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103세 철학자’ 김형석이 말하는 국민 행복의 길
“새 대통령, 우리 사회 분열을 통합으로 만들어달라”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文 정부, 갈등을 분열로 만들었고 갈등이 결국 병 돼 윤석열 당선, 대한민국 지킨 공로 국민이 인정한 것 인생의 황금기는 60~75세, 90세까지는 늙지 않아 요즘 너무 고생 안 하려… 고생 모르면 행복도 몰라
지난해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의 지위를 아시아·아프리카 개발도상국 집단인 A그룹에서 선진국 집단인 B그룹으로 변경했다. A그룹 국가가 B그룹 국가로 바뀐 건 1964년 기구 창설 이후 첫 번째였다.
지난해 기준 한국은 국제통화기금의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세계 10위에 올랐다. 1인당 GDP로는 2020년 주요 7개국(G7) 국가인 이탈리아를 앞질렀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3만 달러를 돌파하며 세계 7번째로 30-50클럽(1인당 GNI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에 가입했다.
수치상으로는 이렇듯 대한민국은 어엿한 선진국이 됐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얘기가 많다. 세계보건기구(WTO)가 밝힌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25.7명으로 세계 4위,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세계 유일의 0명대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유엔이 공개한 세계 행복지수(2018~2020)에서 우리나라는 10점 만점에 5.8점으로 62위에 머물러 있다. OECD 국가 가운데 뒤에서 세 번째다.
‘선진국인 대한민국에 사는 한국인은 과연 행복한가’라는 물음을 갖고 ‘103세 철학자’를 찾았다. 1920년생으로 올해 우리 나이 103세인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올해 초 펴낸 [김형석의 인생 문답]이란 책에 인생과 행복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김 교수와의 월간중앙 창간 54년 특별 인터뷰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인 3월 9일, 그의 자택 근처에 있는 서울 서대문구 원천교회에서 진행됐다. 다음 날인 10일에는 이번 대선의 의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김 교수는 “행복은 목적 개념이라기보다 인간답게 살았을 때, 내게 주어진 책임을 다했을 때 주어지는 느낌, 그때 갖게 되는 정신적 보람”이라며 “행복은 인간답게 사는 노력, 그 과정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무리하지 않는 사람이 오래 사는 듯”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시는데 건강 비결이 궁금합니다.
“아침 6시쯤 일어나서 몸을 풀어줍니다. 식사는 늘 똑같아요. 우유 반 잔에 호박죽 반 잔, 달걀 반숙에 샐러드, 그리고 토스트나 찐 감자를 먹어요. 점심이나 저녁은 생선이나 고기 위주고요. 차로 이동할 때는 무조건 잡니다. 어렸을 때 건강이 안 좋아서 어머니는 내가 스무 살까지 사는 것만 봐도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어려서부터 과로나 무리는 안 해요. 100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90에서 멈춥니다. 신체적으로 건강해서 오래 사는 게 아니라 무리하지 않는 사람이 오래 사는 것 같아요.”
무리하지 않으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요?
“늘 공부해야 합니다. 일과 공부를 안 하면 몸도 마음도 빨리 늙어요. 주변에 100세까지 산 사람 7명이 있는데 공통점이 있더군요. 첫째, 욕심이 없어요. 둘째, 남 욕을 하지 않아요. 사람은 정서적으로도 늙습니다. 내 친구인 안병욱(1920~2013) 교수는 ‘젊게 사는 방법은 공부·여행·연애’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인생의 황금기는 언제일까요?
“그래도 60세가 돼야 내 인생을 내가 사는 때가 오니까, 인생의 황금기는 60세부터로 봐야 할 것 같아요. 60세는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 나이, 다른 사람을 따라가거나 믿고 사는 게 아니고,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 나이지요. 적어도 사회적으로 봤을 때 어른이 될 자격을 갖추고 존경받을 만한 인격을 갖추려면 그래도 60세는 돼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60세부터 시작해서 언제까지가 가장 행복하고 좋았는가? 황금기였다고 볼 수 있는가? 쭉 반성하고 종합해보니 60세부터 75세까지가 가장 좋았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75세까지 모든 것은 성숙해지고, 내가 나를 믿고 살 수도 있고, 또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나이가 되니까 60세부터 75세가 인생의 황금기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75세까지 성장했으면 그다음에 이걸 어떻게 유지해가느냐 하는 게 문제예요. 거기서 다시 내려오고 말면 인생의 끝이 올 테니까요. 다시 말해 30세까지는 교육을 받는 기간, 30세부터 65세까지는 직장에서 일하는 기간이지요. 그렇다면 65세부터 90세까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회인으로 다시 태어나서 사회 속에서 어떤 의미와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야 해요. 살아보니까 90세까지는 늙는 게 아니에요. 90세까지는 누구나 일할 수 있어요. 예전에 우리 철학과 정석해(1899~1996) 교수님과 어딜 가는데 그분이 차 안에서 나더러 ‘김 교수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됐더라?’ 하고 물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76세입니다’라고 답했더니, ‘좋은 나이올시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이다음에 내가 90세가
넘으면 후회하지 않도록 인생을 3단계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신적 가치 모르고 이기적인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어”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행복은 인간답게 사는 노력, 그 과정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다 맡아서, 내 인격을 갖추게 되면 행복은 자연히 따라오니까 누구든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사랑이 있는 곳에 행복이 함께한다는 사실은 경험을 통해 깨달았어요. 또 하나, 감사하는 마음이 낳는 행복도 있지요.”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도 있을까요?
