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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인물과 사상>도 ‘위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이강기 2019. 11. 8. 10:33
<샘터>, <인물과 사상>도 ‘위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2019.11.11주간경향 13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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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은 차분하면서도 분주했다. 샘터사가 발행하는 월간 <샘터> 편집실은 휴간 소식이 알려진 이후 한동안 밀려드는 독자들의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그래도 마지막 호가 될지도 모르는 12월호를 허투루 만들 수는 없었다. 지속적인 적자 때문에 무기한 휴간에 들어가고, 이 휴간이 사실상의 폐간이 될 수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글 한 자 한 자, 문장 한 줄 한 줄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샘터사 관계자는 “언론에 무기한 휴간, 사실상 폐간이라고 보도됐지만 아직 완전히 확정된 것은 아니라 어떻게든 휴간을 막아보려고 계속 노력 중”이라며 “다시 구독을 할 테니 계속 잡지를 내달라는 독자들의 전화를 하루 종일 받으며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7년 사옥을 이전하기 전 샘터사가 사옥으로 사용하며 상징적인 역할을 했던 서울 대학로 구 샘터 사옥(현 공공그라운드)의 2001년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7년 사옥을 이전하기 전 샘터사가 사옥으로 사용하며 상징적인 역할을 했던 서울 대학로 구 샘터 사옥(현 공공그라운드)의 2001년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잡지의 힘은 잡지를 읽어주는 독자에게서 나온다. 월간 <샘터>가 49년 동안 꾸준히 나온 것도 독자들의 지지 덕분이었다. 내년이면 창간 50주년을 맞고 변함없이 내년 2월호를 내게 된다면 통권 600호가 나오는 국내 최장수 교양지 <샘터>의 위기는 잡지의 힘이 바닥까지 떨어진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최근호인 11월호에서 김성구 발행인은 “바닥까지 내려간다는 것은 솟구쳐 올라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썼다. <샘터>의 휴간 여부는 잡지가 바닥을 딛고 다시 천천히 독자들의 힘을 받아 떠오를지를 알려주는 잣대가 된 셈이다. 

한때 50만부를 찍어낼 정도로 인기를 끌던 <샘터>가 최근에는 2만부 이하로 부수가 줄어든 데에는 잡지시장 전반이 위축된 현실이 크게 작용했다. 최근에는 연간 3억원씩 적자가 누적돼온 <샘터> 발행도 샘터사에서 발간하는 단행본 판매나 각종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이어져 왔다. 한국ABC협회가 집계하는 잡지분야 인증부수 통계를 보면 2018년 기준 유료부수가 2만부를 넘는 매체는 187개 회원사 중 4곳뿐이다. 5년 전인 2013년에 10곳이었던 데 비해서 크게 줄었다.

한때 50만부에서 최근엔 2만부 이하로 

< 샘터>가 첫 샘물 같은 글을 담기 시작한 때는 1970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발행인의 선친인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하며 창간호를 펴냈다. 창간 당시 “담배 한 갑보다 싸야 한다”며 100원에 판매하기 시작한 김 전 의장의 뜻은 현재 가격을 3500원으로 책정한 데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창간호 마지막 면에 실린 ‘앞으로 10년’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앞으로 10년을 담담하게 걸어가련다”라고 밝힌 김 전 의장의 포부 역시 창간 50년을 바라볼 정도로 긴 시간 지속됐다. 

달마다 나오는 잡지가 독자들의 눈길을 끌었던 이유는 <샘터>를 거쳐간 여러 유명 필진 말고도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백하게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한때는 독자들이 보내온 투고만 해도 한 달에 400통이 넘을 정도였다. 교양·생활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주제들을 고루 담으며 실린 매달 50여편의 글들 가운데는 1975년부터 35년 동안 최장기 연작 기록을 세운 연작소설 <가족>의 소설가 최인호, 16년간 ‘산방한담’을 쓴 법정 스님, ‘꽃삽’을 포함해 최근호까지 꾸준히 글을 싣고 있는 이해인 수녀의 글들이 <샘터>만의 색깔을 더했다. 수필가 피천득, 동화작가 정채봉, 장영희 교수 등도 <샘터>의 지면을 빛낸 필진이었다. 

그러나 종이 잡지의 위기를 <샘터>라고 해서 피해갈 수는 없었다.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해 지은 서울 대학로의 벽돌 사옥은 한동안 지역의 랜드마크이자 <샘터>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2017년 경영난 때문에 스타트업 회사에 매각됐다. 어린이용 극장으로 유명했던 ‘샘터파랑새극장’도 결국 2018년 휴관에 들어갔다. 수순대로라면 <샘터> 잡지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저물어가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발행 취지를 이해하는 기업이 인수하는 등 휴간을 막을 방도가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라는 출판계의 관측도 있다. 샘터사 관계자는 “사정이 어려워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긴 해도 이번 휴간 소식 이후 급증한 독자들의 관심과 기업의 광고 등 지원 증대로 열의 있는 직원들이 계속 <샘터>를 만들어갈 가능성은 있다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 샘터>의 휴간 소식을 접한 출판계도 충격을 받았다. 바로 얼마 전 20여년간 주목을 받아온 월간 <인물과 사상> 역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름의 영역을 굳게 다져온 두 월간지의 휴간 소식이 잇따라 들려오면서 잡지의 ‘생존’ 자체가 불투명해진 현실이 재확인된 것이다. 

