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評, 社說, 談論, 主張, 인터뷰

중국판 세계화에 동승한 代價 어떤 것인지 보여줬다

이강기 2020. 3. 31. 10:52

[최병일의 이코노믹스]

중국판 세계화에 동승한 대가 어떤 것인지 보여줬다

      

코로나 사태가 불러온 진실의 순간

최병일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최병일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훗날 세계역사는 2020년 3월을 “세계화 무대에서 운전사가 사라진 순간”으로 기록할 것이다. 지난 11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코로나19) 미국 내 확산방지를 이유로 유럽국가들에 미국 국경봉쇄 조치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동맹국인 유럽과 사전 상의는커녕, 발표 직전 통보조차 없었던 전격적인 조치였다. 동맹의 가치를 돈으로만 따지는 트럼프에게 감정의 골이 깊어지긴 했지만, 설마 이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유럽은 집단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미국이 세계화 운전사 걷어찬 것이
한국에는 코로나19보다 더 큰 재앙
시진핑 “최악의 순간 끝났다” 지만
세계를 지옥문에 이끈 원죄 못 지워

코로나바이러스 초기, 자신의 재선 가도에 미칠 영향만 저울질하느라 방역 전문가들의 조언을 뒷전으로 흘렸던 트럼프는 초기 대처에 실패하고 미국을 위험에 빠트렸다. 영국이 유럽에서 이탈하는 브렉시트 와중에 남은 국가끼리는 결속을 과시해야 한다는 정치적 명분을 부둥켜 쥔 유럽은 검역 조치에 실기했고, 그 결과 유럽 전체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중국의 폐쇄성이 사태 악화 불러
 
지난 9일, 코로나 사태 초기에 사라졌던 시진핑 중국 주석은 코로나19의 진원지인 우한을 방문해 “최악의 순간은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중국의 원죄는 씻어지지 않는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SCMP) 단독보도에 따르면, 우한발 코로나바이러스는 시중에 알려진 12월 말보다 더 빠른 작년 11월 중순에 처음 발견됐다. 중국 당국의 은폐·통제 속에 코로나바이러스는 꼭꼭 숨겨졌다. 중국은 최대의 명절 춘절에 이미 500만명이 우한을 떠난 후인 올해 1월 하순에야 코로나19를 공식화했다. 사태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질 대로 커졌고, 자신도 모르는 감염자들은 전 세계 곳곳으로 이동한 다음이다. 중국은 세계를 지옥문 앞으로 끌고 갔다.
 
코로나 팬데믹은 천연 재해를 인재(人災)로 키운 불행한 대참사다. 미국·유럽·중국 모두 정치적 명분에 매몰돼 사태의 심각성을 경시하다가 골든 타임을 흘려보냈다. 코로나19가 팬데믹이 아니라고 버티던 세계보건기구(WHO)는 그 명칭에서 W(World)를 떼 버려야 한다는 조롱을 받았다. 세계인들은 미증유의 공포와 침묵의 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세계인을 유린하는 팬데믹 방어를 위한 국가 간 공조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코로나19 사태는 미국이 떠난 세계화 무대에 중국이 새로운 주역임을 보여줄 기회였다. 중국이 신속하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세계의 협력을 구했다면, 세계가 이 괴물 바이러스와 싸우는 시간은 더 앞당겨졌을 것이다.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려는 시간과의 전쟁은 그만큼 더 빨라졌을 수 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명을 구했을 터다. 세계 곳곳의 무수한 실업자, 쏟아지는 파산 기업들을 살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중국은 뒤늦게 지역봉쇄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 들었고, 피크를 지났다고 판단하자 이젠 미국과 코로나 사태 진원지 논쟁을 벌이는 후안무치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언론탄압·인권탄압에도 불구하고 기민·유능·효율적이라던 ‘차이나 모델’은 중국인들에게조차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미국이 걷어차 버린 세계화 운전석을 이끌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는 날아갔다. 차이나 모델의 위험성은 더 선명하게 부각됐다.
 
코로나 사태는 ‘중국판 세계화’에 동승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확진자가 급증했던 이란·이탈리아의 경우를 보라. 서방의 제재를 피하려는 이란은 중국 자본의 영향권에 들어갔고, 이탈리아 북부 고급 디자인브랜드 공장은 중국인 노동자들이 접수한 지 꽤 됐다. 국민의 생명이 아닌 경제를 선택한 대가는 치명적이다.
 