“크게 두 부류예요. 첫째,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에요. 물질적 가치가 행복을 가져다주진 않거든요. 복권에 당첨됐다고 행복해지지는 않아요. 공짜로 주어진 복이 더 많은 것을 빼앗아 가기도 하니까요. 돈이나 권력, 명예에서는 행복을 찾기 어려운 이유죠. 돈과 권력, 명예는 가질수록 목이 더 말라요. 행복해지려면 필요한 조건이 있어요. 바로 만족입니다. 정신적 가치가 있는 사람은 만족을 알아요. 그런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요. 둘째, 이기주의자입니다. 그들은 행복해질 수 없어요. 이기주의자는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없으며, 객관적 가치를 수용하지 못해요. 그러나 개인주의자는 합리적 판단과 객관적 가치를 수용하죠. 이기주의자는 전체를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폐쇄적이지만, 개인주의자는 전체와의 관계와 질서를 위하기 때문에 사회에 도움을 줍니다. 인격의 크기가 자기 그릇의 크기예요. 이기주의자는 그릇이 작기에 담을 수 있는 행복도 작을 수밖에 없어요.
성공과 행복 중 한 가지를 선택하셔야 한다면?
“사회적으로 윗자리에 가느냐 못 가느냐를 성공의 기준이라 생각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에요. 한 가지 더, 너무 빨리 성공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능력이 완성되지 못했는데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결국 떨어지고 말아요. 그러면 만회하기 힘들어요. 천천히 능력을 갖춰가면서 올라가면 오래갈 수 있습니다. 성장하는 기쁨도 누리고요.”
삶에서 고통을 피할 수 없습니다. 고통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100년을 살아보니 고생이 있는 행복이 제일 큰 행복이고, 고생의 짐을 질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랑이 있는 고생이 인생’이라고 믿어요. 요즘 너무들 고생을 안 하려 하는데 고생을 모르는 사람은 행복도 몰라요. 불교에서 인생은 고해(苦海)와 같다고 하잖아요? 옳은 말이에요. 그런데 사랑이 있는 고생은 고해가 아니에요. 언젠가 한 대학에서 나한테 무슨 상을 주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내가 ‘오래 사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라는 의미의 상이라면 받겠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나만큼 어려운 역사를 산 사람이 드물거든요. 또 나만큼 가난하게 산 사람도 별로 보지 못했고요.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 고생이 없었으면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받아보지 못했을 거예요. 그렇게 보면 그 시련이 고생이 아니고 나한테 주어진 하나의 복이었던 거죠. 고생했지만 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했습니다.”
기계문명이 발달한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21세기의 가장 큰 비극이 뭔고 하니, 기계의 비중이 엄청나게 커졌다는 거예요. 기계는 계속 발달하는데 사람은 100년도 못 사니까, 사람이 기계를 만들어놓고 기계의 종이 돼버렸어요. 중국에서 AI(인공지능)를 만들고 자랑스러우니까 시진핑(習近平)이 AI한테 물어봤대요. ‘중국이 얼마나 좋으냐?’, 그랬더니 AI가 ‘중국은 미래가 없으니까 빨리 미국으로 이민 가라’고 했대요. 기계문명이 발달할수록 자연과학과 균등할 수 있는 사회과학, 기계공학을 지배할 수 있는 윤리관이 필요해요. 한글이 생겼다는 건 우리 민족이 문화인이 될 자격을 얻었다는 거예요. 소리 나는 대로 모두 표기할 수 있으니 한글만큼 좋은 게 없어요. 그런데 걱정은 한글문화가 100년 후, 200년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냐는 거예요. 한글문화권을 만들려면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이 발달해야 해요. 인문학 중에서도 소설이나 시를 살려야 해요. 그런데 요즘 취직이 잘 안 되니까 인문학 전공하는 학생이 줄어들어요. 그래서 한글문화의 운명이 걱정됩니다.”
