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설주가 미치지 않고서야 본인 섹스비디오 유포했겠느냐고 한 선배의 온 가족 수용소行”
⊙ 평양에는 은하수관현악단 단원들이 리설주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고 다녀 처형됐다는 소문 퍼져
⊙ 김정일 때도 첩 성혜림이 김정일 집에 들어간다고 이야기한 주민들 처벌
⊙ 단원 12명 모두 죽이는 데 20~30분 걸려… 일부 참관자 잔혹한 광경에 졸도
⊙ 단상(사형대)에 올라선 장수길과 리룡하 입안은 쑤셔 박은 쇠뭉치로 가득
⊙ 두 사람 처형 끝까지 참관한 장성택, 중앙당 청사로 돌아오자마자 연행
⊙ 장수길·리룡하 처형 때 장성택 이름 처음 언급… 간부들 그때야 보통 일이 아니라 판단
⊙ 평양에는 은하수관현악단 단원들이 리설주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고 다녀 처형됐다는 소문 퍼져
⊙ 김정일 때도 첩 성혜림이 김정일 집에 들어간다고 이야기한 주민들 처벌
⊙ 단원 12명 모두 죽이는 데 20~30분 걸려… 일부 참관자 잔혹한 광경에 졸도
⊙ 단상(사형대)에 올라선 장수길과 리룡하 입안은 쑤셔 박은 쇠뭉치로 가득
⊙ 두 사람 처형 끝까지 참관한 장성택, 중앙당 청사로 돌아오자마자 연행
⊙ 장수길·리룡하 처형 때 장성택 이름 처음 언급… 간부들 그때야 보통 일이 아니라 판단
김정은이 권력을 잡으면서 북한의 처형 방식이 더욱 잔인해졌다. 물론 상체가 거의 없어질 정도로 총을 쏴 죽였던 김정일 때도 잔혹했던 건 매한가지지만 강도가 더욱 세졌다. 아버지가 총으로 처형했다면 김정은은 포(砲)를 동원한다. 박격포·고사포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고모부인 장성택, 인민무력부장이었던 현영철이 대표적이다. 김정은은 둘을 고사포로 흔적도 없이 사살했다. 이들 외에도 김정은은 수많은 사람을 매우 잔인한 수법으로 처형했다. 한국의 북한 인권 단체인 북한전략센터는 김정은의 인권말살 행위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엘리트 출신 탈북민 다수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는 은하수관현악단 12명과 장성택 인맥인 리룡하(노동당 행정부 제1부부장), 장수길(노동당 행정부 부부장)의 공개처형을 직접 참관한 탈북자들의 증언이 담겼다. 그들의 증언을 보면 김정은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수많은 북한 인사를 처형하는지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현 정권의 김정은에 대한 환상으로 인해 ‘잔혹한 독재자 김정은’은 우리 사회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뜻이 없음이 확인돼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됐음에도 정부는 북한에 ‘당근’을 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당은 협상 결렬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 2차 미북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미가 대북정책을 놓고 연일 엇박자를 내자 주요 외신들이 ‘불화’ ‘이견’ ‘마찰’ 등의 표현을 쓰며 한미 관계의 이상 기류를 우려하는 보도를 쏟아내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김정은 편을 든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북한과 김정은을 마치 정상 국가의 민주적 지도자인 양 판단해서 벌어진 일이다.
《월간조선》은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은하수관현악단, 리룡하·장수길 공개처형 상황을 종합적·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 김정은을 제대로 알자는 취지다.
김정일이 생전 공들여 키운 은하수관현악단
“음악은 나의 첫사랑이고 영원한 길동무이며 혁명과 건설의 무기다.”
김정일에게 음악은 ‘혁명의 무기’였다. 김정일은 만수대예술단을 만들어서 김일성에게 바쳤고, 자기 시대에 와서는 북한식 전자악단인 ‘보천보전자악단’을 만들었다. 2009년 5월에는 후계자 김정은의 ‘은’ 자를 따서 북한 최초 팝 오케스트라인 ‘은하수관현악단’을 만들어줬다. 은하수관현악단은 연주자 70명에 성악가까지 합쳐 100명이 넘는 대규모 관현악단이다. 김정일은 생전 이 악단을 공들여 키웠다.
