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색 국가’ 된 중국, 싫어도 치울 수 없는 이유
[타인의 취향] 17년 간 중국살이한 ‘중알남(중국 잘 아는 남자)’
조선일보 대표 중국통 이벌찬 산업부 기자
”중국, 싫어도 치울 수 없는 이웃”
조선일보, 2022.02.16
OTT는 많고, 시간은 없다. 남들은 뭘 보고 좋아할까요. 조선일보 ‘왓칭’이 남들의 취향을 공유하는 ‘타인의 취향’을 연재합니다. 오늘은 초중고, 대학을 중국 현지에서 나온 조선일보 대표 중국통, 이벌찬 기자와 OTT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1.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중국을 잘 아는 기자, 이벌찬입니다. 산업부 IT·통신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 7년 동안 사회부, 국제부 등을 거쳤지만 ‘전공’은 바뀌지 않는 ‘중국’이었습니다. 여덟 살 때 중국으로 넘어가 초중고, 대학까지 현지 학교를 나온 배경 때문이겠지요. 어느 분야를 취재하든 중국과 연관지어 들여다 봤고, 덕분에 중국에 대한 ‘감’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중국 산업 변화와 알리바바·텐센트·바이트댄스 등 중국 IT기업들에 대해 전할 생각입니다.
2. 가끔 중국인으로 오인받는다고 들었어요. 월드컵, 올림픽 때 중국 응원하세요, 한국 응원하세요?
사상 검증 하시는 건가요?(웃음) 당연히 한국인이니까 한국을 응원합니다. 다만 스포츠 경기나 국가 이벤트에 열렬히 호응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주변 사람들이 제 애국심을 의심하곤 합니다.
3. 가장 좋아하는 중국 음식은?
마라탕 예찬론자입니다. 마라탕은 이름부터 저릴 마(麻), 매울 랄(辣), 데울 탕(燙)을 써서 혀가 마비될 정도로 맵고 얼얼하고 뜨겁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먹으면 위는 아프지만 스트레스는 풀립니다. ‘신체 건강에는 좋지 않지만, 정신 건강에는 유익한 음식’이라 믿고 추천합니다. 영상 콘텐츠도 마라탕처럼 자극적이고 불량한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4. 환생해서 한국 말고 중국, 미국 중 꼭 한 나라를 택해 살아야만 한다면, 어디를 고르실건가요? 이유는?
미국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나면 쉽게 중국에 갈 수 있지만, 중국에서 태어나면 미국에 가기 어렵습니다.
5. MBTI 성향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ENTP(일명 뜨거운 논쟁을 즐기는 변론가 유형)입니다.
6.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OTT에 돈을 지불하고 계시나요?
저는 넷플릭스만 보는데, 아내는 웨이브, 티빙 등 국산 OTT를 따로 구독해서 봅니다.
7. 가장 기억에 남는 중국 관련 뉴스나 ‘아 이건 영화, 이건 드라마 감이야’ 느끼셨던 사건이 있었다면?
‘화웨이 공주’ 이야기는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의 부회장이자 창업주의 딸인 멍완저우(孟晚舟)는 지난해 9월 캐나다에서 구금된지 3년만에 석방됐지요. 그녀의 구금과 석방은 최근 수년간 격화된 미·중 갈등의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풀려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미중 간에 치열한 외교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양국이 인질을 주고 받는 식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멍 부회장이 전세기에서 내려 중국 땅을 밟는 순간을 생중계로 봤는데 붉은 드레스를 입고 붉은 카펫 위를 걷던 그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 그 자체였습니다. 한 개인이 이 정도로 거대한 국제 문제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적이 얼마나 될까요. 참고로, 멍 부회장이 ‘옥고’를 치를 때 그의 이복 여동생은 중국 연예계에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8. 영화 찍을 만한 중국 관련 인물은요?
중국 최대 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마윈입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업가죠. 그가 어떻게 평범한 영어강사에서 중국 최고의 기업가로 발돋움했고, 중국 정부의 타깃이 되어 정상에서 내려오게 됐는지를 들여다 보면 한 나라의 변천사가 그대로 나타납니다.
