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 感想文

유치함에 대하여

이강기 2021. 1. 10. 09:39

유치함에 대하여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대학지성

  •  2020.12.27 22:52


 

세상에는 참 유치한 것들이 많다. 고상하게 살고 싶어도 때로는 유치해지지 않을 수 없기도 하다. 고상하게 사는 것이 좋은 것 같아도 고상함이 때로는 지루함이기도 하다. 유치함은 유치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유치한 것은 그냥 유치해서 보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그 유치함이 삶에 활력을 주고 흥을 돋우기도 한다. 유치함에는 두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알짜 그냥 유치함과 활력 유치함의 두 가지 말이다. 그런데 이 두 유치함을 언제나 잘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치함이란 말 그대로는 어린애 같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린이의 학예회를 보고 유치하다고 하지 않는다. 젖 달라고 징징대는 아기더러 너 왜 그렇게 유치하냐고 나무라지 않는다. 유치함이란 어른이 아이처럼 구는 것을 말한다.

 

생활 속에서 볼 수 있는 유치한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막장 드라마는 유치하다. 싸우고 뜯고 애교 떨고, 또 그런 것들을 질질 늘리고 하는 모든 것이 유치하다. 그런데 이런 유치한 드라마를 사람들은 유치하다고 욕하면서 잘도 본다. 유치함이 좋기 때문이다. 그 드라마 속의 유치한 어떤 요소가 시청자의 감추고 싶은 유치한 어떤 속성을 잘 건드려 주기 때문이리라. 텔레비전 오락 프로들은 다 유치하다. 국민 예능인이라는 유재석도 정도 차이는 있으나 텔레비전에서 하는 짓이 거의 다 유치하다. ‘무한 도전’ 같은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짓들이 다 유치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한다.

나는 트로트 가요를 잘 듣는 편이다. 흘러간 트로트 노래들 중에는 정말 명곡이라 할 만한 것들이 있다. 그러나 소위 성인 가요를 듣다 보면 정말 유치한 노래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즐겨 듣는 나로서도 채널이나 다이얼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유치한 노래들이 뭇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유행가 가사를 제 얘기로 절실히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거나 인생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다.


유치함과 비슷한 말이 많이 있다. 저질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질이 낮다는 뜻이다. 질이 낮은 것은 대개 유치하겠지만 고상한데도 질이 낮을 수는 있다. 고상한 작품이지만 완성도가 떨어지면 질이 낮은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는 수준이 낮다고 하지 저질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저질이라는 말은 저속하다는 말과 통한다. 저속하다는 것은 거칠고 막되었다는 뜻이다. 예전에 독재 정권이 유행가가 저속하다고 금지곡으로 묶은 적도 있지만, 유치하다고 그런 적은 없다. 수준 낮다는 말은 “저 사람은 수준이 낮아 상대할 수 없어”라는 말에서 보듯이 정신이나 교양의 수준이 낮다는 말이다. 반드시 저속하거나 저질이거나 유치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런 말들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저 사람은 저질이야”라는 말은 여자들이 남자한테 주로 하는 말이다. 거꾸로의 경우는 별로 없다. 상대에게 대하는 것이 저속하고 수준 낮고 거칠고 막되었다는 뜻이다. 저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변태라는 말도 있다. “저 사람 변태야”라는 말은 젊은 여자가 나이든 나 같은 남자한테 주로 하는 말이다. 늙은 남자가 젊은 여자한테 “저 아가씨 변태야”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변태라는 말은 성적인 의미를 지니는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하는 짓이 저속하고 수준 낮고 거칠고 막될 뿐 아니라 뭔가 기괴하다는 뜻이다.


유치함이란 저질, 저속, 변태 이런 것들과는 좀 다르다. 그런 것들이 지닌 나쁜 의미는 약하다. 특별히 이상한 사람을 빼고 저질, 저속, 변태를 좋아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유치함은 때로 묘한 매력으로 우리를 잡아당긴다. 왜일까?


사람들은 언제나 남에게 보이기 위해 고상하고 점잖고 우아하고 현명하고 너그럽게 살 수 없다. 그렇게 사는 삶은 너무나 피곤하다. 때로는 있는 그대로를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숨 쉬고 살 수 있다. 주로 집안에서는 그렇게들 살겠지만, 밖에서는 아무래도 긴장하고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밖에서는 유치함에 끌리는 것이 아닐까? 물론 안에서도 그렇지만 말이다. 유치함은 우리 모두에게 깊이 박혀 있는 한 속성이기도 하다. 유치함에 대한 내 해석은 깊이 있는 성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글을 써 내려가는 한 30분 동안 저절로 나온 결론이니, 깊이 생각할 것 없다. 그냥 유치한 수준의 해석이라고 보면 그만이다.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최근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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