“뚜렷한 목적과 문제의식 가진 사람이 성공도”
나답게 산다는 건 어떤 걸까요?
“윤동주(1917~1945) 시인 있잖아요?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어요. 그때 그 친구에게 받은 확고한 느낌은 ‘나는 시인으로 출발해서 시인으로 내 인생을 끝낸다’였어요. 또 나보다 몇 년 선배인 황순원(1915~2000) 작가는 그때부터 ‘나는 소설과 더불어 내 인생을 살고 문학과 함께 내 인생을 이끌어간다’는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있었어요. 사람은 자기 인생의 길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가지고 행복을 누리면서 살면 됩니다. 내 인생의 잣대로 남을 평가하거나 같아지기를 바라는 건 잘못이에요. 내가 하는 일에서 성공과 행복을 누리면 됩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윤동주 시인은 공부를 아주 잘하지는 못했어요(웃음). 그래도 문제의식이 있으니까 자기를 키워갈 수 있었던 거예요. 똑똑하다는 건 문제의식이 있는 겁니다. ‘왜’라고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에요. 청소년기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뚜렷한 목적과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결국 성공도 빠르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돈 때문에 고통이나 고민이 큽니다. 돈은 얼마나 갖는 게 좋을까요?
“스님이나 신부님 가운데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분이 많아요. 이런 분들은 인생의 먼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에 비유할 수 있어요. 먼 길을 가는 사람은 많은 것을 갖고 떠날 수가 없어요. 부담스러운 짐이 되거든요. 짐이 없을수록 편해요. ‘욕심은 죄를 잉태하며 죄는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교훈은 진실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사는 게 좋을까요? 자신의 인격 수준만큼 재산을 갖는 게 좋아요. 인격이 70이라면 70만큼의 재물을 가지면 돼요. 부모로부터 아무런 준비 없이 90의 재산을 물려받으면 그 분에 넘치는 20이라는 재산 때문에 인격의 손실을 받게 되며, 지지 않아야 할 짐을 지고 사는 것과 같은 고통과 불행을 겪게 됩니다.”
“확고한 목적 있는 사람은 죽음 두렵지 않다”
교수님의 자녀 교육법이 궁금합니다.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아들 둘과 딸 넷을 키웠어요. ‘평범하게 자라서 주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해라. 가능하다면 주어진 분야에서 지도자가 돼라’고 강조했지요. 내 자녀들은 중·고등학교 때는 성적이 높지 않았는데 대학에 가서 좋아졌어요. 자신들이 원하는 학과목에서 사고력을 키웠기 때문이죠. 부모는 아이의 자유를 사랑해야 해요. 공산주의에서는 사랑이 없어요. 자유를 구속하기 때문이죠. 자유는 곧 선택이지요. ‘이거 해, 저거 해’가 아니라 ‘이런 게 있고 저런 것도 있단다. 넌 어떤 걸 할래?’ 이렇게 선택의 자유를 줘야 해요. 그러면 아이가 삶을 헤쳐갈 힘이 생겨요.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으면 자아가 없어져요.”
사람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요?
“인생에 확고한 목적이 있어서 산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이제 내 일은 다 했고, 인생의 마라톤이 끝났으니까 내 생애를 과거로 내놓는 거지요. 그런 뜻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완성한 사람이지요. 나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게 될 텐데 사는 데까지 열심히 살다가 때가 되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해요. 가능하면 고통이 덜하면 좋겠어요. 죽음이란 마라톤 경기에서 결승선에 골인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마라톤을 시작했으니 결승선을 통과해야죠. 여기까지 최선을 다했다면 그다음이 무엇일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게 되는 게 아닐까요?”
2월 26일 89세를 일기로 타계한 이어령 선생은 지난해 10월 출간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엄마는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라며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이다. 어머니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이라고 했다. 그는 또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라고도 했다.
인생에서 결국 남는 건 무엇일까요?
“100년을 살아보니 내가 나를 위해서 한 일은 남는 게 없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는 사람,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애쓴 사람,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 정의롭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에도 남는 게 있어요. 내 즐거움, 행복이라는 건 내가 만들어서 차지하는 게 아니라 남이 만들어서 주는 거예요. 내 인생은 나를 위해 있는 게 아니고 보답하기 위해서, 주기 위해서 있는 것 같아요. 나도 그렇게 살아보려고 친구들과 노력했어요. 여러분도 이웃들과 더불어 그런 뜻을 가지고 새 출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곧 새 정부가 출범합니다. 바라는 게 있으신지?