마윈은 너무나 많은 글과 말을 남겼기 때문에 영화화 과정에서 고증의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텐센트, 바이두, 바이트댄스 등 중국을 대표하는 IT기업들 가운데 수장이 활발하게 대외활동을 한 곳은 알리바바가 유일합니다. 나머지 회사들의 창업자는 전부 엔지니어 출신이었지만 마윈은 영문학도였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9. 취재하면서 ‘중국 재벌’들도 많이 만나셨다고 들었는데요.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두 명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 명은 중국에서 유통 사업을 크게 하던 ‘금수저’ 사업가였는데, ‘돈을 초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어디서 뭘 하든 카드나 현금을 꺼내 계산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짠돌이여서가 아니라 그의 수행원이 그를 따라 다니며 몰래 계산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업이나 행사에 대해 논할 때도 돈에 대해 먼저 말하는 것을 꺼렸습니다. 무슨 일이든 의미와 영향에 대해 말하고 싶어했고, 그것이 재벌의 특권이라고 여기는 듯 했습니다.
또 한 명은 한국에서 온 기자인 저를 황송할 정도로 대접해준 상하이의 자수성가형 창업자입니다. 그가 보낸 외제차를 타고 한 빌딩에 도착했는데 꼭대기 층에 비밀 레스토랑이 있더군요. 뷰가 좋은 거대한 방에서 마오타이주를 마셨는데, 당시에는 왜 저를 위해 그렇게까지 했는지 의문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해외 언론이 와서 취재할 만큼 성공한 자신을 위해 축배를 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는 사드 사태 직전으로 한중 관계가 좋았을 때였고, 한국 언론에서 중국 기업인에게 취재 요청을 하면 흔쾌히 응해주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지금은 중국 기업인들이 몸을 사리는데다 콧대도 높아져서 인터뷰 진행이 쉽지 않지만요.
10. 요즘 국내 ‘혐중 정서’, 중국 내 혐한 정서, 양쪽 모두 심해졌다는 말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중 국민들이 한때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던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양국 관계가 서로에게 경제적 이득이 컸고, 둘째는 양국이 비슷하거나 닮아가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의 상황입니다. 먼저 한중 경제 관계가 바뀌고 있습니다. 한국이 중간재를 제공하면 중국이 값싼 노동력으로 이를 조립·가공해 완제품을 만드는 상호 보완적 관계에서 경쟁 관계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제 더 이상 중국을 기회의 땅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둘째는 양국의 체제가 극명하게 다르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과거에는 중국이 우리와 비슷한 민주주의, 자본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했는데 오늘날 중국은 과거보다 더 붉은 홍색 국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 양국이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관계를 새로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웃은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잘 지낼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11. 현재 보고 있거나 푹 빠져있는 작품들이 있으세요?
블링블링 엠파이어
미국 LA에 사는 아시아계 부호들의 삶을 다룬 리얼리티 쇼인데 여기에 중국계 부자의 전형이 나옵니다. 겉으로는 프랑스 명품에 열광하고 자유분방한 미국식 사고를 장착한 듯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중국인의 정체성을 철저하게 고수하고 있습니다. 중국식 파티를 열고, 중국에 사는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어디서든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으려고 조심하지요. 자신들이 누리는 돈의 권력은 어디까지나 중국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만났던 젊은 엘리트들도 이들과 비슷한 모습이었습니다. 영어를 즐겨 쓰며, 세련된 서구권 라이프스타일과 매너를 자랑했지만 미국에 물든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쓰는 언어나 보여주는 스타일은 상류층인 자신을 중국의 다른 계층과 구분짓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12. 여태껏 보신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중 추천하고픈 중국관련 작품 3편만 꼽아주세요.
겨우, 서른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하는 드라마 ‘겨우, 서른’은 2020년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던 드라마입니다. 화려한 상하이에서 중상층 여성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중국인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담았다고 해도 좋습니다.
쌍세총비
중국 드라마 광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작품입니다. 평행우주로 타임슬립하게 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2017년 시즌 1 방영될 당시 ‘B급 감성’으로 인기몰이를 했습니다. 저예산의 한계로 영상미는 찾아볼 수 없고, 차원 이동 등 온갖 클리셰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개연성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시원한 전개와 병맛 대사에 집중한 덕분에 코믹물로서의 완성도가 높습니다. 2018년 시즌2를 제작했고, 2020년에는 시즌3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삼국지
중국 국영 방송 CCTV가 2010년에 제작한 장편 드라마 ‘삼국지’는 우리나라 5060 남성들이 사랑하는 중국 드라마입니다. 넷플릭스에서 검색해 보면 95편짜리 삼국지와 8편짜리 극장판 삼국지가 있는데, 전자는 원본이고 후자는 요약본입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삼국지 관련 드라마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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