음악적 자질만 보면 악단의 수준은 높은 편이었다. 단원 다수가 외국 콩쿠르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황은미라는 단원은 이탈리아 산타세칠리아 국립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2006년 주세페디스테파노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다”며 “이 외에 러시아·이탈리아·중국 유학파도 여럿”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부인 리설주도 이 악단에서 독창가수로 활동했었다.
은하수관현악단은 2012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당시 악장은 서른 갓 넘은 바이올리니스트 문경진이었다. 그가 쓴 악기도 화제였다. 18세기 최고 명기(名器) 스트라디바리우스였기 때문이다. 수십억원을 줘도 살 수 없는 귀한 악기를 그가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궁금증을 낳았다. 이듬해 뜻밖의 뉴스가 전해졌다. 문경진이 ‘풍기 문란’ 혐의로 다른 단원들과 함께 기관총으로 처형당했다는 것이었다.
은하수관현악단 공개처형 참관한 학생의 증언
당시 공개처형을 참관한 장철구평양상업대학 3학년 학생이 밝힌 상황은 이렇다. 2012년 여름 어느 날 오후 2시쯤 당 위원장이 3학년생들을 운동장에 모이라고 했다. 나가 보니 1시간 내로 강건종합군관학교 운동장으로 집결하라고 했다. 공개처형 참관임을 직감했다. 강건군사훈련장은 평소 강건종합군관학교와 평양방위사령부가 사용하는 12km2 규모의 훈련장으로, 길이 100m, 폭 60m 크기의 사격장을 포함하고 있다. 이 사격장은 AK-47 소총 등 소화기 사격(small arms firing) 훈련에 쓰이는 곳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고위 간부나 대형 사고 친 병사를 처형하기도 한다.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을 고위층의 무덤이라 부르는 이유다.
강건종합군관학교에 도착하니, 운동장은 먼저 와 있는 평양시내 3학년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을 1순위로 대학생들이 자리를 잡았다. 장철구평양상업대학은 운동장 중간에 자리하게 됐다. 장철구평양상업대학은 북한 제일의 요리학교다. 해외 기자들이 평양에서 식사하거나 호텔에 묵을 때 만나게 되는 봉사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장철구평양상업대학 출신이다. 학교에는 봉사학부, 료리학부, 호텔경영학부 등이 있다. 졸업생들은 학창시절 배운 전공과 관련한 일을 하게 된다.
1시간 정도 기다리니 군용차 3대가 운동장으로 들어왔다. 이 중에는 4신(총열 4개)의 고사총을 실은 차량도 있었다. 죄인 12명(은하수관현악단 단원)의 얼굴은 가려져 있었고, 가슴에는 이름이 적힌 커다란 명찰이 달려 있었다. 금색 견장을 단 30~40명의 군인이 12명을 말뚝에 묶었다. 곧장 인민재판이 시작됐다.
“민족 반역자들을 처단하는 재판을 시작하겠다. 이들은 불순 녹화물과 성(性) 녹화물을 시청하고 그것을 재연하는 영상을 만들어 유포시켰다. 준엄한 인민의 이름으로 처형한다.”
12명이 묶인 말뚝과 고사총과의 거리는 40m가량 되어 보였다. 고사총과 참석 대학생들 사이의 거리는 12m 정도였다. 처형이 선언되자 4신의 고사총이 한 사람에게 연발로 난사됐다. 그 사람의 형체가 사라지자, 다시 장전해 그다음 사람에게 발사하는 방식으로 처형이 진행됐다. 고사총은 북한이 전투기 등 항공기를 격추하기 위해 보유한 구경 14.5mm의 대공화기다. 6·25 때 소련에서 들여왔으며 최대 사거리 4km인 기관포의 일종이다. 12명을 모두 죽이는 데 20~30분이 걸렸다.
“공화국 어디에도 묻힐 곳 없다”는 음성과 함께 탱크 등장
끝났다 싶었는데, “이런 민족반역자들은 공화국 어디에도 묻힐 곳이 없다”는 음성과 함께 탱크가 등장했다. 탱크는 이미 고사총 난사로 형체가 사라진 12명의 사체 잔해 위를 지그재그로 전진하고 후진했다. 사체 잔해마저 탱크로 뭉갠 것이다. 사형수 중엔 임신부도 있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일부는 졸도하기도 했다.