“일본·중국과 1년에 100명씩 교환 대학생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한국에서 일본과 중국에 국비로 100명씩 보내주고, 일본과 중국에서 100명씩을 받는 거죠. 그리고 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에서는 우리가 100명씩 받아주는 겁니다. 그렇게 교환 대학생 제도가 성공하면 대통령 10명이 하는 것보다 더 큰 열매를 맺을 수 있어요. 그게 바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지요. 지금처럼 일본은 나쁜 나라라고 치부해버리면 일본에 가서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을 주저하게 하는 건데, 그건 잘못입니다.”
“권력으로 갈등 해결하면 패자 생길 수밖에”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일본의 움직임을 잘 보세요. 러시아·중국은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낙후된 나라이고, 미국·유럽은 수준 있는 나라들이에요. 낙후된 나라들이 미국이나 유럽 수준으로 올라가려면 30~50년쯤 걸릴 겁니다. 그때까지는 지금의 일본처럼 우리도 미국이나 유럽과 우호 관계를 잘 유지하라는 거지요. 나중에 러시아나 중국이 민주국가가 되면 그때는 자연스럽게 그들과의 우호 관계도 깊어질 거예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사회 갈등이 심화됐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우리는 무한경쟁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요, 이기적인 경쟁만 하면 사회가 무너지고, 선의의 경쟁을 하면 사회는 올라갑니다. 국가도 민족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국가나 사회가 올라가는 단계에 필요한 게 갈등입니다. 갈등이 전혀 없는 민족은 살아남지 못해요. 아무 갈등 없이 열매나 따 먹고 살았던 하와이나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은 소멸했어요.”
어떤 분야의 갈등이 가장 심하다고 보시는지요?
“정치 이념의 갈등이죠. 미국·유럽·캐나다는 좌우 분열이 진보와 보수로 바뀌면서 공존하게 됐어요.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면서 ‘북한 같은 나라가 돼도 좋으니 통일만 하면 된다’는 식인데 그건 아니에요. 그것은 역사를 100년 끌어내리는 일로, 자유와 평화를 포기하겠다는 건데…. 지금 푸틴(우크라이나 침공)보다 더 나쁜 겁니다. 문재인 정부는 갈등을 분열로 만들었고, 갈등은 결국 병이 됐어요.”
갈등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갈등이 분열이 되면 갈등은 그 생명력을 잃게 돼요. 해결책은 좌우로 분열하지 말고 진보·보수로 공존하는 겁니다. 앞으로는 그렇게 열린 사회로 가야 해요. 그리고 하나 더, 권력으로 갈등을 해결하려 하면 승자와 패자나 생긴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대화로 해결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미안한 얘기지만 실패했고, 실패할 수밖에 없었지요. 왜 그럴까요?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이상이 좌파나 진보보다 앞서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다 보니 그 안에 빠진 거예요. 그래서 청와대가 운동권으로 구성됐던 거고…. 새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분열 정치를 바꾸려면 정치의 방향부터 바꿔야 해요. 정치의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5년 동안 나라가 더 힘들어질 겁니다.”
“文, 취임 때 통합 얘기해 놓고 분열 만들어”
국민이 왜 윤석열을 선택했다고 보세요?
“첫째, 검찰총장일 때 대한민국을 지켜줬습니다. 헌법을 지킨 거죠. 그 공로를 국민이 인정한 것이라고 봅니다. 둘째, 그릇이 크고 사심이 없어요. 그 점 또한 국민이 인정했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3월 19일 김 교수는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만나 조언과 덕담을 건넸다. 윤 전 총장이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2주간의 칩거를 깨고 맨 처음 만난 사람이 김 교수였다. 당시 김 교수는 “국민만을 위해 뭔가를 남기겠다는 사람은 누구나 정치를 해도 괜찮다”며 “적극적으로 정치하라고 권하지도 않겠지만,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아니다”고 격려했다.
대통령 당선인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정부는 국민과 더불어 계속됩니다. 대통령은 그 가운데 5년을 맡는 거예요. 대통령은 나에게 주어진 5년 동안 할 일이 뭔지, 그걸 고민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분열을 통합으로 만드는 거지요. 인간적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을 깨끗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취임사 때는 국민 통합을 얘기해놓고 지금까지 분열만 만든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지난번 3·1절 기념사 때도 김대중 정부가 첫 번째 민주정부라고 하던데…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나요?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체제부터 전두환 정권까지는 민주주의의 암흑기였고, 노태우 정부를 거쳐 김영삼 정부 때부터 법치국가가 됐지요. 법치국가가 곧 민주국가니까요. 마치 김대중 대통령이 다한 것처럼 말하는 건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는 겁니다. 새 대통령은 분열을 통합으로 만들어주면 좋겠습니다.”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지난해 기준 한국은 국제통화기금의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세계 10위에 올랐다. 1인당 GDP로는 2020년 주요 7개국(G7) 국가인 이탈리아를 앞질렀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3만 달러를 돌파하며 세계 7번째로 30-50클럽(1인당 GNI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에 가입했다.
