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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5위 거머쥔 생존력… ‘무굴 코끼리’ 인도의 힘

이강기 2022. 11. 26. 16:47

세계경제 5위 거머쥔 생존력… ‘무굴 코끼리’ 인도의 힘

 

어느새 G3 넘본다, ‘인디언 파워’ 대해부

 

김지섭 기자

조선일보,  2022.11.24 

 
 
 
 
                                               그래픽=김의균
 
 

2022년은 14억 인도인에게 1947년 해방 이래 가장 기념비적인 해로 기억될 것이다. 과거 무굴제국 시절부터 자국(自國)을 90여 년(1858~1947년)간 식민 통치했던 영국의 그늘에서 벗어났다고 할 만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기 때문이다. 올해 인도는 영국의 GDP(국내총생산)를 처음으로 따라잡았고(1분기 기준), 인도 출신의 영국 총리까지 배출했다. 정치·경제 양면에서 식민 모국인 영국에 ‘인도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인도 내에서는 올해 인도가 거둔 쾌거를 치켜세우며 축제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고 있다. 인도의 집권 여당인 인도국민당(BJP)의 삼피트 파트라 대변인은 “우리를 지배했던 자들이 이제 우리보다 열세에 놓였다”고 선언했다.

 

 

 

서방 세계에서도 인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 차원 달라지고 있다. 인도 경제의 잠재력과 인도 출신들의 ‘맨 파워’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으나 최근 일련의 사건으로 인도의 글로벌 영향력이 새삼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인도가 미·중과 함께 ‘G3(주요 3국)’로 발돋움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미국 블룸버그는 “인도의 재능이 10~15년 전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서구 세계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인디언 파워(Indian power)’의 실체를 WEEKLY BIZ가 분석했다.

 

 

◇인도系 경쟁력의 원천... 영어, 학력, 생존력

 

리시 수낙(Rishi Sunak) 신임 영국 총리 이전에도 글로벌 정·재계에는 이미 무수히 많은 인도계가 자리 잡고 있다. 정계에서는 미국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비롯해 니키 헤일리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보비 진덜 전 루이지애나 주지사 등이 모두 인도계다. 미국 현지에서는 2024년이나 2028년 대선에서 해리스 부통령(민주당)과 헤일리 전 주지사(공화당) 간 맞대결이 펼쳐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 밖에 포르투갈 안토니우 코스타 총리 역시 인도인 아버지를 뒀고, 인도양 섬나라 모리셔스의 프라빈드 주그노트 총리도 인도계다.

 

산업계에서도 인디언 파워는 막강하다. 구글(순다르 피차이), 마이크로소프트(사티아 나델라), IBM(아르빈드 크리슈나), 어도비(샨타누 나라옌) 등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들을 비롯해 스타벅스(랙스먼 내러시먼), 샤넬(리나 나이르)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인도계가 꿰차고 있다. 2006년부터 12년간 펩시를 이끈 인드라 누이 전 CEO도 인도계 경영자로 유명하다.

 

다수의 인도인이 서방 세계에서 거물급 인사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유창한 영어 구사 능력과 높은 학력 수준이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데다 수백 개의 언어가 존재하는 탓에 영어가 사실상 공용어로 쓰인다. 더불어 인도에는 IIT(인도공과대), 로욜라대학 등 이공·자연계를 중심으로 미국 아이비리그에 맞먹는 수준의 대학들이 즐비하다. 인도는 과거 카스트라는 계급 체계가 있었던 만큼 교육을 통해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상류층으로 올라가려는 열망이 매우 큰 나라다. 인도의 부모들은 자녀 교육을 헌신적으로 지원하며, 자녀들을 영미권의 명문 대학으로 유학 보내는 경우도 많다. 퓨리서치에 따르면 25세 이상 인도계 미국인의 78%가 학사 이상의 학위를 가지고 있다. 미국 태생 미국인(32%)의 2.4배에 달한다. 오화석 인도경제연구소장은 “인도 중산층 이상 가정은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자녀들은 영미권으로 유학을 가거나 해외 취업을 한 뒤 현지에서 자리를 잡고 높은 소득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인도 특유의 환경 및 문화에서 비롯된 기질적 요인도 인도계 약진에 큰 영향을 준다. 인도인은 14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 사회 전반의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 보니 자연스레 생존력과 적응력을 키운다. 경쟁과 혼돈이 인도인을 유연성을 갖춘 문제 해결 능력자로 만드는 것이다. ‘더 메이드 인 인디아 매니저’의 저자 고팔라크리슈난은 “세계 어느 나라도 인도처럼 국민을 ‘검투사’로 훈련시키지 않는다”며 “전쟁 같은 삶을 살다 보니 인도에서 자란다는 것 자체가 사람을 ‘관리자’로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다신교인 힌두교를 믿는 데서 비롯된 화합 및 공존을 지향하는 문화, 강력한 인도인 네트워크도 인도계가 탄탄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배경으로 꼽힌다.

