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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초(國初)의건도문제(建都問題)

이강기 2021. 5. 19. 07:14

국초(國初)의건도문제(建都問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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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30.06.12

석간4

 

 

그래서 태조(太祖)는 압서부터 친람(親覽)코자 하시든 무악(毋岳)의 형세(形勢)를 이때 안전(眼前)에 노코 택정(擇定)하시라고하야 모든재신(宰臣)들과 밋지사(地師)들을 잇글고 거가(車駕)를 목적지(目的地)에 향()하섯섯다 팔월십일일(八月十一日) 무악(毋岳)에 이르자 신도(新都)의 지()를 상찰(相察)하실새 판서운관사윤신달(判書雲觀事尹莘達)과 서운부정유한우등(書雲副正劉旱雨等)은 나가 아뢰대 지리(地理)의 법()으로 보오면 이땅은 도읍(都邑)할곳이 못됨니다고 반대(反對)하얏다

 

이때 태조(太祖)와 조우(早雨) 사이에는 일장분연(一場紛然)한 문답(問答)이 설왕설래(說往說來)하얏스니 태조왈(太祖曰너희들의 망상시비(妄相是非)하야 이땅이 만일 불가(不可)하다면 어느곳이 가()하겟느냐한우대왈(旱雨對曰)()은아지못하겟슴니다태조노왈(太祖怒曰 )네가서운관(書雲觀)이되야 모른다고하니 누구를 속임이냐 송도지기쇠왕(松都地氣衰旺)의 설()을 너는듯지 못하얏느냐한우대왈(旱雨對曰)그것은 도참소설(圖讖所說)이압고 신()은 다만 지리(地理)를 배왓사와 도참(圖讖)은 알수업슴니다태조왈(太祖曰)고인(古人)의도참(圖讖)이 또한 지리(地理)에 인()하야 말함이니 엇지 빙허무거(憑虛無據)히 말한것이랴 그러면 너희맘에 가()하다고 생각하는바를 말하야보아라한우대왈(旱雨對曰) 전조태조(前朝太祖)가 송산명당(松山明堂)(송악(松嶽))을상()하야 궁궐(宮闕)을지엇사온대 중엽기후(中葉己後)로 명당(明堂)이오래동안폐()하야군왕(君王)이자조이궁(離宮)으로 옴기엇슴니다 신()은생각커온대 명당(明堂)은지덕(地德)이쇠()치안이하는것이오니 다시(그곳에)작궐(作闕)하사

 

송경(松京)에 잉도(仍都)하시압소서태조왈(太祖曰)나는장차천도(遷都)하기로 뜻을결()한사람이다 마일근경내(近境內)에 다시길지(吉地)가업다고하면 녯날삼국(三國)의소도(所都)도또한길지(吉地)가될터이니 합의(合議)하야아뢰라고하섯섯다 오인(吾人)은이문답(問答)에잇서 태조(太祖)의천도(遷都)에대()한강경(强硬)한의지(意志)를 더욱살필수잇는동시(同時)에 그조급(燥急)히천도(遷都)하시랴는이유(理由)가 송도지덕(松都地德)의쇠왕설(衰旺說)에깁흔 신념(信念)을 가지심에잇섯든것을또한명백(明白)히간파(看破)할수잇다

 

그리하야 태조(太祖)는다시 서운관원(書雲觀員)을비롯하야 제대신(諸大臣)에게천도지소(遷都地所)에대()한의견(意見)을 징()하시매

 

()서운관원측(書雲觀員側)(최융(崔融),윤신달(尹莘達),유한우(劉旱雨))에서는 조선일국내(朝鮮一國內)에 명당지지(明堂之地)로는결소(抉蘇)(개경(開京))명당(明堂)이제일(第一)이오 남경(南京)(한양(漢陽))이 그다음이라고주()하얏고

 