수치상으로는 이렇듯 대한민국은 어엿한 선진국이 됐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얘기가 많다. 세계보건기구(WTO)가 밝힌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25.7명으로 세계 4위,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세계 유일의 0명대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유엔이 공개한 세계 행복지수(2018~2020)에서 우리나라는 10점 만점에 5.8점으로 62위에 머물러 있다. OECD 국가 가운데 뒤에서 세 번째다.
‘선진국인 대한민국에 사는 한국인은 과연 행복한가’라는 물음을 갖고 ‘103세 철학자’를 찾았다. 1920년생으로 올해 우리 나이 103세인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올해 초 펴낸 [김형석의 인생 문답]이란 책에 인생과 행복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김 교수와의 월간중앙 창간 54년 특별 인터뷰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인 3월 9일, 그의 자택 근처에 있는 서울 서대문구 원천교회에서 진행됐다. 다음 날인 10일에는 이번 대선의 의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김 교수는 “행복은 목적 개념이라기보다 인간답게 살았을 때, 내게 주어진 책임을 다했을 때 주어지는 느낌, 그때 갖게 되는 정신적 보람”이라며 “행복은 인간답게 사는 노력, 그 과정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무리하지 않는 사람이 오래 사는 듯”
“아침 6시쯤 일어나서 몸을 풀어줍니다. 식사는 늘 똑같아요. 우유 반 잔에 호박죽 반 잔, 달걀 반숙에 샐러드, 그리고 토스트나 찐 감자를 먹어요. 점심이나 저녁은 생선이나 고기 위주고요. 차로 이동할 때는 무조건 잡니다. 어렸을 때 건강이 안 좋아서 어머니는 내가 스무 살까지 사는 것만 봐도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어려서부터 과로나 무리는 안 해요. 100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90에서 멈춥니다. 신체적으로 건강해서 오래 사는 게 아니라 무리하지 않는 사람이 오래 사는 것 같아요.”
무리하지 않으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요?
“늘 공부해야 합니다. 일과 공부를 안 하면 몸도 마음도 빨리 늙어요. 주변에 100세까지 산 사람 7명이 있는데 공통점이 있더군요. 첫째, 욕심이 없어요. 둘째, 남 욕을 하지 않아요. 사람은 정서적으로도 늙습니다. 내 친구인 안병욱(1920~2013) 교수는 ‘젊게 사는 방법은 공부·여행·연애’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인생의 황금기는 언제일까요?
“그래도 60세가 돼야 내 인생을 내가 사는 때가 오니까, 인생의 황금기는 60세부터로 봐야 할 것 같아요. 60세는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 나이, 다른 사람을 따라가거나 믿고 사는 게 아니고,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 나이지요. 적어도 사회적으로 봤을 때 어른이 될 자격을 갖추고 존경받을 만한 인격을 갖추려면 그래도 60세는 돼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60세부터 시작해서 언제까지가 가장 행복하고 좋았는가? 황금기였다고 볼 수 있는가? 쭉 반성하고 종합해보니 60세부터 75세까지가 가장 좋았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75세까지 모든 것은 성숙해지고, 내가 나를 믿고 살 수도 있고, 또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나이가 되니까 60세부터 75세가 인생의 황금기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75세까지 성장했으면 그다음에 이걸 어떻게 유지해가느냐 하는 게 문제예요. 거기서 다시 내려오고 말면 인생의 끝이 올 테니까요. 다시 말해 30세까지는 교육을 받는 기간, 30세부터 65세까지는 직장에서 일하는 기간이지요. 그렇다면 65세부터 90세까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회인으로 다시 태어나서 사회 속에서 어떤 의미와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야 해요. 살아보니까 90세까지는 늙는 게 아니에요. 90세까지는 누구나 일할 수 있어요. 예전에 우리 철학과 정석해(1899~1996) 교수님과 어딜 가는데 그분이 차 안에서 나더러 ‘김 교수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됐더라?’ 하고 물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76세입니다’라고 답했더니, ‘좋은 나이올시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이다음에 내가 90세가
넘으면 후회하지 않도록 인생을 3단계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신적 가치 모르고 이기적인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어”
“행복은 인간답게 사는 노력, 그 과정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다 맡아서, 내 인격을 갖추게 되면 행복은 자연히 따라오니까 누구든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사랑이 있는 곳에 행복이 함께한다는 사실은 경험을 통해 깨달았어요. 또 하나, 감사하는 마음이 낳는 행복도 있지요.”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도 있을까요?
