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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하여

이강기 2021. 2. 2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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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하여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경향신문

2021.02.27

 

목숨을 건 민주화 현장의
미얀마 시민들에게 보내는
뜨거운 연대의 성원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지원한
세계인들의 은혜를 되갚자

 

팔뚝에 이름, 전화번호, 혈액형을 적는 그들을 보며 눈물이 흐른다. 억압받는 세계의 백성들은 이렇게 자유와 정의를 위해 길거리로 몸을 던진다. 그들은 “국민들이 고통받기 때문에 차들도 멈췄다”며 고장난 차들을 도로 위에 두거나 경적을 울리고, 냄비를 두들기거나 세 손가락 저항의 상징을 허공을 향해 날리고 있다. 죽은 자들 뒤를 산 자들이 따르며 민주주의의 승리를 외친다.

 

 

미얀마의 과거는 한국과 너무나도 닮았다.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가 그랬지만, 특히 이 나라는 서구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나는 고단한 과정부터 해방, 내란(6·25전쟁), 군부 쿠데타, 신군부의 정권 강탈, 민주화의 여정이 흡사 쌍둥이 같다. 물론 각자의 특수한 역사는 비교할 수 없다. 더욱이 지금까지 미얀마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불교라는 세계관이 지배했다. 나아가 한때 비동맹회의의 맹주로서 ‘외국과의 군사동맹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중립 및 독자노선을 취함으로써 한국에 앞서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했다.

 

우리가 그랬듯 민주화를 위한 그들의 열정은 멈출 줄 모른다. 1962년, 1988년, 그리고 올해 수많은 시민들이 총칼 아래 쓰러졌어도 분노의 함성은 하늘을 찌른다. 도둑맞고 빼앗겨도 마침내 새 아침이 오리라는 것을 그들은 믿고 있다. 그것이 역사의 순리다. 민주세력은 한국처럼 정치에 관여하는 군부의 뿌리를 과감하게 잘랐어야 했다. 그들의 야욕은 칡 넝쿨이 거목의 등줄기를 타고 올라 고사시키는 것처럼 민중의 목을 옥죈다. 세계 한쪽이 미온적인 이유는 로힝야족 학살에 군부와 결탁한 민주세력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얀마 백성들이 쟁취한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은 아니다. 민중의 피눈물로 세워지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으랴. 쿠데타는 왕조시대의 유산이다. 힘이 곧 권력이 되던 때, 칼을 거꾸로 주군에게 들이대던 무도한 시대의 것이다. 나라를 지키라고 쥐여준 총구를 백성을 향해 들이대는 것은 반역이다. 어떤 정당성도 없다. 그들이 백성을 등지는 것은 자본과 결탁한 이권 때문이다. 군대가 기업을 운영하거나 뒤를 봐주고 이권으로 뭉친다. 이 쿠데타는 본업보다 부업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전투인 셈이다.

 

이들에게 굴하지 않는 미얀마의 희망은 한국처럼 학생들이다. 식민지기 독립운동의 주체 세력은 학생들이었다. 이들이 결성한 독립군은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의 모체다. 네윈의 오랜 독재시대에도 체제의 부당함을 설파했으며, 1988년 민주화 요구의 불길을 낸 것도 그들이다. 지금 이들 Z세대는 휴대폰으로 폭력현장을 기록하고, 인터넷으로 내부의 상황을 전 세계에 고발하고 있다.

 

또 한 세력은 태생이 비폭력 집단인 불교다. 다양한 민족과 종교, 이념들의 각축, 국경을 맞댄 이웃국가들과의 갈등으로 이 나라는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다수의 종교인 불교마저 일부는 배타적 민족주의에 물들어 있다. 그럼에도 민주화의 길목에는 언제나 목숨을 걸고 앞장선 정의로운 승려들이 있었다. 미얀마 전문가 장준영 교수는 “미얀마 역사를 통틀어 상가(승려집단, 넓게는 불교 공동체)는 국가운영 원리의 근간이자 정부와 국민을 중재하는 매개체”라고 한다. 석존의 머리카락이 모셔진 쉐다곤 파고다는 피아(彼我) 모두를 모은다.

 

 

하여 나 또한 믿는다. 미얀마 민주주의의 꽃은 반드시 만개한다. 전설에 의하면,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전륜성왕(정법으로 통치하는 왕)인 아소카왕이 보낸 사자가 도착한 ‘황금의 땅’이 바로 미얀마다. 이는 진리와 정의를 뜻하는 담마(dhamma)가 구현된 불토낙원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다. 지금 처절히 싸우는 미얀마 민주주의의 친구들에게 어두운 터널 끝에는 빛이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주어야 한다. 그것이 이 땅의 민주화를 간절히 염원했던 세계 이웃들의 은혜를 우리가 되갚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