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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 방중 50년, 미중관계↓중러관계↑- "미국, 중국을 자유주의 체제에 묶을 수 있다고 오판"

이강기 2022. 2. 22. 06:36

닉슨 방중 50, 미중관계중러관계

 

닛케이아시아 "미국, 중국을 자유주의 체제에 묶을 수 있다고 오판"

 

김은광 기자

내일신문, 2022-02-18 11:26:47

 

 

오는 21일은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현직으로선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지 반세기 되는 날이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권력을 잡은 이후 미중관계는 얼어붙었다. 하지만 1972년 닉슨의 방중으로 급속한 관계개선이 이뤄졌다. 그리고 동서냉전의 지정학도 변했다.

 

닉슨은 방중 당시 만리장성과 명나라 황릉 등을 둘러봤다. 마오쩌둥 주석, 저우언라이 총리와 만났고, 방문 막바지 상하이에서 미중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2002년 닉슨 방중 30주년을 맞아 당시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베이징에 갔다. 10년 전인 2012, 시진핑은 중국 최고지도자 등극을 앞두고 있었다.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베이징 주재 미국 외교관들을 불러모았다. 태평양 건너편 미국에서도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닉슨 방중에 앞서 관계개선 디딤돌을 놓은 헨리 키신저는 물론 전 국가안보 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등이 대거 참석했다.

 

하지만 반세기를 맞은 올해 당시의 환호는 온데간데 없다. 닛케이아시아는 17"올해 전세계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미중 정상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정상이었다. 시진핑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앞서 정상회담을 열었다"고 전했다.

 

1970년대 초 닉슨과 키신저는 중소 양대 공산국가가 서로 으르렁거리도록 판을 짤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시진핑과 푸틴은 같은 팀으로 묶인 모양새다. 미국과 서방 동맹들을 대상으로 우호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관계개선 반세기 맞았지만

 

지난 반세기를 둘러싸고 워싱턴에서 깊은 고뇌가 있다. 미중 양국의 충돌은 필연적인, 불가피한 문제였는가 하는 점이다. 그렇다는 입장이 점차 지배적인 관점이 되고 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의 복심을 품었다는 것.

 

중국 전문가로 미 예일대 중국센터 국제정치학자인 러시 도시는 지난해 출간한 저서 '장기전'(The Long Game)에서 "과거 중국은 미국의 월등한 힘에 눌려 전술적으로 후퇴했지만 이젠 국가적 역량이 미국과 비슷해졌다는 자신감을 갖고 밀어붙이고 있다"고 썼다.

 

그의 지적은 학계를 넘어 정치권의 공명을 이끌어내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을 지낸 도시는 현재 조 바이든 대통령의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소속돼 중국문제를 자문한다. 그가 쓴 장기전에선 중국의 전략을 1989, 2008, 20163가지 시기로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중국은 천안문사태 등 내부의 문제를 수습하는 데 정신이 없었다. 반면 미국은 소련의 붕괴와 첫번째 걸프전 수행 등으로 전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했다. 미국에 맞설 수 없던 중국은 자국과 아시아, 중동 등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무디게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미국이 약화되고 있음을 알아채면서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고, 이후 코로나19 팬데믹과 2020년 대선 불복 등의 혼란이 있었다. 중국은 미국이 돌이킬 수 없는 쇠락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하며 단호하게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고 있다.

 

2016년 즈음 중국 내에선 '한 세기에 본 적 없는 거대한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됐다. 서구의 힘이 약화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는 19세기 말 서구에 주권을 양도할 수밖에 없던 중국 지도자들이 '3000년 역사에 본 적 없는 거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며 한탄한 것을 변용한 것이다.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이 승리하면서 미중 양국은 기후변화에서 협력할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국방과 첩보 기술 무역,지정학 인도태평양 등을 둘러싸고 양국은 적대적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체제경쟁으로 발전할 조짐도 보인다.