 

 

◇민주주의 유지하며 고속 성장한 저력

 

전 세계가 인도계의 활약에 고무돼 있지만 인도라는 국가에 대해선 부정적 인식을 가진 이들이 여전히 많다. 미디어를 통해 비친 인도의 모습은 지저분한 거리, 슬럼가, 낙후된 인프라 등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코로나 확산세가 심각한 상황에서도 갠지스강에 수천만 인파가 몰려 강물에 몸을 씻는 힌두교 의식(쿰브 멜라)을 행하는 광경을 보며 인도를 이성이 아닌 종교적 관념이 지배하는 나라로 보는 시각도 팽배하다. 이 때문에 인도 경제 규모가 어느덧 세계 5위권에 들었다는 소식에 새삼 놀랍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영국 가디언은 “중국의 부상이 최근 수십년간 세계 경제에서 가장 큰 화제였던 반면 인도의 성장세는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았다”며 “어느 순간 인도는 조용히 경제 초강대국의 지위를 주장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물론 인도는 중국처럼 장기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할 만큼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진 않았다. 인도는 1991년 폐쇄형 계획경제에서 개방형 시장경제로 전환한 이후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19년까지 28년간 연평균 6.4%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중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9.5%로 인도보다 3%포인트가량 높다.

하지만 중국이 공산당 독재 속에 경제 정책의 효율성과 신속성을 꾀한 반면 인도는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며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양국(兩國)을 성장률 수치만으로 비교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인도는 중국에서라면 가능하지 않을 개인과 집단의 반대, 반발을 용인하면서 정책을 집행해야 했기에 경제발전 초기 성장률이 중국보다 낮은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반면 최근의 성장세는 중국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 직전 6년(2014~2019년)간 인도의 연평균 성장률은 6.84%로 중국(6.81%)을 추월했다. IMF(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인도는 올해(6.8%)와 내년(6.1%)에도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중국(3.2%, 4.4%)을 압도할 것으로 보인다. 오화석 소장은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보장하는 민주주의 체제는 발전 초기 고속 성장에 불리한 면이 있지만 산업이 고도화된 이후부터는 오히려 성장을 촉진시킨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 5위인 인도의 경제 규모는 향후 급속도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경제연구센터는 2029년 인도의 GDP가 일본을 추월해 세계 3위에 등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5위권이었던 경제 규모가 30여 년 만에 3위로 뛰어오르는 것이다.

 

◇거대하고 젊은 인구... 미·중 갈등 반사 이익도

 

인도의 급성장 배경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거대한 인구다.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으면서 평균 연령도 가장 어린 축에 드는 나라다. 유엔인구국(UNPD)에 따르면 올해 인도 인구는 14억1200만명으로 중국(14억2600만명)보다 조금 적지만, 내년에는 중국을 추월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유엔은 인도 인구가 꾸준히 늘어 2050년 16억680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본다. 반면 고령화에 신음하는 중국은 2050년 인구가 13억1700만명까지 줄면서 양국 간 격차는 3억5100만명으로 벌어질 전망이다. 더 중요한 점은 인도가 사람만 많은 것이 아니라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인구 비율이 높다는 데 있다. 지난해 기준 인도의 15~64세(생산가능인구)는 전체 인구의 67.3%를 차지하며, 65세 이상 고령층은 6.6%에 불과하다.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넘어선 중국과 차이가 크다.

