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죽였다, 간단했다" 126년만에 발견된 '을미사변 고백'
명성황후(1851~1895) 시해에 직접 가담한 일본 외교관이 고향 친구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가 126년 만에 발견됐다. 편지에는 "우리가 왕비를 죽였다"는 내용 등 명성황후 시해 사건 경위가 상세히 기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명성황후 시해가 일본 국가 차원에 주도된 것은 아니라는 그간 일본의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자료로 역사학자들이 "가치가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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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에 가담한 일본 외교관이 사건 직후 친구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가 발견됐다는 기사가 실린 16일자 아사히신문. 이영희 기자
16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을미사변(乙未事變) 당시 조선에 영사관보(補)로 머물던 호리구치 구마이치(堀口九万·1865~1945)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서한 8통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호리구치는 당시 외교관·경찰·민간인 등으로 구성된 을미사변 실행단의 일원이다. 편지를 받은 사람은 일본 니가타(新潟)현 나카도리무라(中通村·지금의 나가오카시)의 한학자이자, 호리구치의 친구인 다케이시 사다마쓰(武石貞松)다.
새로 발견된 편지는 1894년 11월 17일부터 을미사변 이후인 1895년 10월 18일까지 쓴 것으로 총 8통이다. 이중 6번째 편지는 을미사변 다음날인 1895년 10월 9일에 쓰여졌다. 명성황후 시해 현장에서 벌어진 일들이 상세하게 기록됐다.
그는 편지에서 "나는 진입을 담당했다. 담을 넘어 (중략) 간신히 오쿠고텐(奧御殿·귀족 집의 안쪽에 있는 건물, 침소)에 이르러 왕비를 시해했다"고 썼다. 또 "생각보다 간단해서 오히려 놀랐다"는 소감도 덧붙였다.
해당 서한은 일본 나고야(名古屋)시에 사는 우표·인지 연구가인 일본계 미국인 스티브 하세가와(長谷川·77)씨가 고물상에서 입수했다. 붓으로 흘려쓴 글자의 내용은 『조선 왕비 살해와 일본인』의 저자인 재일 역사학자 김문자씨가 판독했다. 아사히신문은 "편지가 원래 보관돼 있다고 여겨지는 장소나 기록된 내용, 소인, 봉인 편지를 만든 방법 등을 비춰볼 때 호리구치의 친필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문자씨는 "사건의 세부(내용)나 가족에 관한 기술 등을 비춰봐도 호리구치 본인의 진필로 봐도 틀림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역 외교관이 임지에서 왕비 살해에 직접 관여했다고 알려지는 문면(文面·편지에 적힌 문구, 표현에서 보이는 취지)에서 새삼 생생한 충격을 느꼈다"며 "아직도 불명확한 점이 많은 (을미사변의) 세부 사항을 해명하는 열쇠가 될 가치 높은 자료"라고 덧붙였다.
일본 근대사와 한·일 관계사에 정통한 나카쓰카 아키라(中塚明) 나라여대 명예교수는 아사히신문에 "청일전쟁도, 러일전쟁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면서 "당시 일본이 조선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사건으로부터 120년이 지난 이 시점에 당사자로부터 1차 자료가 나온 것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또 "(이 자료가) 사건 당사자들이 현지인들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행동했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해당 서한에 대해 "을미사변이 일본 국가 차원의 범죄라는 걸 입증하는 증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명예교수는 "그간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대원군의 뜻을 따라 일본인이 도운 것이며 을미사변 당시 실행단은 일본 낭인 등 민간인이었다'고 주장해왔다"면서 "범죄 현장에 있던 현직 외교관이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범행 사실을 인정한 서한이 발견된 것은 을미사변이 일본의 국가범죄라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고 강조했다.
을미사변은 1895년 10월 8일 일본 육군 출신 미우라 고로(三浦梧櫻) 당시 공사의 지휘로 일본 군인, 외교관 등이 경복궁을 기습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시신에 석유를 뿌려 불태운 사건이다.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 하에서 을미사변을 실행한 일본인들은 조선이 아닌 일본 재판에 회부됐다. 호리구치 등 48명은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면소(免訴)·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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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交官「王妃殺した」と手紙に 126年前の閔妃暗殺事件で新資料
126年前の1895(明治28)年10月8日、日本の軍人らが朝鮮王妃を殺害した「閔妃(ミンビ)暗殺事件」で、実行グループの一員だった外交官が、事件翌日に郷里の親友に宛てたとみられる書簡が見つかった。「自分たちが王妃を殺した」と経緯が詳しく記されており、研究者は「事件の詳細を解き明かす貴重な資料」としている。
書簡の差出人は、現地の領事官補だった堀口九万一(くまいち)(1865~1945)。郷里、新潟県中通村(現・長岡市)の親友で漢学者の武石貞松に宛てた、1894年11月17日付から事件直後の95年10月18日付の計8通が見つかった。
名古屋市に住む切手や印紙の研究家、日系米国人スティーブ長谷川さん(77)が古物市場で入手し、「朝鮮王妃殺害と日本人」の著書がある歴史家、金文子(キムムンジャ)さんが毛筆の崩し字を判読した。手紙がもともと保管されていたとされる場所や記されていた内容、消印、封書の作りなどから、本人の真筆とみられる。
8通のうち6番目の書簡は、事件翌日の同年10月9日付で、現場で自分がとった行動を詳細に記していた。王宮に押し入った者のうち「進入は予の担任たり。塀を越え(中略)、漸(ようや)く奥御殿に達し、王妃を弑(しい)し申候(もうしそうろう)」(原文はひらがなとカタカナ交じりの旧字体。以下同)と、王宮の奥まで押し入り、閔妃を殺したことを打ち明けた。「存外容易にして、却(かえっ)てあっけに取られ申候」と、感想まで添えていた。
事件は日清戦争の講和から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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