사형 집행 후 당 위원장은 오후 7시까지 학교에 집합하라고 명령했다. 대학교 운동장에 전 학년 학생이 집결했다. 당 위원장은 “(은하수관현악단 단원) 처형 내용을 설명하고, 불순 녹화물 투쟁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녹화물이나 미국 녹화물을 본 사람이 있더라도 지금 ‘자수서’에 적어 제출하면 용서해주겠다”고 했다. 이 같은 투쟁은 평양시 전 대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진행됐다.
평양에는 은하수관현악단 단원들이 동료 단원이었던 김정은 부인 리설주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고 다녔기 때문에 처형된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실제 2011년 경상유치원 방문에 리설주가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대학 선배 두 명이 리설주 과거 행실을 가십거리로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이 등장하는 섹스비디오를 만들어 스스로 유포할 미친 사람이 있겠느냐며 리설주 과거 행적을 이야기하고 다니다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때도 수령의 사생활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했고, 김정일의 첩이었던 성혜림이 김정일 집에 들어간다고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사례가 있었다.
은하수관현악단원들의 처형에 대해 일본 《아사히신문》은 “리설주와 관련된 추문을 은폐하기 위해 은하수관현악단 단원들을 공개 처형했다”고 전했다. 리설주도 한때 은하수관현악단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국내에도 리설주도 연관됐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하지만 리설주 음란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음란물의 전파 속도는 어마어마하다. 한 정부 관계자는 “빠른 속도로 퍼지는 음란물의 속성상 정말 리설주 음란 동영상이 있다면 벌써 중국 동북 3성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유입됐을 것”이라고 했다.
탈북자나 중국 내 북한 소식통들은 “만약 리설주 음란물이 존재한다면 당시 국내 정보기관이나 언론사에 팔아넘겼을 것”이라며 “리설주 동영상은 말만 무성할 뿐 직접 봤다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당시 북한은 국내 언론의 ‘리설주 포르노 촬영설’ 보도에 대해 “감히 우리의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며 “추호도 용서치 않고 가차 없이 징벌할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조선중앙통신’은 “괴뢰패당이 어용 매체들을 통해 감히 우리의 최고 존엄을 비방 중상하는 모략적 악담질을 거리낌 없이 해대고 있다”며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민족의 최고 존엄까지 무엄하게 훼손하려 분별없이 날뛴 천하의 불한당 무리는 없었다. 아무리 동족대결에 환장이 되였어도 분별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법이다”라고 했다
장성택 죽이기 전 측근 잔혹하게 처형한 김정은
김정은은 북한 권력 2인자이자 고모부였던 장성택을 처형하며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을 무색게 한다는 평을 들었다. 주원장은 중국 역사상 숙청을 가장 잔혹하게 한 군주다. 장성택 제거의 시작은 최측근인 리룡하 노동당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의 사형이었다. 김정은은 리룡하와 장수길이 자신의 명령을 즉석에서 실행하지 않고 “장성택에게 보고하겠다”고 토를 달자, 격노했다. 만취 상태였던 김정은은 리룡하·장수길의 처형을 명령했다. 리룡하와 장수길은 2013년 11월 16일,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서 처형됐다.
사실 리룡하는 장성택이 많이 아끼던 측근이었지만 장수길은 ‘장성택 사람’이 아니었다. 장성택은 사업 수완이 뛰어난 군부 출신 장수길을 기용했을 뿐이었다. 쉽게 설명하면 리룡하는 행정부 등에서 작성한 중요 보고서를 종합해 장성택에게 보고하는 사람이었고, 장수길은 돈을 벌어 바치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처형되기 며칠 전, 김정은은 장성택의 조선노동당 행정부장 권한을 정지시켰다. 권한이 정지되면 사무실에는 그대로 출근을 하지만, 업무는 볼 수 없다. 사격장으로 이동할 때도 장성택은 일반성원 버스를 탔다. 간부들이 사격장 등으로 집단 이동할 때는 어느 한 장소에 집결해 조직지도부, 행정부, 선전부 등의 단위로 정해진 버스에 탑승해 움직인다. 각 부서의 직위에 따라 부장급, 국장급 등 직급에 따른 탑승버스가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행정부 부장급이 타는 버스, 부부장급이 타는 버스, 조직부 부장급 버스 등 직급에 따라 탑승 차량이 정해진다. 하지만 당시 부장이었던 장성택은 부장급 버스에 타지 못했다.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 도착해서도 장성택은 일반 지도원 지정석에 앉았다. 사격장에도 직위에 따른 지정석이 있다.
