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國, 韓美關係

흑인은 시민 아니라는 판결, 남북전쟁 도화선됐죠

이강기 2020. 3. 5. 09:28

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흑인은 시민 아니라는 판결, 남북전쟁 도화선됐죠

조선일보 : 2020.03.04 03:00

 

[미국 드레드 스콧 판결]
남부는 대농장, 북부는 상공업 발달… 노예제에 대한 경제적 입장 차 뚜렷

남부 노예 스콧, 자유 주장하며 소송
대법원 "흑인은 재판 청구권 없다"
시민들, 대선서 야당 후보 링컨 선택

남부, 연방 탈퇴하고 독립국 세워 1861년 북부 공격하며 전쟁 시작

지난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콜로라도주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한국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것을 공격했어요. 그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선셋 대로'와 같은 훌륭한 미국 영화가 얼마나 많으냐"고 덧붙였지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언급한 것은 이 영화가 1940년 1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8관왕을 차지했기 때문이죠.

이 영화는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인 남북전쟁(1861~1865)을 배경으로 합니다. 남북전쟁이 발발한 주원인은 노예제를 둘러싼 갈등이었는데요, 1857년 연방대법원에서 열린 '드레드 스콧 판결'로 이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죠. 노예제로 인한 갈등은 왜 일어났으며, 드레드 스콧 판결은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남부는 대농장, 북부는 상공업 발달

우선 노예제도에 대한 남북의 입장 차이가 일어난 원인을 살펴볼게요. 남부에서는 대농장을 바탕으로 한 농업이 발달했는데 식민지 초기에는 담배를, 유럽의 산업혁명 이후에는 면화를 주로 재배했어요. 면화 재배에는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남부 농장주들은 인건비 부담이 큰 노동자보다는 싼 가격이나 공짜로 쓸 수 있는 노예를 선호했죠.

미국 미주리 역사박물관에 소장된 흑인 노예 드레드 스콧의 초상화.
미국 미주리 역사박물관에 소장된 흑인 노예 드레드 스콧의 초상화. 그는 노예제가 금지된 일리노이와 위스콘신에 거주할 때 자유민이 되었다며 주인을 상대로 자유 신분을 인정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어요. 그러나 연방대법원이‘흑인은 재판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고, 이로 인해 노예제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며 남북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위키피디아
반면 북부의 많은 주는 19세기 중반부터 상공업 중심으로 성장해 자유로운 임금노동자가 노동력의 중심이 되었어요. 북부는 임금노동자가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자유노동자가 산업예비군으로 형성되기를 바랐어요. 종교적 측면에서도 남부는 개인적 경건함에, 북부는 사회 개혁에 중점을 두는 등 남부와 북부 사이 문화와 인식 차이도 존재했죠.

서부 편입 과정에서 남북 갈등 격화

이러한 남부와 북부의 상반된 모습 속에서 서부가 개척되고 그곳이 미연방으로 편입돼 가며 상황은 급변했어요. 서부의 새로운 주를 어디로 편입하는지가 곧 연방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권한을 남부와 북부 중 어느 곳이 주도하느냐와 직결됐죠. 1819년까지 노예주(남부)와 자유주(북부)는 각각 11개로 세력 균형을 유지했으나 인구 6만 이상의 서부 미주리가 노예주로 연방 가입을 신청하자 지역 간 갈등이 시작됐어요.

미국 남북전쟁의 원인 '노예제도'
그러던 중 1854년 의회에서 캔자스-네브래스카법이 통과되며 대립의 불씨가 타올랐어요. 이는 이주민이 급격하게 증가한 미주리, 아이오와 서부 지역을 캔자스와 네브래스카 두 지방으로 나누고 노예제 허용 여부는 주민 투표로 결정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이후 남쪽 캔자스에서 실시된 주민 투표에서 노예주가 되는 것으로 결정이 났는데, 이것이 부정선거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분노한 자유주 옹호론자들은 투표 결과를 무시하고 자유주로 연방 가입을 추진했어요. 이 과정에서 노예주 찬성론자와 반대론자가 서로 공격하는 '피의 캔자스' 사태까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드레드 스콧 판결로 연방 분열

이 와중에 드레드 스콧이라는 흑인 노예가 자신의 주인 존 에머슨을 상대로 소송을 내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드레드 스콧은 군의관인 에머슨을 따라 거주지를 자주 옮겼어요. 주인과 함께 고향인 미주리로 돌아온 후 예전에 잠시 머물렀던 일리노이주와 위스콘신주가 자유주였기 때문에 그때 이미 자유민이 됐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에요. 1857년 대법원은 원고인 드레드 스콧에 대해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흑인은 헌법상 연방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재판을 청구할 자격 자체가 없다'는 내용의 '독단적이고 보수적인' 판결문으로 여론은 싸늘해졌어요. 이후 이 판결을 위해 당시 대통령이 판사를 회유하였다는 사실마저 드러나자 여론은 정부에 등을 돌렸고 당시 신생 정당이었던 공화당은 이를 이용하여 정치적 입지를 넓혀갔어요.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이 당선되자 남부의 대표 격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의회는 연방 탈퇴를 결의했어요. 이듬해 2월 1일에는 미시시피, 플로리다, 앨라배마, 조지아, 루이지애나, 텍사스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뒤를 따랐어요. 2월 4일 연방을 탈퇴한 주들은 '아메리카 연합국'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독립국을 세우고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통령으로 선출했어요. 미국은 건국 84년 만에 공식적으로 분열되었고 1861년 4월 남부 연합군의 공격으로 남북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서민영 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