 

전방위 경쟁으로 돌아선 미중

 

미중 양국 모두 반세기 전 관계개선 이후 서로를 속였다는 감정을 갖고 있다. 전직 국방부 관료이자 중국통인 마이클 필즈버리는 "되돌아보면 너무 중국을 믿었다. 그 생각에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재무장관과 골드만삭스 CEO를 지낸 행크 폴슨 역시 대중국 관여정책을 열렬히 지지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트럼프 재임 중반 "미국 기업들은 과거 중국을 옹호하던 입장에서 이젠 회의적인 입장, 심지어 반대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임기 때부터 미국이 그 어떤 충고를 하고 압력을 가해도 중국은 자신의 길을 갈 것이라는 컨센서스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중국은 민주주의로 진화하는 것은 고사하고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책임 있는 이해당사자'로서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깨달음이 워싱턴 정가에 분명해졌다.

 

미국 입장에서 중국은 자국의 정치체제를 방어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탁월한 성과를 내는 체제'로 전세계에 홍보한다. 그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공격하고 있다.

 

닉슨의 중국 도박은 단기 외교적 목표를 달성했다. 소련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개선에 무방비 상태에 놓였다. 중소 분열은 사회주의 세계의 리더가 누구인지를 놓고 양국이 갈등하면서 촉발됐다. 이는 미국이 개입할 여지를 낳았다.

 

미국은 '붉은 중국'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소련에 대항시킨다는 전략을 짰다. 당시 "미국이 소련보다 더 많은 공산주의자들을 자신의 편에 끌어들였다"는 농담까지 회자됐다. 중국과 러시아 관계는 21세기 초가 돼서야 비로소 해빙무드로 돌아섰다.

 

냉전시기 미국과 중국의 반소련 협력은 상당했다. 중국은 미국 CIA가 극서지역인 신장에 소련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한 음향수집 기구 설치를 승인했다. 명분은 소련이 군축조약을 지키는지 확인하는 차원이었다.

 

일각의 설명에 따르면 덩샤오핑은 1979년 방중한 조 바이든 상원의원을 만나 중국 땅에 미국의 첩보수집 시설을 구축하도록 허용하겠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대만 문제, 가장 첨예한 지점

 

닉슨과 키신저의 중국 외교가 남긴 유산 중 가장 이견이 많은 건 대만 문제다. 키신저는 회고록에서 71년 저우언라이 총리와의 관계개선 협상 당시 대만 문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밀에서 해제된 미국 문건들에 따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저우언라이는 키신저에게 "대만에 대한 합의가 없다면 미국과의 관계개선은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소련 고립 카드에 온 신경이 쏠린 키신저에게 대만은 하찮은 존재였다. 역사학자 낸시 번코프 터커에 따르면 키신저는 중국이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안겨줬다. 대만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두개의 중국 정책'을 버리기로 약속했다.

 

터커는 2005년 논문에서 "닉슨과 키신저가 중국에 약속한 것은 미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때문에 그들은 당시 합의를 비밀에 부쳤고, 합의로 인한 부수적 피해를 감추기 위해 중국 열풍에 편승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공주의 동맹국을 포기했다'며 미 의회가 들고 일어났다. 미 의회는 '대만의 방어를 위해 미국은 무기를 지원하고 제공한다'는 내용의 대만관계법을 통과시켰다. 이는 중국 입장에선 미국의 배신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다소 복잡했다.

 

1972년 닉슨의 방중 말미 공표된 상하이 공동성명은 이례적으로 양국이 각자 발표하는 형식을 띠었다. 중국은 대만에 대한 주권을 주장했다. 반면 미국은 대만에 대한 중국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했다. 1979년 미국은 더 나아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유일 정부로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일부 모호한 구석을 남겼다.