 

젊은 경제 활동 인구의 증가는 생산이나 수출뿐 아니라 소비와 내수의 증가를 의미한다. 인도에서 최종소비의 성장 기여도는 1992~2002년 평균 3.7%에서 2008~2019년 4.5%로 크게 늘었다. 통신망 확대와 인터넷 사용료 인하로 스마트폰 및 인터넷 사용자가 급증하면서 은행 계좌조차 없던 10억명의 금융 소외층이 핀테크 서비스를 통해 소비에 적극 나서게 된 점도 인도의 내수 성장을 기대하게 하는 요소다.

최근 인도 경제에 다가온 또 하나의 기회는 미·중 갈등 국면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과 서방의 주요 기업들이 안전성 확보를 위해 중국 이외 국가로 공급망 다변화를 꾀하고 있는데, 풍부한 노동력과 저렴한 인건비가 강점인 인도가 최대 수혜국 중 하나로 꼽힌다. 최근 애플은 인도에서 주력 제품인 아이폰14 일부를 조립하기 시작했고, 이르면 내년부터 인도에서 에어팟과 비츠 헤드폰 일부를 생산할 계획이다. 애플은 2025년까지 아이폰 생산 시설의 25%를 인도로 이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현재 하드웨어 기기를 전량 중국에서 생산 중인 구글도 인도에서 스마트폰 생산 비중을 늘리고 있다.

 

인도 정부도 기회를 살리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생산 시설을 이전하는 기업에 생산 연계 인센티브(PLI)와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 FDI(외국인직접투자) 유치에 적극적이다. 인도의 FDI 규모는 2018~2019 회계연도 620억달러(약 83조원)에서 2021~2022 회계연도 835억7000만달러(약 112조원)로 3년 만에 35% 늘었다. 한국은행 국제무역팀 주욱 과장은 “중장기적으로 제조업 경쟁력 개선과 함께 거대 소비 시장의 강점이 부각되고 미국과의 공조가 강화될 경우 대체 생산 기지로서 인도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빈곤, 부정부패, 인프라가 아킬레스건

 

인도계와 인도 경제의 글로벌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인도에는 성장의 발목을 잡는 치명적 약점도 많다. 우선 빈곤과 빈부 격차 문제가 심각하다. 인도는 전체 GDP 규모로 세계 5위의 대국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기준 2342달러(약 310만원)로 세계 138위에 그친다. 주변 국가인 방글라데시(2362달러), 스리랑카(3699달러)보다도 1인당 소득이 낮고, 같은 14억 인구 대국인 중국(1만4096달러)에 비하면 6분의 1에 불과하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5년간 약 4억1500만명이 빈곤에서 탈출했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약 2억2890만명의 빈곤층이 인도에 살고 있다.

 

경제 성장의 과실을 일부 부유층이 독차지하면서 빈부 격차 문제도 악화하고 있다. 세계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에서 소득 상위 10%와 하위 50%의 소득 격차는 무려 22배에 이른다. 미국(17배)이나 독일(10배) 같은 선진국은 물론 중국(14배)이나 인도네시아(19배) 같은 개도국과 비교해도 현저하게 높다.

도농 간,지역 간 격차도 심각하다. 인도 정부가 실시한 가족보건조사에 따르면, 도시 인구는 최빈층 또는 빈곤층(소득 하위 40% 이하)에 속한 인구가 10.4%인 반면 농촌 인구는 그 비율이 54%에 이른다.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인도 정부도 복지와 보건 분야 지출을 꾸준히 늘리고 있지만, 공무원 조직의 투명성과 업무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는 탓에 빈곤층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하는 부패 순위에서 인도는 지난해 85위에 머물러 10년 전(95위)에 비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보다 못 한 인도 정부는 빈곤층에 대한 지원금이 중간에서 새는 것을 막기 위해 지방 정부를 거치지 않고, 돈을 수혜 대상자에게 직접 주는 ‘디지털 복지’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열악한 인프라도 걸림돌이다. 도로, 철도 등 인프라 확충을 위한 민간 토지 수용에 애를 먹으면서 인도의 도시화율은 여전히 30%대에 머물고 있다. 국가의 토지 소유권을 바탕으로 수월하게 인프라를 확충해 고속 성장과 빠른 도시화를 이뤄낸 중국과 대비된다. 비말 잘란 전 인도 중앙은행 총재는 “부패는 막대한 경제 손실을 불러오고, 개발도상국을 ‘빈곤의 덫’에 빠뜨린다”며 “부정부패와 관료의 정치화를 바로잡지 못하면 인도는 글로벌 강국으로 도약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