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러시아 항공우주군(공군) 소속 공중조기경보통제기인 A-50 1대가 독도 영공을 2번 침범했다. 6ㆍ25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공군의 KF-16 전투기가 경고 사격 360여 발을 쐈다.
[이철재의 밀담]
러ㆍ일 전쟁 이전에 한반도 병합을 검토하기도
러시아 제국 때부터 부동항 찾아 태평양 노려
러시아 유러시아주의는 지배와 팽창을 숙명으로
동북아 담당 동부 군관구는 해상 전력 증강 중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집권 이후 군사력을 키우고 현대화하고 있는 러시아는 앞으로 한국을 상대로 한 도발을 계속 걸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왜냐면 러시아의 이번 도발은 일회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원을 거슬러 올리가면 러시아 제국(1721~1917)이 나온다. 러시아 제국 때부터 태평양 진출을 꿈꿨던 러시아의 전략적 야망 말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100년 전 한반도 패권을 두고 일본과 전쟁을 벌였다. 과거의 러시아(러시아 제국)는 현재의 러시아(러시아 연방)와 한반도를 가운데 두고 어떻게 이어질까.
만주와 함께 한반도를 노렸던 러시아 제국의 속내
당시 러시아 제국은 전쟁의 명분으로 극동(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의 팽창 억제를 들었다. 그러나 명분의 이면엔 러시아의 야욕이 자리 잡았다.
러ㆍ일 전쟁 전인 19세기 말~20세기 초 러시아 제국 해군부의 팽창론자들은 당시 차르(러시아 황제)인 니콜라이 2세에게 극동 지역에서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수호할 일련의 팽창주의적 전략 방안을 제안했다. 모스크바의 러시아 아르히브(문서보관소)에서 당시 러시아 제국의 극동 아시아 전략 보고서 중 하나를 읽었던 구자정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이렇게 기억했다.
“러시아 제국 해군부는 만주와 한반도를 러시아 영향권 아래에 둬 태평양에 진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 부동항의 필요성, 영국의 움직임, 영ㆍ일간의 동맹 가능성, 시베리아 철도의 확장 등을 나열했다. 친러파와 친일파 동향 등 조선의 정세 보고, 한반도 지리 조사 요약 등도 들어 있었다.”
구 교수는 “러시아 제국은 러ㆍ일 전쟁 전에 한반도를 보호국으로 삼거나, 병합하는 방안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었다”며 “만일 러시아 제국이 이겼다면 최악의 경우 조선은 러시아의 식민지로 전락했을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물론 러시아 제국의 패전으로 이후 역사는 다르게 진행됐다.
부동항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오려는 그레이트 게임
러시아 제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한복판에 자리 잡았다. 전형적 내륙 국가다. 북쪽은 북극권과 가깝다. 남쪽은 바다로 가는 길이 막혀 있다. 동쪽과 서쪽은 각각 바다로 트여 있지만 쓸만한 항구가 많지 않다. 그래서 러시아 제국은 북유럽ㆍ발칸 반도ㆍ중동ㆍ동북아시아 등 곳곳에서 남진을 시도했다. 부동항을 얻기 위해서였다. 때론 전쟁을 마다치 않았다. 부동항 쟁탈 전쟁의 하나가 러ㆍ일 전쟁이었다.
러시아 제국의 남진을 경계한 나라가 바로 대영 제국이었다. 대영 제국은 유라시아 전역에서 러시아 제국과 맞섰다. 당시 영ㆍ러가 유라시아 패권을 놓고 벌인 전략적 경쟁을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라고 부른다. 한반도에서도 그레이트 게임이 벌어졌다. 1885년 조선이 친러 정책을 펴자 대영 제국은 거문도를 불법 점령했다. 러ㆍ일 전쟁도 그레이트 게임의 맥락에서 일어났다. 구 교수는 “대영 제국이 미국과 손잡고 일본을 내세워 러시아 제국과 치른 대리전이 러ㆍ일 전쟁”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이면서 아시아라 일컫는 '유라시아주의'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자는 러시아 제국의 시베리아 팽창, 부동항은 찾는 동진과 남진 정책을 유라시아주의적 소명으로 평가한다. 그래서 지금의 러시아도 그 소명을 다 해야 한다고 한다. 일부 유라시아주의자는 러시아가 유라시아 대륙의 비슬라브 민족을 지배하면서 문명화해야 하는 사명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판 ‘명백한 문명(Manifest Destiny)’이다. 명백한 운명은 미국이야말로 신의 명령에 따라 북미 전역을 지배해야 한다는 19세기 미국의 사상이다.
