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윤리철학
절대론의 체계화와 극단화
(Daum 백과에서 퍼 옴)
육체적 감각의 부정을 바탕으로 철학 체계를 정립한 플라톤은 당연하게도 도덕 문제에서 욕망과 쾌락에 강한 혐오감을 드러낸다. 쾌락은 인간이 분별력을 잃고 비도덕적 상태에 빠지게 되는 원인이었다. “지나친 쾌락이나 고통은 혼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질병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지나치게 기뻐하거나 혹은 고통으로 인해 그 반대 상태를 겪게 되면, 시의에 맞지 않게 서둘러 한쪽은 붙잡으려고 하되, 다른 쪽은 피하려고 하는 통에, 바른 것을 전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으며, 또한 미친 상태가 되어, 헤아림이라곤 전혀 가져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각주1)
개인의 도덕적 파탄만이 아니라 사회적 타락이나 분쟁도 육체적 욕망에서 비롯된다. “전쟁 · 불화 · 분쟁은 왜 일어나는가? 육체와 욕망이 바로 그 원인이 아닌가? 전쟁은 돈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어나고 돈은 육체를 돌보기 위해서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세.”각주2) 돈이든 육체든 물질적 욕망이 극단적 이기심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개인 간, 혹은 국가 간 전쟁이 일어난다.
특히 성적 욕망과 쾌락을 가장 위험한 질병으로 규정한다. “성적 쾌락보다도 더 크고 민감한 쾌락을 자네는 말할 수 있는가? 바른 사랑은 본성상 질서 있고 아름다운 것에 대해 절제 있고 교양 있게 사랑하는 것이겠지? 그러니까 바른 사랑에는 그 어떤 광적이거나 무절제한 것도 접근시켜서는 안 되겠지? 그러니 쾌락이 바른 사랑에 접근해서는 안 되며,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소년이 바르게 사랑하려면, 결코 쾌락에 관여해서는 안 되네.”각주3) 사랑은 쾌락과 어떠한 연관도 맺어서는 안 된다. 사랑은 본성에 있어서 절제와 하나이기 때문에 무절제를 낳는 성적 쾌락은 사랑을 교란시킨다.
〈성교 중인 남녀〉
기원전 5세기, 항아리 그림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는 성적 쾌락 추구가 상당히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항아리 그림을 보면 남녀의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장면이 자주 나온다. 〈성교 중인 남녀〉도 그 중의 하나다. 발기되어 있는 남성의 성기가 거리낌 없이 드러나 있다. 남녀는 이마를 맞대고 눈을 맞추면서 막 신체를 결합시키려고 한다. 다양한 체위의 성행위는 물론이고 남성과 여성 각각의 동성애를 묘사한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심지어 집단 성교 장면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숨겨서 은밀하게 보는 그림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보는 항아리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점을 볼 때 성적 쾌락 추구가 상당히 공공연한 분위기였던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의 저작 속에 성적 쾌락을 혐오함이 더욱 극심했던 것 같다. 진정으로 즐거운 삶은 육체가 아닌 혼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가운데 실현된다. 지혜를 사랑하고 특히 이성적 추론을 좋아함으로써 가장 즐거운 삶을 얻을 수 있다.
육체적 쾌락의 부정을 윤회설과 연결시키면서 하나의 도덕이론으로 체계화한다. 현실의 삶과 윤회를 통한 이후의 상태를 이렇게 설명한다. “항상 육체의 벗이고 노예이며 육체와 육체의 욕망과 쾌락을 사랑하고 매혹당한 영혼, ··· 음식을 탐내고 방탕하고, 술을 좋아해서 이러한 것을 피하지 않은 사람은 나귀와 같은 짐승이 된다네. 철학이나 이성 없이도 습관으로 얻는 사회적 덕을 실천한 사람은 꿀벌 · 장수말벌 · 개미처럼 온화하고 사회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있네. ··· 오직 지혜를 사랑하는 자만이 신과 함께 있을 것을 허락받네.”각주4)
육체적 쾌락을 추구한 삶은 윤회를 통한 보복이 기다린다. 욕망에 빠진 벌로 나귀와 같은 짐승으로 태어나서 고된 삶을 살아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사회적 덕을 실천했으나 이성이 아니라 습관에 의할 때도 동물로 다시 태어난다는 점이다. 욕망을 벗어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있지만 온화하고 사회적 습성을 갖는 동물로 태어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상태로 이해된다. 가장 이상적 윤회는 사람이 아니라 육체의 감옥에서 해방된 이데아의 세계로 가는 것이다. 오직 지혜를 사랑하고 이성을 추구함으로써 성취될 수 있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인식
《국가》에서 철인통치론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다룬다. 국가의 계층 구성은 오직 ‘성향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데, 남녀 구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발생한다.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국가 운영은 남성에게 국한된 일이었고, 여성에게는 적극적 권리가 없었다.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출산과 양육, 가사, 남성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상대였다. 항아리 그림에서 여성은 주로 〈빨래하는 여인들〉처럼 집안일을 하는 장면으로 묘사된다. 혹은 〈성교 중인 남녀〉처럼 성행위와 관련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빨래하는 여인들〉
기원전 470년, 항아리 그림
하지만 플라톤은 국가 일에서 남녀 구분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일에 여자도 ‘성향에 따라’ 관여하게 되고, 남자도 모든 일에 마찬가지로 관여하게 되는 걸세. ··· 같은 성향에는 같은 일이 배정되어야만 하지 않겠는가?” 성향 차이는 남녀로 구분되지 않는다. 개인 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남녀 차이는 단지 “여성은 아이를 낳으나, 남성은 아이를 생기게” 하는 것 말고는 없다. 그러니 여성이기 때문에 못할 일이 없고 사회적으로 이를 제한해서도 안 된다. 통치자든 군인이든 성향과 능력이 있으면 여성이라고 해서 제한해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시(詩)와 체육은 물론이고 전쟁과 관련된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이 남성과 여성에게 차별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에서 플라톤은 한 차례 난감한 문제에 부닥친다. 당시에 체육이나 군사 훈련을 할 때 옷을 벗어야 했다. 그런데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교육 받아야 한다면 여성도 벗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수호자의 아내는 옷 대신에 ‘훌륭함’을 걸칠 것이므로 옷을 벗어야만 하며 ··· 최선의 것을 위해서 옷을 벗고서 체육 훈련을 받고 있는 여자를 비웃는 사람은, ‘설익은 웃음의 열매를 따고 있으니’, 그는 자기가 무엇을 비웃고 있는지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 같네.” 체육을 위해 옷을 벗는 문제에도 남녀 차이는 있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훌륭함이지 옷이 아니다. 벗은 여성을 비웃는 행위는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 훌륭함과 추함조차 구별 못하는 무지와 어리석음일 뿐이다.
