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

소변 안 튀고 청소 간편…신라인 화장실엔 ‘과학’이 있었다

이강기 2019. 7. 13. 10:58

소변 안 튀고 청소 간편…신라인 화장실엔 ‘과학’이 있었다


                                        

 
이훈범의 문명기행
신라 태자가 거주한 경주 동궁에서 발굴된 8세기 중엽의 수세식 화장실 유적. 우리나라 고대 화장실 유적 중 처음으로 화장실 건물과 석조 변기, 오물 배수시설이 함께 발견됐다. [연합뉴스]

신라 태자가 거주한 경주 동궁에서 발굴된 8세기 중엽의 수세식 화장실 유적. 우리나라 고대 화장실 유적 중 처음으로 화장실 건물과 석조 변기, 오물 배수시설이 함께 발견됐다. [연합뉴스]


지난 회 ‘1400년 전 수세식 화장실, 백제 왕궁은 뭔가 달랐다’ 기사(중앙SUNDAY 6월 29~30일자)에 독자들의 관심이 많았다. 당연히 질문도 많았는데, 가장 많았던 건 ‘천 년 묵은 똥’에 관한 것이었다. “똥이 어떻게 지금까지 남아있을 수 있느냐?” “어떻게 아직도 똥 냄새가 나느냐?” “기생충 알이 여태 보존될 수 있느냐?”는 거였다.
 

백제 실내 용변기는 남녀용 따로
호랑이 닮은 남성용은 일명 ‘호자’
서양 중세 땐 성벽 밖에 방 매달아
해자로 배설물 곧바로 떨어지게

‘역시 원초적인 문제에는 다들 관심이 많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기사를 한번 더 써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기억을 환기하기 위해 지난 기사를 다시 보자면 이렇다.
 
“구덩이 바닥에 수분과 유기물을 함유한 검은 흙이 쌓여있었고, 흙 속에서 짚신과 식물 씨앗, 나무 막대기 등이 발견됐(...)다. (...) 흙을 퍼낼수록 악취가 심해졌다. ‘아무리 곡식이 썩었다고 쳐도 이 정도는 아닐 텐데’라는 의심이 커져갈 무렵, 자문위원으로 현장을 방문한 고려대 이홍종 교수가 ‘화장실 같다’는 의견을 냈다.”
  
유럽도 19세기 말에야 첫 정화시설
 
고고학자들이 말하는 ‘유물의 보존을 위한 최적의 조건’은 보통 두 가지다. 사막지대처럼 습기가 없이 아주 건조하거나 아니면 진흙으로 덮여 공기가 차단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전자는 건어물처럼 보존이 될 수 있고, 후자는 깡통처럼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전북 부여 왕궁리 화장실 유적은 후자의 경우로 보존된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화장실 웅덩이를 진흙으로 덮었다면 그야말로 ‘백제인의 볼일 본 흔적’이 깡통처럼 ‘싱싱하게’ 남아있을 수도 있었을 터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지 않나. 백제가 멸망하고 왕궁터는 폐허가 됐을 것이고, 그 자리에 절이 세워졌다 해도 거주인구가 크게 줄었을 테니 궁인들이 사용하던 화장실도 차츰 인적이 끊겼을 것이다. 이후 절도 무너지고 그 자리에 흙이 쌓인 채로 5층석탑 하나만 남아 그 자리를 지키게 된 것이다.
 
그래서 1400년 전 백제인의 똥이 ‘수분과 유기물을 함유한 검은 흙’으로 남아있게 된 거다. 냄새 역시 마찬가지다. ‘싱싱한’ 똥 냄새가 났다면 조사원들이 구덩이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터다. 1400년이란 세월이 화장실을 곡식 창고로 생각하게끔 뭔가 ‘불쾌하지만 각오할 만한’ 냄새로 숙성시킨 것이다.
 
기생충 알의 경우는 과학의 승리다. 트로이를 발굴한 하인리히 슐리만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과학이 발전한 것이다. (지금의 수준으로 보면 쉴리만의 발굴은 거의 야만적인 유물 파괴다.) 알의 흔적만 있어도 DNA를 추출해 성충이 어떤 종류인지 알아낼 수 있다. 호박 속의 모기에서 추출한 DNA로 공룡을 복제해 낸다는 영화 ‘주라기 공원’이 상상으로 그치지 않을 날이 곧 올 수도 있다.
 
실제로 기생충 알 발견은 이제 큰 뉴스가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살던 곳에서는 대개 기생충 알들이 발굴됐다. 2012년에는 서울의 광화문 담장과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주변, 시 청사 부근에서 이미 조선시대의 회충과 편충 알이 다수 발견됐다. 경복궁 앞에서 추출한 흙에서는 1g당 최고 165개의 알이 나오기도 했다. 한양 인구가 팽창하다 보니 사람이 살면 안 되는 육조 거리 앞까지 민가가 가득 찼고, 필연적으로 배설물도 넘쳐났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영조가 “도성 안에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고 탄식했을까.
 
