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도 일본도, 한국문학에 ‘러브레터’
최은영·정세랑 등 한국작가 10명 칠레 라디오에 초청돼 인터뷰
조선일보
2021.04.20 03:00
최근 칠레 수도 산티아고와 인근 수도권 10만명이 청취하는 칠레대학교 라디오 방송에 소설가 최은영(37)이 한국에서 원격으로 등장했다. 남미 현지에서 스페인어로 번역돼 2019년 출간된 소설집 ‘쇼코의 미소’를 주제로 한 인터뷰였다. 진행자가 물었다. “베트남전쟁을 다룬 단편 ‘신짜오, 신짜오’는 칠레-영국 간의 ‘말비나스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을 쓸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최은영은 “베트남 전쟁은 큰 상처이고 한국 사람들이 많이 다루지 않는 주제이기 때문에 작품을 집필할 때 또 다른 폭력을 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이 컸다”고 답했다.
소설가 최은영(오른쪽)이 칠레의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소설집‘쇼코의 미소’에 대해 말하고 있다. /VLP
칠레의 출판 저작권 에이전트 ‘VLP’가 한국문학번역원에 요청해 열린 ‘칠레 한국 작가 10인 라디오 인터뷰 시리즈’였다. 최은영을 시작으로 배수아, 윤성희, 장강명, 김애란, 정세랑, 황석영 등 한국작가 10인 인터뷰를 오는 8월까지 2주 간격으로 방송한다. 이들 작가의 작품들 모두 스페인어로 번역됐으며, 지난해 정세랑의 ‘지구에서 한아뿐’,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등 비교적 젊은 작가의 대표작들이 처음 소개됐다. 비비안 라빈 VLP 대표는 “BTS 노래와 봉준호 영화에 이어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번역원 지원을 받아 해외로 나간 한국 문학 작품은 해를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6년 117권이던 해외 출간 문학은 지난해 170권으로 뛰었고, 번역된 언어도 18개에서 26개로 다양해졌다. 눈여겨볼 점은 관(官) 주도가 아닌 시장의 힘으로 해외에 나가는 작품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해외 출판사와 먼저 저작권 계약을 맺어야 이뤄지는 번역 출판 지원으로 출간된 작품은 106권으로, 번역원이 주도하는 공모 사업(64권)을 앞섰다.
(왼쪽부터)‘쇼코의 미소’ 스페인어판, ‘지구에서 한아뿐’ 스페인어판, ‘귤의 맛’ 일본어판, ‘한국이 싫어서’ 스페인어판
출판그룹 문학동네 저작권팀 김지영 과장은 “2017년 한 해 20여 건에 머물렀던 해외 출판사와의 저작권 협상이 지난해 90여 건으로 늘었다”며 “저작권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아시아권에서 특히 일본 시장의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한다”고 말했다. 과거엔 한국 문학을 직접 소개해야 했지만, 이젠 일본 출판사들끼리 출간 경쟁이 붙는다고 한다. 2018년 일본에서 출간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현지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후로 한강, 정세랑, 김애란 등 한국 여성 작가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다산북스 한승빈 저작권 팀장은 “한국 문학의 상업적 성공이 검증됐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출간한 조남주의 장편 ‘귤의 맛’은 책이 나오기도 전에 일본 12곳 출판사로부터 저작권 계약 러브콜을 받았다. 억대의 선인세를 내고 아사히신문 출판사가 계약을 따내 이달 말 현지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일본에서 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로 50만부 판매를 기록한 김수현은 지난해 후속작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로 일본 출판사로부터 선인세 2000만엔(약 2억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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