경제전망

경제전망


지금 세계는 깜깜한 극장에서 불이 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질서 있고 안전한 탈출을 유도해야 하는데 그런 조정자, 리더는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에 혼돈은 증폭된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생소한 단어 속에 소비는 빙하기처럼 얼어붙고 있다. 10년 이상 확장세를 구가하면서 세계 경제를 견인해 오던 미국 경제 앞에는 대량실업의 악령이 어른거린다.  
 
이미 구조적 경기하강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던 차에 미·중 무역 전쟁의 파도를 만나 악전고투하고 있던 중국은 코로나 사태로 삼각 쓰나미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상상하기조차 두려웠던 단어를 드디어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1930년대 대공황이 재연될 수 있다”라고.
  
기존 글로벌 공급망 변화 불가피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 둔 국제공조 장치는 고장이다. 2008년 세계 경제를 침몰 직전에서 구해 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어디로 갔나. 지난주에 뒤늦게 화상회의를 소집했지만,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진 못했다. 결정적인 순간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G20 정상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트럼프는 대만의 국제관계 강화를 지지하는 법에 서명했다. 미·중 대립은 더욱 격화되는 모양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G20 국가인 러시아와 사우디는 석유패권을 두고 벼랑 끝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다. 불난 데 부채질이다. 더구나 사우디는 올해 G20 의장국이다. 3월 초 개최된 서방 선진국의 G7 회의는 행동 없는 말의 성찬으로 끝났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침묵과 공포가 짓누르고 있지만, 세계를 구할 리더십은 어디에도 없다. 효율성을 지상가치로 내세우던 세계화는 이제 후퇴할 운명이다. 비용 절감이라는 명제를 신봉하면서 첨단 기술을 촉매제로 세계 곳곳을 거미줄처럼 연결했던 글로벌 공급망의 지속가능성은 회의적이다. 글로벌 공급망으로 편입된 지역 범위만큼 증대된 효율성의 이면에는 그것에 버금가는 취약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중심에 차이나 모델이 있기에 그 취약성은 치명적일 수 있다. 99.9999%의 순도의 부품에만 ‘올인’하던 시대는 99.99% 순도의 부품에도 공급권을 부여해야 하는 ‘전략적 배분’의 시대로 변화할 것이다.
 
확장일로에 있던 글로벌 공급망은 지역화되고 축소될 것이다. 미국 중심축과 중국 중심축으로의 양극화가 본격화할 수 있다. 체제는 달라도 공급망은 공유할 수 있던 세상은 사라져 갈 것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데 한국은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당장의 코로나 위기 막기에만 급급한 사이에 더 큰 위기가 한국을 덮치고 있다.
 
변화 조짐 없는 ‘차이나 모델’의 한계

중국엔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SCMP 보도대로 작년 11월 중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발견한 그때, 중국 당국은 신속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적극적인 방역 조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진실의 순간을 흘려보낸 중국에 두 번째 진실의 순간은 한 달 후에 다시 찾아왔다. 30대 젊은 의사 리원량이 여태껏 알지 못하던 바이러스의 출현을 알렸을 때, 중국 당국은 행동할 수 있었다. 중국은 이 두 번의 기회를 모두 다 날려버렸다.
 
2003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사스(SARS·중증호흡기증후군)에 중국은 낭패를 겪었다. 2002년 11월 광둥성에서 최초 감염자가 발견되었지만, 중국은 그다음 해 3월까지 그 사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이미 사스는 세계로 퍼져나갔고, 세계보건기구(WHO)는 경보를 발령했다. 중국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신속한 정보공개를 미루고 미루다 실기했던 그때에서 중국체제는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2020년 중국은 2003년 중국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다른 나라다. 무역·투자·여행·유학생·학계·문화·공연·스포츠 등 인력 교류에서 중국은 새로운 중추로 부상했다. 유감스럽게도 공산당-정부-기업을 혼연일체를 묶은 차이나 모델은 코로나 사태를 사스 때와 똑같이 은폐하면서 실기했다. 사스 때와 다른 거라면,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WHO에 대한 영향력이다.
 
민주주의의 혼란과 무질서보다 일사불란함과 강력한 추진력의 우수함을 내세워 온 차이나 모델은 어디로 갔나. 중국은 이번 사태를 진정한 학습과 개선의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 차이나 모델은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통제국가 방식을 더 강화하는 경직성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의 투명성을 수용하는 유연성을 발휘할 것인가.
 
최병일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출처: 중앙일보] [최병일의 이코노믹스] 중국판 세계화에 동승한 대가 어떤 것인지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