사람이 ‘먹고 살아야’ 하는 만큼, 역시 ‘싸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원시 수렵사회나 유목 사회에서는 아무 데서나 볼일을 볼 수 있었으니 화장실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터다. 하지만 농경정착사회가 되면서 배변으로 인한 악취와 위생 문제가 대두됐을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특정한 곳에서만 볼일을 보자는 약속이 행해졌을 테고, 그 특정장소를 보다 쾌적하게 만드는 발전이 이뤄졌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문명의 출발은 화장실에서 비롯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파키스탄에 있는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 모헨조다로에서도 화장실 흔적이 발견됐다. 기원전 4000년까지 거슬러올라갈 수 있는 화장실이다. 사람들은 흔히 오래전 인류가 자신보다 똑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과학자들은 구석기시대의 크로마뇽인 아이를 타임머신에 태워 오늘날에 데려온 뒤 똑같은 교육을 시킨다면 오늘날 아이들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축적된 지식이 없었다는 것뿐이며, 그들이 터득한 기술이 바탕이 되지 않고는 오늘날 고도의 과학문명도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화장실만 놓고 보자면 사실 오늘날 문명이 과거에 비해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모헨조다로의 화장실 역시 쌓은 벽돌 위에 나무판을 놓고 그 위에 올라 앉아 변을 봤던 것으로 추측된다. 배설물은 배수로와 하수시설을 통해 흘려 보냈다고 한다. 오늘날 나아진 게 있다면 배설물이 여러 단계의 정화시설을 거쳐 강물로 흘러가는 정도다. 정화시설 역시 최초로 설치된 것이 고작 19세기 말이다. 영국의 도시공학자인 조지프 바잘게트라는 사람이 고안한 것이다. 그 전까지 런던 템스강은 시민들이 쏟아내는 오수로 악취가 진동했다. 이를 막기 위해 템스강변에 있는 웨스트민스터(영국 의회) 의사당의 커튼에 라임향을 섞은 소독액을 늘 뿌려둬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망토 쓰고 양동이에 앉아 용변도
 
성벽에 돌출된 형태의 유럽 중세 화장실. 아래쪽이 뚫려있어 배설물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성벽에 돌출된 형태의 유럽 중세 화장실. 아래쪽이 뚫려있어 배설물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문명의 암흑기라 불리는 서양 중세 때는 화장실마저 퇴화했다. 영주들은 성벽 밖으로 툭 튀어나온 방을 만들어 화장실로 썼다. 그 방의 바닥은 뚫려있고 그 위에 나무판을 깔아 배설물을 성벽 아래 해자로 바로 떨어뜨리는 원시적인 구조였다. 영주가 이 정도니 일반 백성들의 사정이 어땠을지는 상상이 어렵지 않다.
 
화장실로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논할 것은 아니지만, 백제나 신라의 화장실 유적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오늘날 남아있는 신라의 화장실 유적을 보면 참으로 과학적이다. 구덩이 위에 타원형의 구멍을 뚫은 석판을 깔아 사용했는데 구멍을 깎은 각도에서 소변이 튀지 않고, 볼일을 본 뒤 청소하기 편하도록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백제의 남성용 이동식 변기.

백제의 남성용 이동식 변기.


백제의 실내용 용변기는 과학적이면서도 가히 예술적이기까지 하다. 화장실이 집 바깥에 있으므로 밤에 급한 용변을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인데, 편의를 고려해 여성용과 남성용에 모양의 차이가 있다. 특히 남성용 용변기는 호랑이를 닮아 호자(虎子)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 황제는 호자마저 귀한 옥으로 만들어 썼나 보다. 중국 동진(東晉) 때 갈홍이란 사람이 쓴 『서경잡기』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백제의 여성용 이동식 변기.

백제의 여성용 이동식 변기.



“한대(漢代)에 호랑이 모양으로 만든 옥 변기를 사용했는데, 시중(侍中)에게 들려 황제가 출행할 때 따라다니게 했다.”
 
황제 정도나 이런 휴대용 변기를 사용했을 듯하고, 일반 백성들은 꿈도 못 꿨을 일이다. 서양에서는 이동식 화장실이 있었다. 용변용 양동이와 망토를 들고 다니는 업자들이 있었는데, 어디서든 모자가 달린 망토를 뒤집어 쓰고 양동이에 앉아 용변을 보는 것이다. 망토가 소형텐트처럼 커서 온몸을 가릴 수 있었다. 이것 역시 돈을 내야 했을 테니 귀족들 아니면 이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제법 장사가 됐는지 유럽 대도시에서 19세기 후반까지 이런 망토 화장실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화장실을 말하는 영어(toilet)나 프랑스어(toillettes)가 천을 뜻하는 ‘트왈(toile)’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인류의 문명은 화장실에서 출발한다. 일단 배가 불러야 문명이건 문화건 고민할 테고, 배가 부르면 먼저 화장실이 생각날 테니 말이다.
 
이훈범 대기자 / 중앙콘텐트랩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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