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

“한국사 시안대로면… 4·3과 여순사건을 통일운동으로 미화할수도”

이강기 2022. 9. 1. 08:32

“한국사 시안대로면… 4·3과 여순사건을 통일운동으로 미화할수도”

[文정부 ‘교과서 알박기’] ‘진단학회장’ 지낸 강석화 교수 인터뷰

조선일보, 2022.09.01 03:00
 
 
 
 
강석화 교수는 "새 역사 교과서 시안은 근현대사 비중이 전체 6분의5를 차지할 만큼 지나치게 크고 좌편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의 성취를 제대로 설명할 길이 없다"고 걱정했다. 강 교수는 6.25 당시 납북당한 위당 정인보 선생의 외손자이자 국문학자 강신항 성균관대 명예교수, 정양완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부부의 아들이다. /장련성기자

 

 

강석화(61) 경인교대 교수는 2015년 9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선언을 발표했다. 교육부 위탁을 받아 새 한국사 교과서(2015 개정 교육과정) 집필기준을 개발 중이던 연구진과 함께였다. 조선시대 연구자로 대표적 한국학 연구단체인 진단학회장을 지낸 그는 이듬해 말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광화문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이른바 ‘진보’를 내세운 문 정부의 위선과 무능에 실망했다”고 했다. 특히 ‘조국 사태’ 때에는 “다시 1인 시위에 나서고 싶다”고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그런 그가 30일 교육부가 발표한 새 한국사 교과서 교육과정 시안에 대해 “근현대사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데다 좌편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면서 경고하고 나섰다. “산업화와 고도성장은 지표로만 보여주고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반면 민주화는 성과만 제시하고 문제점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고도 했다.

 

◇근현대사가 전체 교과서의 6분의 5, 좌편향 우려

 

-가장 큰 문제가 뭔가.

 

“고조선부터 조선 후기까지 2000년 이상 역사에는 전체 분량의 6분의 1만 할애하고, 나머지 6분의 5는 150년밖에 안 되는 근현대사에 배당했다. 현재와 가까운 시대를 좀 더 자세히 공부해야 한다는 원칙 자체는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근현대사 서술은 학자들도 의견이 충돌하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대목이 많은데, 교과서 대부분을 근현대사에 할애하면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겠다는 건가”

 

강 교수는 “전근대사 비중을 이렇게 낮춘 건 광복 이후 처음이다. 중학교 때 전근대사를 배웠다는 이유로 고교 때는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주장은 어처구니없다”고도 했다. 그는 “철학사를 가르치면서 피타고라스에서 칸트까지는 간단히 정리하고, 19세기 키르케고르에서 마이클 샌델(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까지는 자세하게 배운다면 말이 되는가”라고 말했다.

강석화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판문점 도보회담같은 현재 진행중인 사건까지 담으면 교과서의 정치화를 자초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김일성의 보천보전투까지 다루면서 이승만은 배제할 우려

 

-근현대사 서술이 편향적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인가.

 

“시안(試案)에 따르면, 두 번째 학기(한국사2) 첫부분에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모색’ 단원을 배운다. 시기적으론 1930년대 후반~광복까지인데 이런 구성이면 김구와 임시정부, 김원봉의 조선의용대, 김일성의 보천보전투까지 넣으면서 이승만의 독립외교 활동은 배제하거나 언급 정도만 할 것이다. 현재의 대한민국과 연결성도 떨어지고 학생들에게 잘못된 인상을 줄 우려가 크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는 여수 14연대 반란 당시 전사한 장교들의 위패가 봉안돼있다. 현행 고교 한국사 교과서 대부분은 여순사건을 통일정부 수립운동으로 미화하고 있다. 지난 30일 발표된 2022 교과과정 시안에 따르면 새 교과서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김연정 객원기자

 

◇남로당이 일으킨 4.3·여순사건, 통일 운동 미화

 

-현행 교과서 대부분은 남로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반대하기 위해 일으킨 4.3 사건이나 여순 사건까지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으로 미화했다.

 

“이번 시안에도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란 성취 기준이 들어있다. 이대로라면 4.3 사건과 여순 사건을 통일 운동으로 미화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뭔가 불완전하고 문제가 많은 것처럼 쓰일 것이다.”

 

 

◇산업화 문제점은 부각하면서 민주화 폐단 눈감아

 

-산업화의 부작용은 부각시키면서 민주화의 문제점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다.

 

“2002년 반미 시위를 촉발한 효순·미선양 사건이나 2008년 광우병 시위처럼 근거 없는 선동에 휘둘리거나, 거리의 민주주의를 앞세우는 사람들이 의회 민주주의를 신뢰하지 않고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지 않았나. 정치화된 시민단체, 귀족 노조처럼 민주화의 한계도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닌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자 문화 강국으로 성장한 우리 현대사를 왜 그렇게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일까.

 

“교과서 기술대로라면 현재 대한민국의 성취를 설명할 길이 없다.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선물처럼 느껴질 것이다. 좋은 것만 쓰라는 게 아니다. 최소한 제대로 공과를 쓰고 설명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새 교과서 받아가는 아이들 - 지난달 16일 2학기 개학을 맞은 강원 홍천군 석화초등학교에서 어린이가 교단 옆에 쌓여 있는 새 교과서를 가져가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까지 다루는 교과서, 정치 권력 개입 자초

 

-2020년부터 사용된 현행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은 모두 문재인 정부의 남북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을 남북 화해의 대표적 사례로 소개했다.

 

“역사 교과서 서술은 1987년 민주화운동 정도에서 끝내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현재 진행 중인 사건까지 쓰면 정치 권력의 개입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천안함 사건이 누락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획일적 사관 막자면서 상대방을 ‘적폐’ ‘부역자’로 몰다니…”

 

-2016년 국정교과서 편찬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전후 ‘적폐’ ‘부역자’로 몰렸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 명분 중 하나는 획일적인 사관 주입을 막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국정화 반대 진영은 조금이라도 딴 목소리를 내면 잡아죽일 듯 공격해 실망했다. 직전 학회장까지 지낸 원로 교수(최성락 목포대 명예교수)를 징계하다니, 이게 정상인가.”

 

강 교수는 “이번 교육과정 시안은 폐기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연구진으로 새 팀을 꾸려야 한다”고 했다. “충분한 시간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윤석열 정부는 20년 넘게 한국 사회 갈등 요인으로 자리 잡은 ‘역사 교과서 전쟁’을 매듭지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