“크게 두 부류예요. 첫째,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에요. 물질적 가치가 행복을 가져다주진 않거든요. 복권에 당첨됐다고 행복해지지는 않아요. 공짜로 주어진 복이 더 많은 것을 빼앗아 가기도 하니까요. 돈이나 권력, 명예에서는 행복을 찾기 어려운 이유죠. 돈과 권력, 명예는 가질수록 목이 더 말라요. 행복해지려면 필요한 조건이 있어요. 바로 만족입니다. 정신적 가치가 있는 사람은 만족을 알아요. 그런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요. 둘째, 이기주의자입니다. 그들은 행복해질 수 없어요. 이기주의자는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없으며, 객관적 가치를 수용하지 못해요. 그러나 개인주의자는 합리적 판단과 객관적 가치를 수용하죠. 이기주의자는 전체를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폐쇄적이지만, 개인주의자는 전체와의 관계와 질서를 위하기 때문에 사회에 도움을 줍니다. 인격의 크기가 자기 그릇의 크기예요. 이기주의자는 그릇이 작기에 담을 수 있는 행복도 작을 수밖에 없어요.
성공과 행복 중 한 가지를 선택하셔야 한다면?
“사회적으로 윗자리에 가느냐 못 가느냐를 성공의 기준이라 생각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에요. 한 가지 더, 너무 빨리 성공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능력이 완성되지 못했는데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결국 떨어지고 말아요. 그러면 만회하기 힘들어요. 천천히 능력을 갖춰가면서 올라가면 오래갈 수 있습니다. 성장하는 기쁨도 누리고요.”
삶에서 고통을 피할 수 없습니다. 고통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100년을 살아보니 고생이 있는 행복이 제일 큰 행복이고, 고생의 짐을 질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랑이 있는 고생이 인생’이라고 믿어요. 요즘 너무들 고생을 안 하려 하는데 고생을 모르는 사람은 행복도 몰라요. 불교에서 인생은 고해(苦海)와 같다고 하잖아요? 옳은 말이에요. 그런데 사랑이 있는 고생은 고해가 아니에요. 언젠가 한 대학에서 나한테 무슨 상을 주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내가 ‘오래 사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라는 의미의 상이라면 받겠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나만큼 어려운 역사를 산 사람이 드물거든요. 또 나만큼 가난하게 산 사람도 별로 보지 못했고요.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 고생이 없었으면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받아보지 못했을 거예요. 그렇게 보면 그 시련이 고생이 아니고 나한테 주어진 하나의 복이었던 거죠. 고생했지만 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했습니다.”
기계문명이 발달한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21세기의 가장 큰 비극이 뭔고 하니, 기계의 비중이 엄청나게 커졌다는 거예요. 기계는 계속 발달하는데 사람은 100년도 못 사니까, 사람이 기계를 만들어놓고 기계의 종이 돼버렸어요. 중국에서 AI(인공지능)를 만들고 자랑스러우니까 시진핑(習近平)이 AI한테 물어봤대요. ‘중국이 얼마나 좋으냐?’, 그랬더니 AI가 ‘중국은 미래가 없으니까 빨리 미국으로 이민 가라’고 했대요. 기계문명이 발달할수록 자연과학과 균등할 수 있는 사회과학, 기계공학을 지배할 수 있는 윤리관이 필요해요. 한글이 생겼다는 건 우리 민족이 문화인이 될 자격을 얻었다는 거예요. 소리 나는 대로 모두 표기할 수 있으니 한글만큼 좋은 게 없어요. 그런데 걱정은 한글문화가 100년 후, 200년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냐는 거예요. 한글문화권을 만들려면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이 발달해야 해요. 인문학 중에서도 소설이나 시를 살려야 해요. 그런데 요즘 취직이 잘 안 되니까 인문학 전공하는 학생이 줄어들어요. 그래서 한글문화의 운명이 걱정됩니다.”
