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 韓.中關係

"도광양회" 외치던 중국의 돌변···영화 '전랑'처럼 거칠어졌다

이강기 2020. 5. 26. 14:40

"도광양회" 외치던 중국의 돌변···영화 '전랑'처럼 거칠어졌다

[중앙일보] 입력 2020.05.26 08:55 수정 2020.05.26 09:47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책임 문제로 궁지에 물린 중국이 전례 없이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외교활동을 펼치며 전 세계와 충돌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중국은 개혁·개방을 시작했던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년, 1978~2007년 집권) 시절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을 앞세워 몸을 낮추고 힘을 기르며 때를 기다려왔던 것에서 완전히 180도 돌아섰다.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며 힘을 과시하고 있다.

 

 

중국인이 세계 지키는 영화 ‘전랑’처럼
코로나 시대에 힘을 앞세운 거친 외교
대놓고 고자세에 독설, 경제보복 예사
대만해협·남중국해 항모로 무력시위
‘핵탄두 1000개 보유’ 핵군축에 역행
중국인들의 민족주의·애국주의 자극
시주석·공산당 집권연장·권력강화 도움
장기적으론 국제적인 고립 부를 가능성

지난 24일 홍콩 경찰이 시내에서 벌어진 시위 현장에서 체포된 참가자를 길바닥에 눕혀 놓고 머리를 누르고 있다. 중국이 힘과 독설, 보복을 앞세워 벌이는 늑대 외교의 한 모습이다. EPA=연합뉴스

중국, 늑대처럼 힘 과시하는 전랑 외교 펼쳐

2013년 집권한 시 주석은 ‘제 할 일은 주동적으로 한다’는 주동작위(主動作爲)를 추구한 것도 모자라 코로나19 시대를 전후해 무력과 독설, 그리고 보복을 앞세운 ‘전랑(戰狼) 외교’로 돌아섰다. 전랑은 중국이 인빈해방군 홍보를 위해 만든 애국주의 액션 영화 제목이다. 중국 무장경찰 출신의 주인공이 2015년 개봉한 1편에선 미국 네이비실 출신의 악당들과, 2017년 나온 2편에선 유엔도 포기하고 미군도 철수한 아프리카에서 납치범을 각각 물리치는 내용이다. 이 영화들에서 중국과 주인공은 의지와 용기, 그리고 첨단 무기로 세계를 구하는 ‘21세기 카우보이’로 등장한다. 전랑은 ‘싸우는 이리’라는 뜻인데 영어로 울프워리어(Wolf Worrior)로 쓴다. ‘늑대 전사’로 옮길 수 있다.

중국의 전국인민대표자대회가 홍콩의 민주화운동을 옥죌 국가안전법 제정을 추진하자 홍콩인들이 일국양제 약속에 어긋난다며 지난 24일 시내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Penta Press=연합뉴스

 

“저자세 중국 외교, 코로나 맞아 고자세 전환”

미국의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지난 15일 “과거 보수적·수동적·저자세 외교를 추구하던 중국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단호·주도적·고자세의 전랑 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디플로맷은 전랑 외교라는 새로운 접근법이 영화처럼 중국 대중에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국가적 자부심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 중국이 “외교관들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며 “국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격적 행동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중국의 과도한 수출을 지적하는 외국 기자에게 중국 외교관은 “그게 불만이면 중국산 마스크와 보호장비를 벗어라”라고 쏘아붙였을 정도다.


BBC방송은 13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내놓고 험한 말을 하는 중국 외교관들이 중국의 새로운 군대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저서 ‘디플로머시(Diplomacy)’에서 “지나치게 신중하고 신비적이어서 이를 해석할 중국 전문가가 필요했을 정도”라고 평가했던 과거의 중국 외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24일 “중국 외교가 갈수록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곳곳에서 마찰을 유발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과 불화가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전랑 외교의 고삐를 바짝 당긴 결과는 국제사회는 물론 중화권의 갈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신화망 캠처]

 