간부들, 장성택 업무정지 혁명화 정도로 끝날 것으로 판단
그럼에도 간부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권한 정지 상태였던 만큼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행정부 구성원은 과거처럼 기껏해야 ‘혁명화’나 ‘사상비판’ 정도의 처분으로 장성택의 권한 정지 건이 끝날 것으로 판단했다.
사격장에는 인민무력성, 성, 중앙기관 간부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격장 맞은편에 20m 높이의 하얀 백포가 씌워진 단상이 있었다. 인민군 보위국 복장 군인 몇 명이 분주히 단상을 오갔는데, 자리에 모인 간부들은 당시 누구를 처형하는지 몰랐다. 모두 착석하자 단상에서 “이제부터 반당, 반혁명분자에 대한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는 음성과 함께 단상에 씌워진 백포가 걷혔다.
리룡하와 장수길이 서 있었다. 모두가 놀랐다. 이윽고 두 사람을 향해 고정된 4신의 고사총이 모습을 드러냈다. 4신 고사총이 한 사람에게 난사되는 처형이었다. 4신 고사총은 총신 하나에 60발이 장전된다. 그러니까 한 번 쏘면 240발이 날아간다. 240발의 총탄을 맞은 시체는 완전히 분해된다. 이런 상황이 주는 공포의 무게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한다.
너무 맞아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인 장수길과 리룡하
단상 위에 서 있던 장수길과 리룡하의 모습은 처참했다. 너무 맞아서,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입안은 쑤셔 박은 쇠뭉치가 가득했다. 북한에서는 고문한 뒤 말을 못 하게 쇠뭉치를 입안에 쑤셔 넣는다. 죄목이 나열됐다.
“이들은 장성택을 등에 업고 최고사령관 동지의 명령전달 통지를 받고도 행정부 회의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명령전달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명령이 일주일 후면 뒤집힐 것이라고 망동했다.”
장성택이란 이름이 언급되자, 참석자들은 동요했다. 곧장 사형이 언도됐고, 사격명령이 떨어졌다. 따다닥, 따다닥, 따다닥, 따다닥. 고사총이 4번 발사됐고, 처형은 순식간에 끝났다. 단상에 있던 장수길, 리룡하의 형체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참석자들은 두 사람의 죄목에 장성택의 이름이 거론되고 나서야 이번 사태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당사자 장성택도, 두 사람의 처형을 끝까지 참관했다. 그는 타고 왔던 버스를 타고 중앙당 청사로 돌아오자마자 974호 호위총국 요원들에게 연행됐다. 중앙당 청사에서는 974호 부대원이나 창광분주소(노동당 간부들에 대한 법적 조사와 처리를 담당하는 본부당 직속 부서) 요원들만 최고 간부를 체포할 수 있다.
장성택은 체포되고(2013년 11월 16일) 한 달도 안 돼(12월 12일)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됐다. 장성택 사형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장성택 사형은 총탄 90여 발을 쏘는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시신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일부 참가자 중에는 졸도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참혹했다”고 전했다. 보고서를 만든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는 2017년 2월 13일 국제사법재판소(ICC)에 김정은의 집단학살 사건인 장성택 사건을 고발했다.⊙
보고서에는 은하수관현악단 12명과 장성택 인맥인 리룡하(노동당 행정부 제1부부장), 장수길(노동당 행정부 부부장)의 공개처형을 직접 참관한 탈북자들의 증언이 담겼다. 그들의 증언을 보면 김정은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수많은 북한 인사를 처형하는지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현 정권의 김정은에 대한 환상으로 인해 ‘잔혹한 독재자 김정은’은 우리 사회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뜻이 없음이 확인돼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됐음에도 정부는 북한에 ‘당근’을 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당은 협상 결렬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 2차 미북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미가 대북정책을 놓고 연일 엇박자를 내자 주요 외신들이 ‘불화’ ‘이견’ ‘마찰’ 등의 표현을 쓰며 한미 관계의 이상 기류를 우려하는 보도를 쏟아내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김정은 편을 든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북한과 김정은을 마치 정상 국가의 민주적 지도자인 양 판단해서 벌어진 일이다.
