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여, 종교를 떠나라! 그 이유는?
프로이트가 종교에 대한 비판의 날을 가장 날카롭게 세운 저서 중의 하나는 「환상의 미래 The Future of Illusion」이다. 이 책에서 프로이트는 아버지에 대한 아이의 이중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아이는 아버지를 동경하고 존경하는 만큼 아버지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관점으로는 이러한 이중적 태도가 모든 종교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프로이트에게 종교적 관념은 간단히 말해 하나의 환상이다. 누차 강조하건대 이는 신학적이거나 철학적 관점이 아닌, 정신적 기원을 연구하는 심리학적 속성을 지시하는 정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시 말해 종교를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하고 절박한 원망(願望, wish)의 실현이라고 보는 관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유아기의 무력감 때문에 개인은 아버지의 사랑과 보호를 받고 싶은 욕구를 지속적으로 가지지만, 결국 그 무력감이 평생 지속되면서 훨씬 강력한 아버지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는 심리학적 상상력이 전제되어 있다.
'종교는 환상이다'라는 정의는 많은 신학자들이나 종교인들에게 몰매 맞을 만한 정의다. 그것은 곧 '종교는 없는 것이요, 잘못된 것'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개념들이 '종교가 환상'이라고 한 프로이트의 개념과 꼭 들어맞는 이해는 아니다. 프로이트는 그가 정의한 환상이 오류(error)와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는 종교가 어딘가가 잘못되어 있다고 말한 바 없다. 오류는 인간의 원망(wish)과는 무관한 개념인 반면, 프로이트가 제시하는 환상이라는 개념은 반드시 인간의 간절한 원망에서 유래된 심리적 구조와 관련이 있다. 또한 프로이트가 제시하는 환상은 망상(delusion)과도 상이한 개념이다. 종교가 그저 꿈꾸는 것이지,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프로이트는 결코 말한 바 없다. 망상은 현실과 모순되는 생각이요, 실현 불가능한 실재를 의미한다. 그 자신조차도 종교적 믿음을 환상이냐, 망상이냐로 보는가는 개인적 견해이지 결코 객관적으로 결론지을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프로이트가 환상이라고 본 종교는 무엇인가? 종교적 교리를 떠나 과정적인 측면에서 종교는 인간의 원망을 동반한 환상이라고 그는 주장했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결코 어느 종교 하나를 이단시한 적도, 그 내용의 허구성을 주장한 적도 없다는 점을 직시하는 것이 그의 종교관에 한층 다가갈 수 있는 첫걸음이다.
프로이트는 「환상의 미래」에서 종교의 운명을 어린 아이의 신경증 극복사례에 비견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는 오랜 임상경험을 통하여 어린 아이가 꼭 유아기를 통하여 신경증 단계를 거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유아기에 아이들은 본능적 욕구와 억압을 동시에 경험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욕구를 억압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우고, 그 배후에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무의식적 동기를 가지게 된다. 이후 지성의 합리적 작용에 의하여 무의식적 불안을 일으키는 부모의 이미지에서 선과 악을 분리하며 불안의 기원을 인식한다. 건강한 아이는 부모가 전적으로 억압적인 악마의 모습도, 혹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천사의 모습도 아니라는 점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어릴 적에는 부모에게 혼날까봐 했던 어린 아이의 행동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불안 때문이 아닌, 보다 성숙한 동기들을 가진 행동들로 변하게 된다. 이러한 유아신경증은 정신분석적인 치료가 필요한 일부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성장과정에서 저절로 극복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유아의 성장과정에서 신경증의 불가피한 운명처럼 인류가 종교를 떠나는 것도 필연적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지금이 바로 인류가 종교를 버려야 할 그 발달단계라고.
프로이트는 본능을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종교가 아닌, 오직 지성(intellect) 뿐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한 개인의 신경증에 온 열정을 바쳐 온 프로이트가 진단한 인류의 상태는 다음과 같다. "지성이 본능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날은 머나 먼 미래일 게 분명하지만 끝없이 먼 미래는 아닐 것이다. 지성은 인간이 서로 사랑하고 삶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을 목표로 설정할 것이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가진 그의 윤리관과 종교적 관심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는 도덕과 종교를 깡그리 철폐하고자 하는 인간 말종도 아니요, 비윤리적이고 무책임한 학자도 아니었다. 그 역시, 어느 종교학자나 신학자 못지않게 '인간이 서로 사랑하고 삶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을 목표'로 학문의 방향키를 잡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종교인들에게 자신이 세운 윤리적, 그리고 종교적 목표를 향한 행동지침을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그 먼 목표를 향해 가는 도중에 당신의 종교적 교리는 버림받을 운명이다." 종교인들에게 종교적 환상을 버리고 프로이트의 환상을 가지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환상은 무엇인가? 종교는 유아적 원망이므로, 좀더 성숙한 원망을 가진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결론은 종교가 아닌 과학적 사고였다. 그는 너무나도 자신 있게 말한다. "우리의 과학은 결코 환상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이 우리에게 줄 수 없는 것을 다른 데서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여기에서 종교를 대치한 과학이 가져다 준 인류의 발달단계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엄청나게 지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과학으로 대치하려고 한 프로이트의 종교 이해에만 초점을 두고 싶다. 과연 프로이트가 버리라고 한 것은 종교 그 자체인가? 나는 그의 방대한 저술의 흐름 가운데서 그가 인류에게 떠나라고 종용한 것은 종교 그 자체가 아니며, 유아적 원망으로서의 종교적 속성이 그가 대치하고픈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종교학자나 신학자가 관심을 갖는 개별종교 자체가 지닌 역사와 신학의 내용적 측면에 대해서 프로이트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프로이트에게 있어 유아기적 원망 형태의 종교성은 하나의 환상일 수밖에 없고, 이것으로는 서로 사랑하거나, 삶의 평안을 이룰 수 없다고 본 그는 "인류여, 종교를 떠나라! 지금이 그 때니라."라며 사뭇 예언자 같은 선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왜 이 시대에 프로이트의 종교비판으로부터 엉뚱하게 신학적 메시지를 캐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우리가 사는 21세기 전쟁의 시대에 종교적 신앙형태가 어떻게 '유아적 원망' 형태를 벗어나느냐가 우리의 지속적인 과제라고 믿기 때문이다. 오히려 프로이트의 시대보다 더 극심하게 유아적이고 폭력적인 원망으로 전쟁의 신을 만들어 내는 종교인들이 인류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는 위험한 주역들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버려야 할 것으로 본 종교의 퇴행적 기능 그 자체이다. 프로이트가 그토록 죽이고자 했던 그 병리적인 종교성은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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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권수영
제공처 ㈜살림출판사 http://www.sallimbooks.com 제공처의 다른 책 보기
[네이버 지식백과] 인류여, 종교를 떠나라! 그 이유는? (프로이트와 종교, 2005. 9. 10., 권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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