스 일가도 각종 비리 의혹
베네수엘라 혼란을 가중시킨 또 다른 원인으로 마두로 정권의 ‘족벌 정치’가 꼽힌다. 정부 요직을 차지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57)의 현 부인 실리아 플로레스(63)와 아들 니콜라스 마두로 게라(29)는 물론 의붓아들과 조카까지 권력을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 각종 비리 의혹에 휩싸였다.
마두로 대통령은 두 번 결혼했다. 첫 부인 아드리아나 게라 앙굴로와의 사이에서 게라를 낳고 헤어졌다. 1990년대 초부터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변호사였던 플로레스와 연인이 됐다. 마두로보다 6세 연상인 플로레스 역시 재혼이다. 먼저 결혼에서 얻은 세 아들이 있다. 둘은 마두로 대통령의 집권 직후인 2013년 7월 정식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선 자녀가 없다.
베네수엘라 국민은 플로레스를 ‘레이디 맥베스’로 부른다. 미 폭스뉴스는 최근 그가 마약 밀매 등 각종 범죄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베네수엘라 최고 권력자는 마두로가 아니라 플로레스”라고 전했다. 경력과 위상은 남편 못지않다. 2006∼2011년 첫 여성 국회의장, 2012∼2013년 법무장관을 지냈다. 마두로는 아내를 ‘조국의 제1 전사’로 치켜세운다.
플로레스는 국회의장 시절 친척 16명을 국회에 취업시켰다. 친정 가족도 마약 밀수에 연루됐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그의 여동생이 남긴 두 조카는 2015년 11월 베네수엘라에서 미국으로 800kg의 코카인을 밀수하려다 아이티에서 체포됐다. 플로레스가 여동생 사망 후 이 둘을 입양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조카’가 아닌 ‘아들’이다. “대통령 부인 아들이 마약범”이란 소식이 언론 지상을 장식했던 이유다.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세 아들 중 장남인 월터 제이컵 플로레스도 말썽이다. 평범한 근로자인 그의 연봉은 1000달러 미만인데도 미국에 거주하며 호화 생활을 즐긴다. 그는 1회 이용료가 2만 달러(약 2300만 원)인 전용기를 타고 프랑스, 독일, 몰타, 스페인 등 유럽 각지를 여행한다.
아들 게라의 별명은 ‘작은 니콜라스’란 뜻의 ‘니콜라시토’. 아버지가 대통령에 오른 2013년 그는 불과 24세에 대통령궁 직속 반(反)부패사무국장 겸 국립영화협회장이 됐다. 한 해 뒤 국회의원, 2017년 ‘대통령 특사 및 부통령 고문’ 직책까지 얻었다. 마두로가 아들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그는 2015년 한 결혼식장에서 지갑을 꺼내 지폐를 마구 뿌렸고, 2017년 고급차 페라리 운전석에 앉아 있는 동영상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마두로 대통령은 두 번 결혼했다. 첫 부인 아드리아나 게라 앙굴로와의 사이에서 게라를 낳고 헤어졌다. 1990년대 초부터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변호사였던 플로레스와 연인이 됐다. 마두로보다 6세 연상인 플로레스 역시 재혼이다. 먼저 결혼에서 얻은 세 아들이 있다. 둘은 마두로 대통령의 집권 직후인 2013년 7월 정식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선 자녀가 없다.
베네수엘라 국민은 플로레스를 ‘레이디 맥베스’로 부른다. 미 폭스뉴스는 최근 그가 마약 밀매 등 각종 범죄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베네수엘라 최고 권력자는 마두로가 아니라 플로레스”라고 전했다. 경력과 위상은 남편 못지않다. 2006∼2011년 첫 여성 국회의장, 2012∼2013년 법무장관을 지냈다. 마두로는 아내를 ‘조국의 제1 전사’로 치켜세운다.
플로레스는 국회의장 시절 친척 16명을 국회에 취업시켰다. 친정 가족도 마약 밀수에 연루됐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그의 여동생이 남긴 두 조카는 2015년 11월 베네수엘라에서 미국으로 800kg의 코카인을 밀수하려다 아이티에서 체포됐다. 플로레스가 여동생 사망 후 이 둘을 입양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조카’가 아닌 ‘아들’이다. “대통령 부인 아들이 마약범”이란 소식이 언론 지상을 장식했던 이유다.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세 아들 중 장남인 월터 제이컵 플로레스도 말썽이다. 평범한 근로자인 그의 연봉은 1000달러 미만인데도 미국에 거주하며 호화 생활을 즐긴다. 그는 1회 이용료가 2만 달러(약 2300만 원)인 전용기를 타고 프랑스, 독일, 몰타, 스페인 등 유럽 각지를 여행한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