“뚜렷한 목적과 문제의식 가진 사람이 성공도”
“윤동주(1917~1945) 시인 있잖아요?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어요. 그때 그 친구에게 받은 확고한 느낌은 ‘나는 시인으로 출발해서 시인으로 내 인생을 끝낸다’였어요. 또 나보다 몇 년 선배인 황순원(1915~2000) 작가는 그때부터 ‘나는 소설과 더불어 내 인생을 살고 문학과 함께 내 인생을 이끌어간다’는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있었어요. 사람은 자기 인생의 길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가지고 행복을 누리면서 살면 됩니다. 내 인생의 잣대로 남을 평가하거나 같아지기를 바라는 건 잘못이에요. 내가 하는 일에서 성공과 행복을 누리면 됩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윤동주 시인은 공부를 아주 잘하지는 못했어요(웃음). 그래도 문제의식이 있으니까 자기를 키워갈 수 있었던 거예요. 똑똑하다는 건 문제의식이 있는 겁니다. ‘왜’라고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에요. 청소년기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뚜렷한 목적과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결국 성공도 빠르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돈 때문에 고통이나 고민이 큽니다. 돈은 얼마나 갖는 게 좋을까요?
“스님이나 신부님 가운데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분이 많아요. 이런 분들은 인생의 먼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에 비유할 수 있어요. 먼 길을 가는 사람은 많은 것을 갖고 떠날 수가 없어요. 부담스러운 짐이 되거든요. 짐이 없을수록 편해요. ‘욕심은 죄를 잉태하며 죄는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교훈은 진실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사는 게 좋을까요? 자신의 인격 수준만큼 재산을 갖는 게 좋아요. 인격이 70이라면 70만큼의 재물을 가지면 돼요. 부모로부터 아무런 준비 없이 90의 재산을 물려받으면 그 분에 넘치는 20이라는 재산 때문에 인격의 손실을 받게 되며, 지지 않아야 할 짐을 지고 사는 것과 같은 고통과 불행을 겪게 됩니다.”
“확고한 목적 있는 사람은 죽음 두렵지 않다”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아들 둘과 딸 넷을 키웠어요. ‘평범하게 자라서 주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해라. 가능하다면 주어진 분야에서 지도자가 돼라’고 강조했지요. 내 자녀들은 중·고등학교 때는 성적이 높지 않았는데 대학에 가서 좋아졌어요. 자신들이 원하는 학과목에서 사고력을 키웠기 때문이죠. 부모는 아이의 자유를 사랑해야 해요. 공산주의에서는 사랑이 없어요. 자유를 구속하기 때문이죠. 자유는 곧 선택이지요. ‘이거 해, 저거 해’가 아니라 ‘이런 게 있고 저런 것도 있단다. 넌 어떤 걸 할래?’ 이렇게 선택의 자유를 줘야 해요. 그러면 아이가 삶을 헤쳐갈 힘이 생겨요.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으면 자아가 없어져요.”
사람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요?
“인생에 확고한 목적이 있어서 산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이제 내 일은 다 했고, 인생의 마라톤이 끝났으니까 내 생애를 과거로 내놓는 거지요. 그런 뜻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완성한 사람이지요. 나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게 될 텐데 사는 데까지 열심히 살다가 때가 되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해요. 가능하면 고통이 덜하면 좋겠어요. 죽음이란 마라톤 경기에서 결승선에 골인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마라톤을 시작했으니 결승선을 통과해야죠. 여기까지 최선을 다했다면 그다음이 무엇일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게 되는 게 아닐까요?”
2월 26일 89세를 일기로 타계한 이어령 선생은 지난해 10월 출간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엄마는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라며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이다. 어머니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이라고 했다. 그는 또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라고도 했다.
인생에서 결국 남는 건 무엇일까요?
“100년을 살아보니 내가 나를 위해서 한 일은 남는 게 없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는 사람,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애쓴 사람,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 정의롭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에도 남는 게 있어요. 내 즐거움, 행복이라는 건 내가 만들어서 차지하는 게 아니라 남이 만들어서 주는 거예요. 내 인생은 나를 위해 있는 게 아니고 보답하기 위해서, 주기 위해서 있는 것 같아요. 나도 그렇게 살아보려고 친구들과 노력했어요. 여러분도 이웃들과 더불어 그런 뜻을 가지고 새 출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곧 새 정부가 출범합니다. 바라는 게 있으신지?
“일본·중국과 1년에 100명씩 교환 대학생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한국에서 일본과 중국에 국비로 100명씩 보내주고, 일본과 중국에서 100명씩을 받는 거죠. 그리고 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에서는 우리가 100명씩 받아주는 겁니다. 그렇게 교환 대학생 제도가 성공하면 대통령 10명이 하는 것보다 더 큰 열매를 맺을 수 있어요. 그게 바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지요. 지금처럼 일본은 나쁜 나라라고 치부해버리면 일본에 가서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을 주저하게 하는 건데, 그건 잘못입니다.”