《월간조선》은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은하수관현악단, 리룡하·장수길 공개처형 상황을 종합적·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 김정은을 제대로 알자는 취지다.
김정일이 생전 공들여 키운 은하수관현악단
2012년 3월 14일 밤(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살 플레옐’ 콘서트홀에서 공연하는 은하수관현악단. 은하수관현악단 단원 12명은 불순 녹화물과 性 녹화물을 시청하고 그것을 재연하는 영상을 만들어 유포시켰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처형됐다. |
김정일에게 음악은 ‘혁명의 무기’였다. 김정일은 만수대예술단을 만들어서 김일성에게 바쳤고, 자기 시대에 와서는 북한식 전자악단인 ‘보천보전자악단’을 만들었다. 2009년 5월에는 후계자 김정은의 ‘은’ 자를 따서 북한 최초 팝 오케스트라인 ‘은하수관현악단’을 만들어줬다. 은하수관현악단은 연주자 70명에 성악가까지 합쳐 100명이 넘는 대규모 관현악단이다. 김정일은 생전 이 악단을 공들여 키웠다.
음악적 자질만 보면 악단의 수준은 높은 편이었다. 단원 다수가 외국 콩쿠르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황은미라는 단원은 이탈리아 산타세칠리아 국립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2006년 주세페디스테파노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다”며 “이 외에 러시아·이탈리아·중국 유학파도 여럿”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부인 리설주도 이 악단에서 독창가수로 활동했었다.
은하수관현악단은 2012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당시 악장은 서른 갓 넘은 바이올리니스트 문경진이었다. 그가 쓴 악기도 화제였다. 18세기 최고 명기(名器) 스트라디바리우스였기 때문이다. 수십억원을 줘도 살 수 없는 귀한 악기를 그가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궁금증을 낳았다. 이듬해 뜻밖의 뉴스가 전해졌다. 문경진이 ‘풍기 문란’ 혐의로 다른 단원들과 함께 기관총으로 처형당했다는 것이었다.
은하수관현악단 공개처형 참관한 학생의 증언
당시 공개처형을 참관한 장철구평양상업대학 3학년 학생이 밝힌 상황은 이렇다. 2012년 여름 어느 날 오후 2시쯤 당 위원장이 3학년생들을 운동장에 모이라고 했다. 나가 보니 1시간 내로 강건종합군관학교 운동장으로 집결하라고 했다. 공개처형 참관임을 직감했다. 강건군사훈련장은 평소 강건종합군관학교와 평양방위사령부가 사용하는 12km2 규모의 훈련장으로, 길이 100m, 폭 60m 크기의 사격장을 포함하고 있다. 이 사격장은 AK-47 소총 등 소화기 사격(small arms firing) 훈련에 쓰이는 곳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고위 간부나 대형 사고 친 병사를 처형하기도 한다.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을 고위층의 무덤이라 부르는 이유다.
강건종합군관학교에 도착하니, 운동장은 먼저 와 있는 평양시내 3학년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을 1순위로 대학생들이 자리를 잡았다. 장철구평양상업대학은 운동장 중간에 자리하게 됐다. 장철구평양상업대학은 북한 제일의 요리학교다. 해외 기자들이 평양에서 식사하거나 호텔에 묵을 때 만나게 되는 봉사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장철구평양상업대학 출신이다. 학교에는 봉사학부, 료리학부, 호텔경영학부 등이 있다. 졸업생들은 학창시절 배운 전공과 관련한 일을 하게 된다.
1시간 정도 기다리니 군용차 3대가 운동장으로 들어왔다. 이 중에는 4신(총열 4개)의 고사총을 실은 차량도 있었다. 죄인 12명(은하수관현악단 단원)의 얼굴은 가려져 있었고, 가슴에는 이름이 적힌 커다란 명찰이 달려 있었다. 금색 견장을 단 30~40명의 군인이 12명을 말뚝에 묶었다. 곧장 인민재판이 시작됐다.