심지어 처자 공유를 주장하기도 한다. “모든 남자의 여자는 공유하게 되어 있고, 어떤 여자도 어떤 남자와 개인적으로 동거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네. ··· 모든 남자아이는 아들로, 여자아이는 딸로 부를 것이고, 이들은 그를 아버지로 부를 걸세.” 재산에 대한 탐욕과 이로 인한 불화는 사적인 가족체계에서 비롯되므로 공동가족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플라톤의 주장이 모든 차별을 부정한다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극단적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남녀 간의 구별을 미뤄놓는 논리다. 각 계층 간의 위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최선의 남자는 최선의 여자와 가능한 한 자주 성관계를 가져야 하지만, 가장 변변찮은 남자는 가장 변변찮은 여자와 그 반대로 관계를 가져야 하고, 전자의 자식은 양육하되, 후자의 경우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네. 만약에 우리 무리가 최상급이려면 말일세. 그리스 수호자 집단이 최대한 분쟁 없는 상태로 있으려면, 이 모든 일은 통치자 자신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게 행하여져야만 하네.”
심지어 남녀 차별이 없어야 할 대표적 분야로 지목한 교육조차도 사회 전체로는 노골적 차별체계에 속해야 했다. 열등한 부류의 아이들은 아예 교육에서 배제된다. “우월한 부류의 아이들은 교육을 받겠지만, 열등한 부류는 은밀하게 공동체의 변방을 통해 분산될 걸세. 통치자는 어린아이들을 항상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하며, 가치가 발견되는 아이들은 다시 데려와야 하네. 반면에 별 가치가 없는 아이들은 남겨두어야 할 것이네.”
오직 개인의 성향과 능력에 기초하여 체계적 차별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 관점을 논리적으로 완결하기 위해서는 남녀 차이를 비롯한 다른 요소를 모두 배제해야만 했다. 통치자와 수호자 그리고 생산자는 철저히 위계질서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남녀의 육체적 관계조차 성향과 능력에 따라서만 각각의 계층 내에서 이루어진다. 심지어 취약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 전체적으로 우월한 능력을 지닌 성원을 늘리기 위해 가능한 한 성관계를 제한한다. 하지만 분란이 생길 수 있으므로 통치자는 이를 비밀스럽게 해야 한다.
플라톤에게 최고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국가를 절대화하고 하나의 질서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체계로 강화할 것인지다. 인식론이나 도덕철학에서 그의 결론은 항상 정치철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어떤 면에서는 철인통치론을 중심으로 한 정치철학을 정점으로, 인식론과 도덕론이 이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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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순 집필자 소개
인문학이 생생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순간 화석으로 굳어진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인문학적 사유를 일상의 사건과 삶에 밀착시키는 방향으로 글을 써왔다. 동서양 미술작품을 매개로 철학적·사회적 영역으로 ..펼쳐보기
인문학이 생생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순간 화석으로 굳어진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인문학적 사유를 일상의 사건과 삶에 밀착시키는 방향으로 글을 써왔다. 동서양 미술작품을 매개로 철학적·사회적 영역으로 인식 지평을 확장하여 인문학적 사유로 심화해 들어간 《미술관 옆 인문학》(1, 2권), 서양철학사와 서양미술사를 통합적으로 서술한 《사유와 매혹》(1, 2권), 지난 수천 년간의 사상사에 굵직한 궤적을 남긴 주요 논쟁을 시공간을 넘나드는 가상 논쟁을 통해 토론식으로 풀어낸 《히스토리아 대논쟁》(1~5권), 인문학 기초체력을 키워주는 《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 헌법에 담긴 인문학적 뿌리를 탐색하는 《헌법의 발견》 등을 펴냈다. 인문학이 생생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순간 화석으로 굳어진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인문학적 사유를 일상의 사건과 삶에 밀착시키는 방향으로 글을 써왔다. 동서양 미술작품을 매개로 철학적·사회적 영역으로 ..
출처
사유와 매혹 1 | 저자박홍순 | cp명서해문집 도서 소개
서양 철학사 전체를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미술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를 위해 미술작품을 단순한 참고 도판으로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 작품을 ..펼쳐보기
서양 철학사 전체를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미술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를 위해 미술작품을 단순한 참고 도판으로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 작품을 분석해 철학의 흐름과 어떻게 맞물려 변화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서양 철학사 전체를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미술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를 위해 미술작품을 단순한 참고 도판으로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 작품을 ..
전체목차
1. 원시공동체 사회와 초기 고대국가의 철학과 미술 구석기
신석기와 청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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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대 그리스 철학과 미술 자연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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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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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중세철학 · 르네상스 · 종교개혁과 미술 교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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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종교개혁
서양 철학사와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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