 

하나의 중국 개념은 이론상 단순하지만 중국과 대만 미국에서 종종 제각각 해석됐다. 핵심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한 것이 자동적으로 대만을 중국에 넘겨준다는 의미가 되느냐 여부다. 미국과 대만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중국 기준에서 통일에 동의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말 중국 외교부 대변인 자오리젠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미중 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정치적 초석"이라며 "미국은 약속을 깼고 국제관계를 떠받치는 기본 법칙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강력 비판했다.

 

2010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연례 샹그릴라 대화포럼에서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게이츠는 "중국은 왜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에 대해 강력 비판하는가. 중국은 사실 1979년 이래 이를 인지하고 있지 않은가" 반문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인민해방군의 한 퇴역 장성은 "당시 중국은 약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강하다"고 대답했다.

 

관여에서 불관여로

 

미국은 중국이 민주주의 도입까지는 아니더라도 보다 민주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봤다. 특히 소련이 붕괴하고 해체된 1990년대 초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올라서면서 이같은 관점은 힘을 얻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1997년 장쩌민 주석에게 "중국은 인권에 대해 역사의 잘못된 방향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0년에도 "중국이 인터넷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독재정부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민주주의는 다가오고 있다. 휴대폰과 케이블 모뎀을 통해 민주주의가 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은 인터넷이 경제적 혜택을 가져오는 도구는 물론 효율적인 감시체제로도 기능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또 서구 언론은 그동안 중국 공산당의 위기를 수없이 예견하지만, 중국 지도부는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가 인류의 미래'라는 미국의 자신감에서 나온 게 중국 관여정책이었다. 경제적으로 부상하는 중국에게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를 따르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의 부상하는 파워를 국제시스템의 책임 있는 회원으로서 통합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고 말했다.

 

많은 정치인과 평론가들이 '역사의 종언', '탈이념 세계'를 설파했지만, 주류가 된 관여정책에 의문을 던진 소수의 전문가들도 있었다. 이들은 중국에겐 여전히 이념이 중요하다고 봤다.

 

공화당 외교정책 자문을 지낸 로버트 케이건은 1997'위클리 스탠더드' 기고에서 "중국 지도부 입장에서 체제는 생존의 문제"라며 "우리가 옹호하는 시스템, 우리가 중국을 끌어들이려 하는 시스템은 그들에겐 치명적"이라고 썼다. 케이건은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을 평화적으로 서구 체제에 통합시키려 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중국은 이를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제는 케이건 식의 분석이 주류가 됐다. 미국에선 과거의 중국정책을 비판하고 그 오류를 분석하는 게 중국을 담당하는 관료들에겐 일종의 세례의식이 됐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와 국방부에서 아시아 정책을 주도하는 커트 캠벨과 일라이 래트너는 2018년 포린어페어스 공동기고에서 "미국은 중국의 궤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정도로 미국의 파워에 지나친 믿음을 가졌다""중국이 무역과 금융을 개방할 것이라고 믿은 기업인과 금융인들, 중국이 국제공동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길들여질 것이라고 믿은 통합론자들, 중국의 파워는 미국의 우월성을 영원히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고 믿은 매파들 모두 오류를 범했다"고썼다.

 

어찌 보면 바이든 행정부 이전 그같은 결론을 내린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였을 수 있다. 그는 2017년 초 취임할 때부터 중국에 대한 워싱턴의 정치적, 정책적 컨센서스를 날려버렸다.

 

닛케이는 "늘어나는 부채, 감소하는 인구, 미국 주도 기술 통제 등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십중팔구 2030년대 세계 최대 경제국이 될 전망"이라며 "중국의 야심을 시진핑 한 명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키신저와 닉슨이 1970년대 초 방중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점은 시진핑은 야심을 밀어붙일 화력을 가졌다는 것이고, 전임자들은 갖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도전과제는 중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은 오히려 예측가능한 강대국이다. 미국은 2020년 대선 이후에도 여전히 트럼프 그늘에 살고 있다. 오히려 미국이 전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더 불투명해졌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