“민족 반역자들을 처단하는 재판을 시작하겠다. 이들은 불순 녹화물과 성(性) 녹화물을 시청하고 그것을 재연하는 영상을 만들어 유포시켰다. 준엄한 인민의 이름으로 처형한다.”
12명이 묶인 말뚝과 고사총과의 거리는 40m가량 되어 보였다. 고사총과 참석 대학생들 사이의 거리는 12m 정도였다. 처형이 선언되자 4신의 고사총이 한 사람에게 연발로 난사됐다. 그 사람의 형체가 사라지자, 다시 장전해 그다음 사람에게 발사하는 방식으로 처형이 진행됐다. 고사총은 북한이 전투기 등 항공기를 격추하기 위해 보유한 구경 14.5mm의 대공화기다. 6·25 때 소련에서 들여왔으며 최대 사거리 4km인 기관포의 일종이다. 12명을 모두 죽이는 데 20~30분이 걸렸다.
“공화국 어디에도 묻힐 곳 없다”는 음성과 함께 탱크 등장
끝났다 싶었는데, “이런 민족반역자들은 공화국 어디에도 묻힐 곳이 없다”는 음성과 함께 탱크가 등장했다. 탱크는 이미 고사총 난사로 형체가 사라진 12명의 사체 잔해 위를 지그재그로 전진하고 후진했다. 사체 잔해마저 탱크로 뭉갠 것이다. 사형수 중엔 임신부도 있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일부는 졸도하기도 했다.
사형 집행 후 당 위원장은 오후 7시까지 학교에 집합하라고 명령했다. 대학교 운동장에 전 학년 학생이 집결했다. 당 위원장은 “(은하수관현악단 단원) 처형 내용을 설명하고, 불순 녹화물 투쟁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녹화물이나 미국 녹화물을 본 사람이 있더라도 지금 ‘자수서’에 적어 제출하면 용서해주겠다”고 했다. 이 같은 투쟁은 평양시 전 대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진행됐다.
평양에는 은하수관현악단 단원들이 동료 단원이었던 김정은 부인 리설주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고 다녔기 때문에 처형된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실제 2011년 경상유치원 방문에 리설주가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대학 선배 두 명이 리설주 과거 행실을 가십거리로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이 등장하는 섹스비디오를 만들어 스스로 유포할 미친 사람이 있겠느냐며 리설주 과거 행적을 이야기하고 다니다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때도 수령의 사생활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했고, 김정일의 첩이었던 성혜림이 김정일 집에 들어간다고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사례가 있었다.
은하수관현악단원들의 처형에 대해 일본 《아사히신문》은 “리설주와 관련된 추문을 은폐하기 위해 은하수관현악단 단원들을 공개 처형했다”고 전했다. 리설주도 한때 은하수관현악단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국내에도 리설주도 연관됐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하지만 리설주 음란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음란물의 전파 속도는 어마어마하다. 한 정부 관계자는 “빠른 속도로 퍼지는 음란물의 속성상 정말 리설주 음란 동영상이 있다면 벌써 중국 동북 3성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유입됐을 것”이라고 했다.