러시아의 철학자인 알렉산드르 두긴이 대표적 유라시아주의자다. 두긴은 유라시아당을 창당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브레인으로 알려졌다. 서방 언론은 ‘푸틴의 라스푸틴’이라고도 부른다. 러시아 제국의 니콜라이 2세 때 요승(妖僧) 그레고리 라스푸틴을 빗댄 표현이다. 자유주의를 증오하는 두긴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유라시아의 육상 세력들이 단결해 미국과 유럽의 해상 세력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고, 북한과 중국도 우호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실 무장을 탑재한 폭격기로 '초계비행' 전략적 도발
Tu-95MS는 항공우주군(ВВС России) 소속 전략폭격기다. 항공우주군은 공군이다. 위성 발사ㆍ통제와 같은 임무도 맡고 있다. Tu-95MS는 핵 또는 재래식 탄두 탑재 공대지 순항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이 전략폭격기에 베어(Bearㆍ곰)라는 코드를 붙였다. 김규철 전 주러시아 대사관 무관(예비역 육군 대령)은 “러시아 현지에선 23일 비행을 ‘훈련’이나 ‘연습’이 아니라 ‘초계’라 불렀다”며 “당시 작전 중이었기 때문에 이들 전략폭격기에 무장을 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 Tu-95MS는 동북아시아를 책임 지역(AOR)으로 둔 동부 군관구(Восточный военный округ)가 통제하지 않는다. Tu-95MS는 항공우주군 직할인 장거리항공사령부(Дальняя Авиация)가 지휘한다. 장거리항공사령부는 전략폭격기 부대다. Тu-95МS 2대 모두 아무르주(Амурская область)의 우크라인카(Украинка)에 있는 제6952 공군기지에 전개했을 가능성이 크다. 6952 기지도 장거리항공사령부 기지다. 장거리항공사령부의 세르게이 코빌라슈 사령관은 23일 “한국 군용기 조종사들의 행동은 공해 상공에서의 공중난동 행위(aerial hooliganism)로 간주한다”고 말했던 인물이다.
A-50 공중조기경보통제기의 나토 코드명은 메인스테이(Mainstayㆍ대들보)다. A-50은 Il-76 수송기에 레이더를 얹혀 만들었다. 러시아 이외 인도에서도 운용 중이다. 28대 안팎의 A-50은 제144 공중조기경보기연대 소속이다. 이 부대의 기지는 모스크바 근처 이바노보주(Ивановская область)에 있는 제2457 장거리 전파탐지 항공기 공군기지다. 모스크바에서 동부 군관구로 임시 전개한 전력이다.
김 전 무관은 “A-50엔 각종 전자장비가 탑재됐다. 영공 침범 후 우리 공군의 통신과 대응을 모니터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23일 러시아 전략폭격기 편대는 중국 전략폭격기 편대와 합동 작전을 펼쳤기 때문에 A-50은 합동 작전의 지휘기의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와 태평양을 겨눈 불곰의 발톱 동부 군관구
동부 군관구의 육군은 제29군, 제5 적기(赤旗)군, 제68 군단, 제35군, 제36군으로 이뤄졌다. 제5 적기군(5-я общевойсковая армия)의 '적기'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활약으로 붙은 칭호다. 68군단은 사할린과 쿠릴 열도에 배치됐다. 쿠릴 열도 남쪽의 4개 섬은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일본에선 북방영토(北方領土)라 불린다. 동부 군관구는 또 공군으로 제11 항공ㆍ방공군을, 해군으론 태평양함대를 갖고 있다. 동부 군관구 사령부는 하바롭스크에 있고, 태평양함대가 주둔한 블라디보스톡은 핵심 지역이다.
푸틴 대통령은 2020년까지 러시아 전력을 현대화하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라 동부 군관구는 특히 해상 전력을 급격히 보강하고 있다. 태평양에서 미국과 미국 동맹국들의 해상 세력에 맞서기 위해서다. 러시아의 보레이(Борей)급 최신형 전략 핵잠수함(SSBN)은 현재까지 3척이 만들어졌는데 그중 2척은 태평양함대에 돌아갔다. 쿠릴 열도엔 K-300P 해안방어 미사일을 배치했다. 일본의 쿠릴 열도 침공을 대비한 차원이었다.
러시아는 지난 2011년 프랑스로부터 미스트랄급 강습상륙함 2척을 살 계획이었다. 도중 러시아의 크림 반도 침공과 말레이시아 민항기 격추 사건으로 무산됐다. 만일 도입이 됐더라면 2척 모두 태평양함대에 배치할 예정이었다. 러시아는 동부 군관구에 러시아판 사드인 S-400 트리움프(Триумф)와 북한이 모방해 최근 잇따라 쏜 9K720 이스칸데르(Искандер) 미사일 전력도 늘리고 있다.
전략적 동반자 중국에을 경계하는 러시아
중국, 몽골, 터키도 보스토크 2018에 참가했다. 특히 중국은 병력 3200명, 차량 900대, 30대의 항공기를 보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6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양국 관계를 ‘신시대 전면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선포했다. 23일 동해에서 중ㆍ러의 합동 도발도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서 풀이할 수 있다. 김규철 전 무관은 “러시아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과 손을 잡았지만, 중국에 대한 의심은 계속 갖고 있다”면서 “동부 군관구는 중국과 국경에도 상당한 병력과 장비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