< 인물과 사상>은 창간준비호로 1998년 4월호를 발행한 이래 올해 9월호까지 21년 동안 통권 257호를 발행했다. 하지만 잡지 발간의 실용적인 가치를 생각할 때 더 이상 발행을 이어가기 힘든 한계에 부딪쳤음을 인식하고 휴간을 결정했다. 강준우 발행인은 9월호에 실은 휴간사에서 “지난 20여년 격변의 한국 사회에 정의와 개혁을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노력했다”면서 “그동안 유가 광고 없이 자력으로 발행했지만 독자 수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은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문제로 다가섰다”고 밝혔다. 

< 인물과 사상>의 출발점은 1997년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계간지 형태의 ‘1인 매체’를 시도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당시로서는 단행본과 일간지의 한계를 모두 극복할 대안으로 보다 깊이 있으면서도 현실 사회 문제를 때맞춰 다룰 수 있는 저널리즘 매체를 표방했기 때문에 빠르게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구독료 중심 운영 모델 한계에 부딪쳐 

계간지가 호응을 얻으면서 이듬해인 1998년 월간지로 발행 형태를 바꿔 <인물과 사상> 창간호를 냈다. 창간호에 실린 <인물과 사상>의 세 가지 목표가 ‘언론의 오만과 방종을 응징’ ‘지역차별·학력차별·성차별 등 모든 종류의 부당한 차별에 대해 투쟁’ ‘성역과 금기가 없는 실명 비판의 문화를 우리 사회 주류 문화로 정착’이었던 것처럼 진영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기득권 전체에 날선 비판을 가해왔다. 

스스로 논쟁의 장이 되기를 자처한 <인물과 사상>은 첨예한 논쟁의 당사자인 인사들을 전면에 내세워 실명으로 비판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인물과 사상>을 통해 기고한 보수세력 비판 글들이 대중적으로도 주목받았고, ‘안티조선’ 운동 역시 잡지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밝혀주는 역할을 했다. 유료 광고를 거의 받지 않는 대신 구독료 중심으로 운영하며 독립잡지에 가까운 형태로 발행해온 점도 신선한 인상을 줬다. 

1970년 4월 발행된 월간 <샘터> 창간호와 2019년 9월호를 끝으로 휴간에 들어간 월간 <인물과 사상> 휴간호 표지. / 각사 제공

1970년 4월 발행된 월간 <샘터> 창간호와 2019년 9월호를 끝으로 휴간에 들어간 월간 <인물과 사상> 휴간호 표지. / 각사 제공



그러나 이러한 운영 모델이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쉽게 적응하기는 어려웠다. 디지털·모바일뉴스를 통해 뉴스 소비주기가 빨라지고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자유로운 정치적 표현이 확산되는 새로운 흐름을 맞으면서 창간 초기 1만명을 넘겼던 구독자 수는 200호가 발행된 2014년에 이르자 2000명대로 줄었다. 발행을 주도했던 강준만 교수는 이번 휴간 결정에 대해 “예전처럼 주도적으로 하지 않은 것이 오래됐다”면서 답변을 고사했고, 마지막호인 9월호 ‘명언 인문학’ 코너에 실은 글에서도 휴간에 대한 소회를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2014년 200호 특집으로 진행한 이 잡지 인터뷰에서 “처음에 큰소리쳤던 만큼 되지 못한 것 같아서 부끄럽다”고 말한 바 있다.

< 인물과 사상> 독자들은 휴간이 종간이나 폐간이 아니라 휴식기간이기를 바란다는 뜻을 모았다. 창간 독자 장용호씨는 “언젠가는 종이 매체가 몰락하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는데 막상 20년간 구독한 가족 같은 잡지가 휴간한다는 소식은 도저히 현실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며 “영영 이별이 아닌, 새로운 시대에 맞는 매체로 탄생해서 오래된 친구처럼 재회하기를 희망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에 대해 박상문 <인물과 사상> 편집장은 “창간호에서 밝힌 세 가지 목표를 위해 모든 콘텐츠를 생산해왔고 지식인들과 수많은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면서 “지난 20여년 동안 독자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지만 이제 잡지의 한계가 명확하므로 단행본을 통해 그간 추구하던 세 가지 목표를 견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휴간을 고민할 지점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그동안 남성지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보였던 <맥심> 역시 위기를 인식하고 돌파구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한동안 ‘군인 필수 잡지’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로 젊은 남성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어왔으나 <맥심>이 만들어내는 콘텐츠 역시 인터넷의 경쟁 콘텐츠를 더 이상 앞서지 못할 정도로 시장구조가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맥심>은 2002년 국내에 첫선을 보인 이래 17년 동안 경쟁지보다 줄곧 앞선 판매부수를 올리며 현재까지도 남성지 1위 자리를 지키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전체 남성지 시장이 위축 중인 상태여서 점유율 1위만 유지할 뿐 사정을 아는 내부인의 시름은 깊다. 