“권력으로 갈등 해결하면 패자 생길 수밖에”
“일본의 움직임을 잘 보세요. 러시아·중국은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낙후된 나라이고, 미국·유럽은 수준 있는 나라들이에요. 낙후된 나라들이 미국이나 유럽 수준으로 올라가려면 30~50년쯤 걸릴 겁니다. 그때까지는 지금의 일본처럼 우리도 미국이나 유럽과 우호 관계를 잘 유지하라는 거지요. 나중에 러시아나 중국이 민주국가가 되면 그때는 자연스럽게 그들과의 우호 관계도 깊어질 거예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사회 갈등이 심화됐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우리는 무한경쟁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요, 이기적인 경쟁만 하면 사회가 무너지고, 선의의 경쟁을 하면 사회는 올라갑니다. 국가도 민족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국가나 사회가 올라가는 단계에 필요한 게 갈등입니다. 갈등이 전혀 없는 민족은 살아남지 못해요. 아무 갈등 없이 열매나 따 먹고 살았던 하와이나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은 소멸했어요.”
어떤 분야의 갈등이 가장 심하다고 보시는지요?
“정치 이념의 갈등이죠. 미국·유럽·캐나다는 좌우 분열이 진보와 보수로 바뀌면서 공존하게 됐어요.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면서 ‘북한 같은 나라가 돼도 좋으니 통일만 하면 된다’는 식인데 그건 아니에요. 그것은 역사를 100년 끌어내리는 일로, 자유와 평화를 포기하겠다는 건데…. 지금 푸틴(우크라이나 침공)보다 더 나쁜 겁니다. 문재인 정부는 갈등을 분열로 만들었고, 갈등은 결국 병이 됐어요.”
갈등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갈등이 분열이 되면 갈등은 그 생명력을 잃게 돼요. 해결책은 좌우로 분열하지 말고 진보·보수로 공존하는 겁니다. 앞으로는 그렇게 열린 사회로 가야 해요. 그리고 하나 더, 권력으로 갈등을 해결하려 하면 승자와 패자나 생긴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대화로 해결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미안한 얘기지만 실패했고, 실패할 수밖에 없었지요. 왜 그럴까요?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이상이 좌파나 진보보다 앞서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다 보니 그 안에 빠진 거예요. 그래서 청와대가 운동권으로 구성됐던 거고…. 새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분열 정치를 바꾸려면 정치의 방향부터 바꿔야 해요. 정치의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5년 동안 나라가 더 힘들어질 겁니다.”
“文, 취임 때 통합 얘기해 놓고 분열 만들어”
국민이 왜 윤석열을 선택했다고 보세요?
“첫째, 검찰총장일 때 대한민국을 지켜줬습니다. 헌법을 지킨 거죠. 그 공로를 국민이 인정한 것이라고 봅니다. 둘째, 그릇이 크고 사심이 없어요. 그 점 또한 국민이 인정했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3월 19일 김 교수는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만나 조언과 덕담을 건넸다. 윤 전 총장이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2주간의 칩거를 깨고 맨 처음 만난 사람이 김 교수였다. 당시 김 교수는 “국민만을 위해 뭔가를 남기겠다는 사람은 누구나 정치를 해도 괜찮다”며 “적극적으로 정치하라고 권하지도 않겠지만,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아니다”고 격려했다.
대통령 당선인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정부는 국민과 더불어 계속됩니다. 대통령은 그 가운데 5년을 맡는 거예요. 대통령은 나에게 주어진 5년 동안 할 일이 뭔지, 그걸 고민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분열을 통합으로 만드는 거지요. 인간적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을 깨끗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취임사 때는 국민 통합을 얘기해놓고 지금까지 분열만 만든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지난번 3·1절 기념사 때도 김대중 정부가 첫 번째 민주정부라고 하던데…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나요?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체제부터 전두환 정권까지는 민주주의의 암흑기였고, 노태우 정부를 거쳐 김영삼 정부 때부터 법치국가가 됐지요. 법치국가가 곧 민주국가니까요. 마치 김대중 대통령이 다한 것처럼 말하는 건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는 겁니다. 새 대통령은 분열을 통합으로 만들어주면 좋겠습니다.”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Me, myself and I (0) | 2022.04.26 |
---|---|
Why the Past 10 Years of American Life Have Been Uniquely Stupid (0) | 2022.04.15 |
Scepticism as a way of life (0) | 2022.04.01 |
‘세계 최고 미남 배우’ 알랭 들롱 안락사 결정 (0) | 2022.03.20 |
The fit and famous (0) | 2022.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