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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를 가리키는 말, 말, 말

이강기 2021. 3. 3. 14:44

노예를 가리키는 말, 말, 말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대학지성

  •  2021.02.28 21:30


■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43)_ 노예를 가리키는 말, 말, 말

 

현재 아랍권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Saudi Arabia)는 1932년 압둘라지즈(Abdulaziz bin Saud)가 건국한 신생국가다. 이 나라의 국명을 아랍어로는 المملكة العربية السعودية 이라 적고 영어로는 알 맘라까 알 아라비야 아스 사우디야(al-Mamlakah al-ʿArabīyah as-Saʿūdīyah)라고 전사한다. 아랍 사우디 왕국이라는 의미다.

 

여기서 사우디라는 말은 알 사우드(Al Saud)라는 왕족가문명에서 나왔다. 아랍어에서 ‘al’은 조상의 이름 앞에 붙여 무슨무슨 가문 또는 집안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알 사우드의 경우 18세기, 이 가문을 일으킨 ‘무하마드 빈 사우드’의 부친 ‘사우드 이븐 무하마드 이븐 무크린’을 말한다.

 

노예니, 종이니 하는 말을 쓰지는 않지만, 세상의 절반인 남성과 대비해 역시 세상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의 지위가 노비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경우가 있다. 여성은 오랫동안 남성에게 예속된 삶을 살아왔다. 이런 점을 못마땅하게 여긴 시몬느 드 보봐르는 여성을 남성과 대등한 관계가 아닌 ‘제2의 性’이라 기술하였다. 당연히 남성은 ‘제1의 성’임을 전제로 한 언명이다.

 

남자에게 여자가 종 취급을 받았다는 증거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다. 중-근세 러시아에서는 남편이 심기가 불편하면 죄 없는 아내를 때렸다. 어려서부터 듣던 말 중에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때려야 한다”는 말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물론 이 표현을 성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젊은 짜르 이반 4세의 자문역을 맡고 있던 실베스테르(Sylvester)라는 수석 사제가 1556년에 만든 <가정의 질서(Domostroy)>라는 책을 보면 아들 안테니우스를 훈육하는 방식으로 16세기 러시아 사회 즉 모스크바 공국의 종교, 사회, 가정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되어 있는데, 압권은 아내를 교육시키는 방법이다.

 

그의 충고는 명쾌하다. “복종하지 않는 아내는 매질을 심하게 하되 화를 내서는 안 된다.” 가관인 것은 “좋은 아내일지라도 때때로 채찍질을 하라. 단 비밀리에 가볍게 하고 멍이 드는 주먹질은 피하라.” 수도자라는 사람의 여성 길들이기 가르침이 이 정도니 일반 서민 가정에서는 폭력이 일상적이었을 것이다.

 

영국 출신의 의사 콜린스에 의하면, “이 야만인들은 자기 아내의 머리채를 기둥에 묶고 옷을 벗긴 채 때리기도 했다.” 이런 잔혹한 학대로 아내가 매를 맞아 죽는 경우도 흔했다. 그런데 고문 수준의 극심한 악행을 도저히 참지 못한 아내가 남편에게 덤벼들거나 살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러시아 법률은 아내의 저항을 심각한 중죄로 다뤘다. 남편을 죽인 아내는 머리만 땅 위에 내놓고 산채로 묻혀 죽는 처벌을 받았다. 어찌 보면 좋은 주인 만난 노예만도 못한 신세가 서양 중세 유럽 전역의 여성들의 처지였다.

 

신 앞에 평등해야 할 이슬람에도 여성은 남성에 예속된 삶을 산다. 뿌르다(purdah)라는 종교, 사회적 여성 격리 관습은 무슬림 여성들에 대한 그릇된 관습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래야 될 필연적 이유가 없는데 제도가 그렇게, 그래야 된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이슬람에서의 제도는 알라에 의해 권능이 부여된다. 그러니까 여성이 남성에 순종해야 하는 것은 신의 이름으로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신에 의한 당위성은 재론의 여지도, 거역할 권리도 없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신의 말씀을 따르고 복종하는 사람, 다시 말해 알라의 노예, 종이 되는 사람은 좋은 사람, 행복한 사람이다.