중, 홍콩 국가안전법 제정해 반정부 탄압 시도

중국이 홍콩 입법원(의회 격)을 거치지 않고 베이징의 전국인민대표자회의(全人代)에서 국가안전법을 제정해 홍콩에서의 반정부 활동을 가혹하게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한 것이 그 하나다. 이는 홍콩 헌법격인 기본법에 ‘법률 제정권이 홍콩 입법원에 있다’고 규정한 것과 어긋난다. 하지만 중국은 외교·국방 등 홍콩 정부의 업무사안이 아닌 법률은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홍콩 정부와 상의해 추가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는 조항을 들어 내놓고 홍콩에 내정간섭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21일 SCMP 등이 이를 보도하자 홍콩인들은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10인 이상의 집회가 금지된 상황에서도 대대적인 시위로 맞섰다. 중국은 1997년 홍콩 회귀 당시 했던 일국양제(一國兩制), 홍콩인이 홍콩을 통치한다는 항인치항(港人治港), 수준 높은 자치를 누린다는 고도자치(高度自治)라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있다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이 지난 20일 타이베이에서 제2기 취임 연설을 하고 있다. 차이 총통은 중국의 일국양제 압박에 굴하지 않고 현상 유지를 내세우면서 미국, 유럽, 일본과의 관계 강화와 탈중국화를 추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대만에는 항모 동원해 무력시위

중국은 대만에도 이런 일국양제 통일방안을 받아들이라고 압력을 가해왔다. 지난해 1월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했다. 대만인들은 지난 1월 11일 총통 선거와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에서 친중 성향의 국민당 대신 현상유지를 추구하는 민진당와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에 표를 몰아줬다. 중국은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신음하던 지난 4월 한 달 동안 대만해협과 주변에서 인민해방군 최초의 항공모함인 랴오닝(遼寧)함을 동원한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하며 대만을 압박했다. 항모까지 동원해 무력시위를 한 것이다. 19세기 제국주의 국가들의 함포외교를 떠올리게 한다.
중국은 18~19일의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 대만의 옵서버 참가를 막았다. 지난 20일 2기 취임식에서 차이 총통은 중국의 일국양제 통일방안을 거부한 것은 물론 미국·유럽연합(EU)·일본과 관계를 강화해 경제 등의 중국 의존을 줄이겠다고 강조했다. 탈중국화를 가속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 차이 총통은 신대만 국책싱크탱크(新台灣國策智庫)의 5월 7일 조사 결과 대만에서 74.5%의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I2019년 12월 17일 취역한 중국의 항공모함인 산둥함의 모습. 남중국해에 배치됐다. AP=연합뉴스

영유권 갈등 남중국해에 항모 외교 나서

중국은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와중인 지난 4월 18일 하이난(海南)성 싼사(三沙)시 산하에 시사(西沙)구와 난사(南沙)구를 각각 설치해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 섬과 산호초 등을 편입했다. 앞서 4월 2일에는 중국 해양 감시선이 남중국해에서 베트남 어선과 충돌해 침몰시키고 어부들을 억류했다가 풀어주기도 했다. 중국의 이런 ‘도발’에 대해 베트남은 “단호히 거부한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중국은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는 대로 베트남은 물론 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을 벌여온 동남아 국가들과 외교적 마찰을 겪을 수밖에 없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17일 해방군의 2호 항모이자 자체 건조 1호인 산둥(山東)함의 취역식을


남부 하아난성의 싼야(三亞)에서 시진핑 주석이 참가한 가운데 열고 남중국해를 맡겼다. 2016년 7월 12일 헤이그 국제상설중재재판소가 중국의 남중국해 권리 주장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으며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에서 한술 더 떠 항모 파견으로 맡선 셈이다. 미국은 남중국해의 항행의 자유를 내세워 중국에 맞서고 있다. 남중국해는 한국을 오가는 석유와 수출 상품이 지나는 해역이기도 하다.

