寫眞

이화고등여학교 4학년 시절의 이희호여사

이강기 2019. 6. 12. 00:08


[포토] 이희호의 삶, “가장 행복했던 때”

한겨레신문

등록 :2019-06-11 16:51수정 :2019-06-1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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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고등여학교 4학년 시절 친구들과 함께 한 이희호 이사장(맨오른쪽). 김대중 평화센터 제공
이화고등여학교 4학년 시절 친구들과 함께 한 이희호 이사장(맨오른쪽). 김대중 평화센터 제공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10일 별세했다.

1922년 태어나 2019년 눈을 감기까지 이땅의 척박한 여성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온몸을 던진 그의 삶에는 우리 근현대사 주요 역사와 아픔이 새겨져 있다.

< 한겨레>는 2015년 4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이희호 이사장의 일생을 그리는 ‘이희호 평전-고난의 길 신념의 길’을 80차례 장기 연재했다. 당시 이희호 이사장은 자신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며 전국에서 모인 친구들과 이화고등여학교(이화고녀)에서 10대 시절을 보낸 “이화고녀 4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회고했다. ▶관련기사 [길을 찾아서] 이희호 “이화고녀 4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 회상

당시 사진과 이희호 개인 삶의 따뜻했던 순간들을 모아본다.

이화고녀 4학년 때 체육대회에서 통치마에 저고리를 입고 달리기 시합에 출전한 이희호(앞줄 왼쪽 넷째 단발머리)의 모습.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이화고녀 4학년 때 체육대회에서 통치마에 저고리를 입고 달리기 시합에 출전한 이희호(앞줄 왼쪽 넷째 단발머리)의 모습.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40년 이화고녀를 졸업한 이희호(뒷줄 왼쪽 둘째)는 어머니 간병과 죽음, 아버지의 재혼 등 순탄치 않은 가족사를 겪느라 2년 뒤에야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사진은 서산에서 서울을 오가며 이화여전 입학 준비를 하던 1941~42년 무렵으로, 아버지(맨 오른쪽)와 함께한 모습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40년 이화고녀를 졸업한 이희호(뒷줄 왼쪽 둘째)는 어머니 간병과 죽음, 아버지의 재혼 등 순탄치 않은 가족사를 겪느라 2년 뒤에야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사진은 서산에서 서울을 오가며 이화여전 입학 준비를 하던 1941~42년 무렵으로, 아버지(맨 오른쪽)와 함께한 모습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62년 5월 결혼식을 올린 이희호와 김대중은 그 시절 여느 신혼부부들처럼 충남 온양온천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당시 아산의 현충사를 둘러보는 모습으로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성역화 사업을 하기 이전이다. 맨 오른쪽은 안내원.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62년 5월 결혼식을 올린 이희호와 김대중은 그 시절 여느 신혼부부들처럼 충남 온양온천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당시 아산의 현충사를 둘러보는 모습으로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성역화 사업을 하기 이전이다. 맨 오른쪽은 안내원.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이희호는 결혼 이듬해 1963년 11월12일 아들 홍걸을 낳았다. 마흔한살 노산이었으나, 6대 총선에서 목포에 출마한 남편 김대중은 선거일(26일)을 코앞에 둔 때여서 홀로 병원에가서 수술을 받았다. 사진은 1964년 어느 날 새 가족이 모처럼 창경원으로 나들이를 갔을 때로, 김대중이 안고 있는 아이가 막내 홍걸, 이희호 오른쪽이 고교 1년생 맏아들 홍일이다. 중학교 3학년이던 둘째 홍업은 빠져 있다. 뒷줄에 선 여자는 가사도우미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이희호는 결혼 이듬해 1963년 11월12일 아들 홍걸을 낳았다. 마흔한살 노산이었으나, 6대 총선에서 목포에 출마한 남편 김대중은 선거일(26일)을 코앞에 둔 때여서 홀로 병원에가서 수술을 받았다. 사진은 1964년 어느 날 새 가족이 모처럼 창경원으로 나들이를 갔을 때로, 김대중이 안고 있는 아이가 막내 홍걸, 이희호 오른쪽이 고교 1년생 맏아들 홍일이다. 중학교 3학년이던 둘째 홍업은 빠져 있다. 뒷줄에 선 여자는 가사도우미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정리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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