 

노예 또는 하인을 가리키는 아랍어는 아비-드(Abeed, 복수형은 Abīd 또는 al-Abīd)다. 아랍어 이름에서 관사 ‘알’은 ‘울’ 또는 ‘엘’ 등으로도 쓰이는데 대표적으로 압둘(Abd + ul)을 들 수 있다. 이 이름은 ‘~의 종’이라는 뜻을 지닌다. 압둘 나비(Abdul Nabi)는 ‘예언자의 종’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압둘이라는 이름은 항상 알라신의 여러 이름 중의 하나가 뒤따라온다. 우리가 흔히 듣는 압둘라(Abdullah)라는 이름은 ‘Abd Allah’에서 나왔고 ‘신의 종 또는 신의 숭배자’라는 뜻을 지닌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세운 사람의 이름도 종이라는 의미를 담은 압둘라지즈(Abdulaziz)다. Abd와 ‘the Almighty(전능자, 신)’라는 의미를 지닌 Aziz의 합성어인 이 이름의 뜻은 ‘전능한 이의 종’이다. 그리고 그의 풀네임은 이렇다. Abdulaziz bin Abdul Rahman bin Faisal bin Turki bin Abdullah bin Muhammad Al Saud.

 

일단 노예는 사람이되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다면 고작 피부색만 다를 뿐인 혹은 종교적 신념만 같지 않은 호모 사피엔스 동종을 짐승처럼 다루거나 죄의식 없이 죽이지 못했을 것이다. 美醜나 문화적 차이는 어디에나 있다. 그러므로 노예주인 인간과 노예인 비인간을 구분하는 변수가 되지는 못한다. 노예의 탄생은 힘겨루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힘 가진 자가 노예주요, 힘을 박탈당한 자는 노예가 된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아프가니스탄 출신 작가의 자전적 소설 <연을 쫓는 아이들>을 보면 사람 좋은 상전과 천민인 하지라족 출신 종복의 신분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다. 수직관계인 두 남자의 아들들 각각도 주인 나리와 머슴의 관계에 놓여 있었다. 상전은 자신의 종복을 이름으로 부르고, 머슴은 윗전을 이름으로 못 부르고 ‘아가(Agha, 나리, 주인님이라는 뜻)’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도 하인이 주인댁 딸을 부를 때 아가씨, 아기씨라고 불렀으니 기막힌 우연이다. 한편 터키어로 노예는 쾰레 köle라고 한다. 루스케(러시아인)는 노예를 라브 раб[rab]라고 한다.

 

로마제국 지배하의 유럽 사회에 있어 노예의 양산은 사라센이라고 불리는 북아프리카에 사는 이슬람교도들의 납치와 노략질 비즈니스인 해적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라센인은 주요 습격 대상인 시칠리아 섬 등에 사는 기독교인들을 뭉뚱그려 ‘루미(rumi)’라고 불렀다. ‘로마인’이라는 말이다. 이슬람교도에게 루미는 곧 크리스천이고 이단이었다. 때문에 루미에게 어떤 악한 일을 해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전교든 전법이든, 포교든 전도든 그 어떤 거룩한 이름으로 위장을 한다 해도 자신이 속한 종교 세력의 영역확장을 위한 침탈 전쟁은 모든 종교의 본질인 자비와는 180도 다른 무자비함의 끝을 보여준다. 聖戰이라는 말은 역겹게 들릴 수 있다. 자신과 다르다고 남을 죽이는 것이 어떻게 거룩한 행위일 수 있는가? 양보와 용서, 이해, 관용이 빠진 그 어떤 일도 신의 뜻은 아니다. 인간의 아픔과 슬픔이 신이 바라는 일일 수는 없다.

 

우리말에도 종을 가리키는 말이 참 많다. 종, 몸종, 노비, 노예, 奴僕(노복), 從僕(종복), 家奴(가노), 官奴(관노), 館奴(관노), 監奴(감노), 외거노비, 솔거노비, 私賤(사천) 등이 있다. 이는 어느 나라 못지않은 차별과 예속의 세분화된 신분제도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