< 맥심>이 자체적으로 파악하는 침체의 원인을 간단하게 요약할 수는 있어도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독자들이 가볍고 읽기 편한 글에 짧은 영상이 덧붙여진 ‘스낵 콘텐츠’를 선호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글이 길고 빽빽한 지면 콘텐츠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자체 진단한 원인이다. <맥심>의 이영비 편집장은 “<맥심>은 얼핏 보기에는 섹시한 화보가 많아 보이지만 사실 읽어보면 텍스트가 아주 많아서 다양한 멀티미디어와 인터렉티브가 있는 온라인 콘텐츠에 비하면 읽는 데 집중이 좀 필요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병영 내 스마트폰 사용 같은 환경의 변화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구매층 전체에서 20대 초반 남성의 비중은 쭉 20% 이하였기 때문에 그 영향은 미미한 편이고, 주력 독자층은 30대 초반 남성이라 보통의 월간지가 겪는 쇠퇴 원인을 동일하게 겪고 있는 것이 맞다”고 분석했다.

잡지 같은 인쇄매체가 위기의 돌파구로 2010년대 중반 스마트기기 앱으로의 전환을 시도했지만 일시적인 대안에 불과했다는 점도 <맥심>이 얻은 교훈이다. 가독성 낮고 사용하기 불편한 앱을 바탕으로 유통된 모바일 잡지들이 앞다투어 무료경쟁을 벌인 탓에 웹툰·음원 등의 콘텐츠 시장에는 유료화를 거친 생태계가 만들어졌지만 이와 상반되게 잡지만은 제대로 된 앱 매거진 시장을 형성하지 못한 채 몰락했다. 이 편집장은 “글 위주의 단행본 서적들이 잡지시장과는 달리 나름 유료 e북 시장을 형성해서 살아남은 데서 보듯 <맥심>도 최근 10월호부터 한 주제에 집중하는 ‘테마북’으로 방향을 틀고 좀 더 가볍게 움직이는 특화 콘텐츠 제작사로 변신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군인 필독 잡지 <맥심>도 돌파구 찾기 

잡지업계가 몰락에 가까운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한 해법은 전문가들도 뾰족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른 매체에 비해 부침이 심하기 때문에 창간과 폐간을 반복하는 것이 잡지시장의 기본 생리라고는 해도 최근 전통 있는 잡지들까지 서서히 몰락해온 것은 그간 있었던 유명 잡지의 폐간과는 결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잡지의 역사를 보면 구한말의 ‘민족 계몽’, 일제강점기의 ‘모더니즘’,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의 ‘재건’, 군부독재 시절의 ‘민주화’, 민주화 이후 ‘대중문화’ 등의 주제로 시대를 구분할 수 있다. <개벽>부터 <사상계>, <현대문학>, <씨알의 소리>, <뿌리깊은 나무>, <선데이 서울>, <당대비평>, <월간 잉여> 등이 이 20세기부터 21세기 초에 걸친 잡지의 시대를 상징하는 잡지였다. 일부는 권력의 강압적인 폐간 조치로, 일부는 시대의 흐름에 걸맞지 않은 정체성 때문에 독자들과 이별해왔다.

하지만 근래의 잡지가 처한 상황은 일종의 ‘문명사’적인 전환과 맞물려 있기도 해서 앞으로의 전망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이용준 대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한국잡지학회 회장)는 “전반적으로 읽기 문화 자체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인상을 피하기 어렵고, 그 때문에 그나마 고정 수요가 있는 전문지에 비해 대중지나 교양지는 더욱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샘터>처럼 다같이 어렵던 시절의 위로나 위안, <인물과 사상>처럼 명확한 비판 대상에 맞서기 위해 정치적 여론을 결집하던 현실이 점차 바뀌어버려 이들 잡지가 침체를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이 교수는 “앞으로의 잡지 방향을 딱히 하나로 요약해 제시할 수는 없지만 가벼운 형태로 공감을 이끌 수 있는 분야가 그나마 생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잡지의 정체성을 유지해온 특성이 시효가 다했으면 어떻게든 변신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무엇보다 콘텐츠가 핵심”이라며 “잡지가 생존할 수 있던 기반인 광고시장을 보면 오히려 광고시장 규모는 계속해서 커지고 있는데 다만 그 광고들이 잡지로 오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이어 “왜 광고는 물론 독자까지 유지하지 못하는가를 고민해보면 콘텐츠 수요층인 독자들의 다양한 수요에 맞춰 어떤 콘텐츠를 제공해주느냐가 관건이므로 이런 고민을 배제해둔 채로 남겨두면 잡지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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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6&art_id=201911011553581#csidx2c4eadea486337a8ad3de65d7168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