탈북자나 중국 내 북한 소식통들은 “만약 리설주 음란물이 존재한다면 당시 국내 정보기관이나 언론사에 팔아넘겼을 것”이라며 “리설주 동영상은 말만 무성할 뿐 직접 봤다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당시 북한은 국내 언론의 ‘리설주 포르노 촬영설’ 보도에 대해 “감히 우리의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며 “추호도 용서치 않고 가차 없이 징벌할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조선중앙통신’은 “괴뢰패당이 어용 매체들을 통해 감히 우리의 최고 존엄을 비방 중상하는 모략적 악담질을 거리낌 없이 해대고 있다”며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민족의 최고 존엄까지 무엄하게 훼손하려 분별없이 날뛴 천하의 불한당 무리는 없었다. 아무리 동족대결에 환장이 되였어도 분별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법이다”라고 했다
장성택 죽이기 전 측근 잔혹하게 처형한 김정은
장성택의 측근으로 공개처형되었다는 장수길. |
사실 리룡하는 장성택이 많이 아끼던 측근이었지만 장수길은 ‘장성택 사람’이 아니었다. 장성택은 사업 수완이 뛰어난 군부 출신 장수길을 기용했을 뿐이었다. 쉽게 설명하면 리룡하는 행정부 등에서 작성한 중요 보고서를 종합해 장성택에게 보고하는 사람이었고, 장수길은 돈을 벌어 바치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처형되기 며칠 전, 김정은은 장성택의 조선노동당 행정부장 권한을 정지시켰다. 권한이 정지되면 사무실에는 그대로 출근을 하지만, 업무는 볼 수 없다. 사격장으로 이동할 때도 장성택은 일반성원 버스를 탔다. 간부들이 사격장 등으로 집단 이동할 때는 어느 한 장소에 집결해 조직지도부, 행정부, 선전부 등의 단위로 정해진 버스에 탑승해 움직인다. 각 부서의 직위에 따라 부장급, 국장급 등 직급에 따른 탑승버스가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행정부 부장급이 타는 버스, 부부장급이 타는 버스, 조직부 부장급 버스 등 직급에 따라 탑승 차량이 정해진다. 하지만 당시 부장이었던 장성택은 부장급 버스에 타지 못했다.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 도착해서도 장성택은 일반 지도원 지정석에 앉았다. 사격장에도 직위에 따른 지정석이 있다.
간부들, 장성택 업무정지 혁명화 정도로 끝날 것으로 판단
그럼에도 간부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권한 정지 상태였던 만큼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행정부 구성원은 과거처럼 기껏해야 ‘혁명화’나 ‘사상비판’ 정도의 처분으로 장성택의 권한 정지 건이 끝날 것으로 판단했다.
사격장에는 인민무력성, 성, 중앙기관 간부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격장 맞은편에 20m 높이의 하얀 백포가 씌워진 단상이 있었다. 인민군 보위국 복장 군인 몇 명이 분주히 단상을 오갔는데, 자리에 모인 간부들은 당시 누구를 처형하는지 몰랐다. 모두 착석하자 단상에서 “이제부터 반당, 반혁명분자에 대한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는 음성과 함께 단상에 씌워진 백포가 걷혔다.
리룡하와 장수길이 서 있었다. 모두가 놀랐다. 이윽고 두 사람을 향해 고정된 4신의 고사총이 모습을 드러냈다. 4신 고사총이 한 사람에게 난사되는 처형이었다. 4신 고사총은 총신 하나에 60발이 장전된다. 그러니까 한 번 쏘면 240발이 날아간다. 240발의 총탄을 맞은 시체는 완전히 분해된다. 이런 상황이 주는 공포의 무게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한다.
너무 맞아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인 장수길과 리룡하
공개처형된 리룡하 행정부 제1부부장. |
“이들은 장성택을 등에 업고 최고사령관 동지의 명령전달 통지를 받고도 행정부 회의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명령전달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명령이 일주일 후면 뒤집힐 것이라고 망동했다.”
장성택이란 이름이 언급되자, 참석자들은 동요했다. 곧장 사형이 언도됐고, 사격명령이 떨어졌다. 따다닥, 따다닥, 따다닥, 따다닥. 고사총이 4번 발사됐고, 처형은 순식간에 끝났다. 단상에 있던 장수길, 리룡하의 형체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참석자들은 두 사람의 죄목에 장성택의 이름이 거론되고 나서야 이번 사태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당사자 장성택도, 두 사람의 처형을 끝까지 참관했다. 그는 타고 왔던 버스를 타고 중앙당 청사로 돌아오자마자 974호 호위총국 요원들에게 연행됐다. 중앙당 청사에서는 974호 부대원이나 창광분주소(노동당 간부들에 대한 법적 조사와 처리를 담당하는 본부당 직속 부서) 요원들만 최고 간부를 체포할 수 있다.
장성택은 체포되고(2013년 11월 16일) 한 달도 안 돼(12월 12일)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됐다. 장성택 사형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장성택 사형은 총탄 90여 발을 쏘는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시신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일부 참가자 중에는 졸도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참혹했다”고 전했다. 보고서를 만든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는 2017년 2월 13일 국제사법재판소(ICC)에 김정은의 집단학살 사건인 장성택 사건을 고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