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경술국치 8년 전인 1902년에 ‘역사 침략’ 끝내”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역사교과서 체제 3史로 나눌 때 한국사를 일본사 일부로 편입”
조선일보
2020.12.16 03:00
/고운호 기자
일제가 1902년 역사 교과서의 체제를 ‘일본사’ ‘동양사’ ‘서양사’의 3사(史) 분과로 나누면서 한국의 역사를 동양사가 아닌 일본사에 편입했음이 드러났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경술국치)이 이뤄지기 8년 전에 이미 일제의 ‘역사 침략’이 완료됐던 것이다.
이태진(전 국사편찬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일본 덴리(天理)대 발행 제70회 조선학회대회 논문집에 실린 강연록 ‘메이지(明治) 일본 정부의 역사교육정책과 조선사(한국사)’에서 이 사실을 밝혔다.
이 교수는 을사늑약과 한일병합의 불법성을 밝히는 자료들을 찾는 과정에서 ‘도대체 이들이 왜 이런 짓을 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한일병합 당시 일본 언론은 불편해하는 기색 없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란 논조였어요. 뭔가 이상해서 도쿄 국회도서관에 가서 그 직전의 역사 교과서를 조사하기 시작했죠.”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역사연구원에서 '역사침략은 1910년 한일병합 이전에 시작'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2020.9.17. / 고운호 기자
그 결과 나가 미치요(那珂通世·1851~1908)라는 인물을 주목하게 됐다. 국학자이자 식민사관의 원조격 학자로 꼽히는 나가는 1894년 청일전쟁 발발 직전 고등사범학교 교수로 있던 중 역사 교육에서 외국사를 ‘동양사’와 ‘서양사’로 나눌 것을 제안했다.
나가의 제안은 이후 일본의 역사 과목이 자국사인 ‘일본사’와 더불어 동양사·서양사까지 ‘3사’로 개편하는 계기가 됐으며, 이후 교토제국대학(1906)과 도쿄제국대학(1910)에 동양사학과가 생겨났다. 일본 중등학교 교과서는 이보다 빠른 속도로 동양사·서양사로 나눠졌다. 일본 문부성의 역사 교과서 집필지침에 따른 ‘3사’ 교과서는 나가의 제안으로부터 불과 8년 만인 1902년에 틀을 갖췄던 것이다.
그런데 이 교수가 당시 일본 교과서 42종을 분석한 결과, 마땅히 ‘동양사’에 포함돼야 할 한국사가 엉뚱하게도 ‘일본사’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본방사강’(1900) ‘일본역사교과서’(1902) ‘통합역사교과서’(1907) 등은 모두 서기 3세기 진구(神功) 왕후가 한반도를 ‘정벌’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을 목차에 수록하고, 이후 한반도의 역사는 ‘한토(韓土)의 변천’ ‘한토의 반란’ ‘백제·고(구)려의 멸망’ ‘발해의 입공(入貢)’ 등으로 모두 일본사 안에서 일본에 복속된 나라의 역사처럼 서술했다.
진구 왕후의 ‘정벌’ 이야기는 고대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의 모태가 됐으나 지금은 일본 학계에서도 전설이나 날조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이것을 ‘정설’로 받아들여 ‘일본사’에 수록했던 것이다.
“그 결과 ‘한반도의 역사는 이미 고대에 일본에 복속된 역사로서 중도 이탈을 바로잡아야 할 일본사의 일부’가 된 것”이라고 이 교수는 말했다. 이 같은 역사 서술 속에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임진왜란) 역시 ‘바로잡기 위한 시도’가 된다. “1912년에 나온 교과서에선 한국 침략의 대단원에 해당하는 1910년의 한일병합에 대해 ‘그 동안의 잘못된 한·일 관계가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역사학이란 학문이 침략의 당위성을 뒷받침해준 것이었죠.”
이 교수는 “역사 왜곡이 실제 침략의 전 단계가 됐다는 점을 지금도 경계해야 한다”며 “오늘날의 일본 극우파들은 당시의 역사 인식에서 큰 변화가 없다는 점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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