()판삼사사정(判三司事鄭)()은 무악(毋岳)은일국중앙(一國中央)에거()하야 교통(交通)도편(便)하나 다마유감(遺憾)은한골(())사이에개재(介在)하야 으로궁침(宮寢)과밧그로조시종묘(朝市宗廟)들 용()할곳이업고또지금이야말로 민력(民力)을휴양(休養)하고 인사(人事)를부찰(俯察)할때니 상지(相地)와가튼것은 맛당히때를기다려할것이라하야 모악불가설(母岳不可說)과 천도상조론(遷都尚早論)을창()하얏고

 

()문하시중찬성사성석린(門下侍中賛成事成石璘)도 이땅이산수(山水)의회()와 조운(漕運)의통()인즉 가위길지(可謂吉地)라고하겟스나명당(明堂)(국부(局部))이 경착(傾窄)하고 후산(後山)이저미(低微)하야 규국(規局)이왕자(王者)의도()에합()치아나하야 개경(開京)인부소산수(扶蘇山水)에는 혹역처(或逆處)(배역처(背逆處))가잇다고하야 자래(自來)로좌우소순주(左右蘇巡住)의설()이잇스니 지금부소명당(扶蘇明堂)본궐(本闕)로삼고 그근처(近處)에지()를복()하야 순주(巡住)의소()를삼으면 행심(幸甚)이라하야역시모악불가설(亦是母岳不可說)과 천도상조론(遷都尚早論)을집()하얏고

 

()정당문학정총(政堂文學鄭摠)은 또한모악반대론자(母岳反對論者)의일인(一人)으로 부소(扶蘇)는 도선이래삼사(道詵以來三士)(삼한(三韓))통유(統有)의설()이잇서 전조시조(前朝始祖) 이에도()하야 삼한(三韓)을통일(統一)하고 이후오백년(以後五百年)을경()하야 종()하니 이는 기운수소관(其運數所關)이오 지덕관계(地德關係)가 아닌즉 개경(開京)알지라도 무해(無害)할듯하며 모악(母岳)은 명당(明堂)이 심()히좁고 주산(主山)이함닉(陷溺)하고 수구(水口)가관쇄(關鏁)되지못하니 이것이길지(吉地)면엇재고인(古人)이쓰시를 안이하얏스랴기어(期於)코개경(開京)을버리고 달리구()한다하면 널리구()함이 가()하겟다고 주창(奏唱)하얏다

 

()그다음모악천도론(母岳遷都論)을주장(主張)하는 첨서중추원사하륜(僉書中樞院事河崙)은말하기를 모악(母岳)의형세(形勢)가 비록비협(卑狹)하기는하나 저향국(享國)이 장구(長久)하든계림평양(鷄林平壤)의궁궐(宮闕)의터에비()하면 실상관광(實相寬廣)할뿐더러 국내중앙(國內中央)에거()하야 조운(漕運)이통()하고산하(山河)가표리(表裡)하야잇스며 또동방전현(東方前賢)의밀설(密說)에 빙거(憑據)하야보더래도 서로계합(契合)함이만코 중국지리제가(中國地理諸家)의 산수조취(山水朝聚)의설()과도거개상근(擧皆相近)하다함은 전일(前日)에도말한배니 만일전현(前賢)의설()을용()하야만세(萬世)의기()를 세우랴고하면 이에서더지날곳이 업다고하고

 

()중추원학토이직(中樞院學土李稷)은 동방밀설(東方密說)에왈()삼각남면(三角南面)()임한강(臨漢江)우왈(又曰)모산(母山)이라함는 다이땅을 들어말함이나 대저복지천도(大抵卜地遷都)는 중대(重大)한일인즉 반듯이천()에응()하고 인()에순()한후()에가()히행()할것이며 모악명당(母岳明堂)은자기(自己)도또한좁다고 생각한다고하야결국(結局)은모악천도설(母岳遷都說)에대()하야 반대(反對)의뜻을표시(表示)하얏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