지난 18일 화상회의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의 의사결정기구인 세계보건총회(WHA)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 주석은 미국와 호주 등이 주장한 코로나 발생에 대한 즉각적이고 독립적인 조사에 반대하고 WHO 주도의 조사를 주장했다. 중국은 호주에 주요 수출품인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하는 무역 보복을 가했다. 신화=연합뉴스

 

불만국가에 수입·수출 금지로 길들이기 시도

중국은 자국과 사이가 틀어진 특정국가의 핵심 수출품목의 수입을 금지해 국제무역규범을 파괴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있다. 중국은 지난 12일 기술적인 문제를 들어 호주 대형 육류업체 4곳의 쇠고기 수입을 막았다. 누가 봐도 호주가 코로나19와 관련한 독립적인 국제조사를 주장하자 이에 대한 보복차원에서 이뤄진 수입금지 조치다. 중국은 지난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노르웨이 의회가 중국 인권운동가인 류사오보(劉曉波)를 수상자로 결정하자 노르웨이의 주요 수출품인 연어의 수입을 금지하기도 했다. 일본과 영토 갈등이 벌어지자 일본에 전략물자인 희토류 금속 수출을 막기도 했다. 중국은 2016년 한국과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갈등이 벌어지자 단체관광객 송출을 금지했다. 하지만 중국에 필요한 반도체의 수입은 그대로 유지했다. 중국은 무역을 무기로 활용해 특정국가 길들이기를 시도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 겸 중앙군사위원장이 인민해방군 해군을 사열하는 모습. 중국은 무력을 앞세운 공세적인 전랑 외교(늑대 외교)로 국제사회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핵군축 시대 시대착오적인 ‘핵 탄두 1000개’

5월 9일에는 중국 환구시보의 후시진(胡錫進) 편집인이 중국은 단기간 안에 핵탄두 보유 수를 1000개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구시보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이기 때문에 공산당의 의중을 상당히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발언은 중국이 시대착오적인 핵무기 증강에 나서려는 중국 공산당의 숨은 의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 원하는 나라가 어떤 모습인지도 엿볼 수 있다. 핵으로, 항모로, 독설로 주변 국가를 위협하고 자극해 자국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야 말겠다는 패권주의 국가의 모습이다. 19세기 제국주의 국가들이 중국을 괴롭혔던 치욕스러운 역사를 그대로 돌려주겠다는 의도는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지난 4월 17일로 치욕적인 청일전쟁 종전 125주년을 맞았다.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 간의 뉴스타트(전략핵무기 감축 협정)에 동참하라는 권유도 무시하고 있다. 뉴스타트는 미국과 러시아의 핵탄두를 1550개 이내로, 미사일과 폭격기 등 발사체의 보유를 800기, 배치를 700기 이내로 제한하는 협정이지만 중국은 참가를 거부하고 있다.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은 나 몰라라 하고 패권만 확대하겠다는 의도는 아닌지 의심해볼만한 대목이다. 후 편집인은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차별적인 한국인 검역을 앞장서서 주장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 22일 열린 전국인민대표자 대회 개막식에서 입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전랑 외교, 중국 고립 심화 가능성

이처럼 시진핑의 중국은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글로벌 평화를 추구하기는커녕 힘의 공백을 최대한 활용해 패권확대에 나서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전랑외교는 이런 중국의 의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상징이다. 이는 중국 내부에서는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자극해 시 주석과 공산당의 권위를 높이게 될 것이고, 결국 시 주석의 종신집권과 공산당의 권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미·중 대립시대를 넘어 자칫 중국이 전 세계와 마찰하는 ‘대갈등 시대’가 열릴 가능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친중 국가를 제외한 전 세계의 많은 나라가 중국의 호전적이고 공세적인 외교를 우려의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홍콩에서 중국의 국가안전법 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던 시민이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면 중국의 위상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글로벌화의 최대 수혜자인 중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경제적 자립주의·국수주의가 국제적 규범으로 자리 잡을 경우 최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유럽·일본과 관계강화를 시사한 대만과 최근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비준한 베트남으로 상징되는 탈중국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전 세계가 중국에 거부감을 나타내면서 연쇄적으로 탈중국화를 시도하는 반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자칫 중국을 경계하고 멀리하는 ‘21세기 황화론(黃禍論)’이 확산할 수도 있다. 결국 무력·독설·보복을 앞세운 ‘늑대 외교’, ‘전랑 외교’는 단기적으로는 중국 권력에 이득을 줄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과 세계에 모두 불행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21세기 초다원적인 국제관계 속에서 중국이 힘과 독설을 앞세운 전랑 외교로 복잡한 세계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까? 그런 인식 자체가 시대착오적이지 않을까. 중국의 전랑 외교에 던지는 질문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도광양회" 외치던 중국의 돌변···영화 '전랑'처럼 거칠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