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保, 軍事, 戰史

신냉전 시대, 무기공장이 24시간 돌아간다

이강기 2023. 1. 7. 14:10

신냉전 시대, 무기공장이 24시간 돌아간다[딥다이브]

 

동아일보, 2023-01-07
 
 
‘신 냉전’이라는 말이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제질서를 뒤흔들고 있는데요.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을 운운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미사일∙무인기 도발을 이어가는 북한까지. 세계 곳곳이 불안불안합니다.


높아지는 안보 위협에 모처럼 호황을 맞이하게 된 산업도 있는데요. 바로 방위산업입니다. 전투기, 장갑차, 미사일, 탄약까지. 주문이 밀려들고 있어 공장이 쉴 틈이 없을 지경이라고 합니다. 반전 평화주의자들 입장에선 땅을 칠 노릇이지만 ‘K-방산’ 수출에서 보듯 업계 입장에선 큰 기회이기도 하죠. 오늘 딥다이브는 글로벌 방위산업을 들여다볼게요.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Javelin)의 발사 장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량 지원한 무기 중 하나다. 미국 방산업체 레이시온과 록히드마틴이 공동 생산한다. 레이시온 홈페이지
 
 
군비 늘려! 무기 주문해!
 
미국의 올해 국방수권법(NDAA) 예산은 무려 8580억 달러(약 1100조원)입니다. 전년보다 약 800억 달러나 증가했죠. 바이든 대통령이 요청했던 것보다 의회가 450억 달러나 더 늘려잡은 겁니다. 국방 지출을 확 늘려야 한다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이 의견이 일치했던 건데요.


이렇게 안보가 최대 화두로 떠오른 건 미국만이 아닙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 위협이 앞마당까지 밀어닥친 유럽이야 말로 발등의 불이 떨어졌는데요. 최근 덴마크 새 연립정부가 덴마크의 11개 공휴일 중 하나인 ‘대기도절’을 폐지하겠다고 나선 게 이런 절박함을 드러내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국방비를 늘려야 하니까 덜 쉬고 일을 더하라는 (북유럽스럽지 않은) 발상이라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이미 2006년에 ‘각국 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하라’는 지침을 정했는데요. 그동안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으름장을 놓고(‘국방비 안 늘리면 너네 나라가 러시아 공격 받아도 지원 안 해줄 거야!’) 난리 쳐도 들은 척하지 않았던 유럽 각국이 뒤늦게 이 지침에 맞추겠다며 국방 예산을 가파르게 늘려잡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프의 위협은 (국방비 증액에) 효과 없었지만, 푸틴의 위협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인데요.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2026년까지 유럽 국방비 지출이 얼마나 늘어날까를 전망하는 보고서를 최근 냈는데, 그 내용을 한번 볼까요. 만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없었다면? 유럽 국방 지출은 2001년 이후 5년 동안 총 14% 늘어나는 데 그쳤을 겁니다(2021년 2960억 유로→2026년 3370억 유로).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 위기가 고조되면서 시나리오가 바뀌었고요. 이에 따르면 5년간 국방비 증가율은 최대 65%로 껑충 뛰게 됩니다(2026년 4880억 유로).

맥킨지가 분석한 유럽 나토 소속 국가의 방위비 증가규모. 기존엔 2026년까지 14% 늘어날 걸로 봤지만, 러시아 전쟁으로 안보 위협이 커지면서 적으면 53%, 많으면 65%로 증가율이 껑충 뛸 전망이다. 자료: 맥킨지

 

유럽이 러시아 때문에 저 아우성이라면 이웃나라 일본은 중국과 북한, 두 나라의 위협 때문에 난리입니다. 일본 정부는 올해 방위예산(6조8000억엔)을 전년보다 26.3%나 늘려 편성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2027년까지 동안 방위비 지출을 2배로 늘리겠다는 엄청난 계획까지 내놨죠. “1945년 이후 일본의 평화주의 전통과의 급격한 단절을 의미한다”(가디언 기사)는 평가가 나올 정도. 물론 그 돈을 어떻게 대느냐는 게 관건이긴 하지만(엔저가 걸림돌) 만약 목표대로 된다면 일본은 미국, 중국 뒤를 잇는 세계 3위의 군사비 지출 국가가 될 겁니다(현재는 9위).


한마디로 요약하면 주요국의 군비경쟁이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독일과 일본 같은 전범국가까지 재무장에 나섰고요. 설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이런 흐름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것이 결국 세계 평화로 이어질지, 군사적 긴장 고조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글로벌 방위산업엔 참으로 모처럼 물이 들어왔습니다.

                                   스팅어 미사일의 발사 모습. 레이시온 홈페이지


 
무기 공장의 호황이 시작됐다
 
스팅어(stinger)는 보병 병사가 어깨에 매고 쏠 수 있는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입니다. 헬기나 무인기를 타격하는 데 쓰이죠.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이 스팅어 미사일을 1600발 정도 지원했는데요. 이로 인해 재고가 똑 떨어지면서 미국 국방부가 부랴부랴 생산업체인 레이시온 테크놀로지에 스팅어를 추가 주문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스팅어를 주문한 건 2002년 이후 처음이라고 하죠. 레이시온은 부랴부랴 은퇴자까지 다시 고용하며 스팅어 공장을 가동 중. 그레고리 헤이스 레이시온 CEO는 “우리는 지난 10개월 동안 6년치 스팅어를 썼다. 재고를 보충하는 데 몇 년 걸릴 것”이라고 말합니다(뉴욕타임스 인터뷰).


방위산업 관점에선 ‘전쟁=무기 소비’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놀라운 속도로 재고가 소진되고 있는 무기는 스팅어만이 아닙니다. 1억400만 발의 탄약과 최소 100만 발의 155㎜ 포탄, 4만6000발의 대전차 무기, 8500발의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이 우크라이나에서 쓰였죠. 원래 탄약이나 미사일은 사용연한이 매우 깁니다. 오래됐다고 해서 버리고 새로 사게 되는 일은 없습니다. 고로 전쟁이 안 나는 한 주문이 들어올 일도 거의 없었는데요. 재고를 대거 떨어내는 대형 이벤트가 일어난 겁니다.

록히드마틴은 주문이 밀려드는 하이마스(HIMARS) 연간 생산량을 기존의 60대에서 96대로 늘리기 위해 공장을 풀가동 중이다. 록히드마틴 홈페이지


재고를 다시 채워넣기 위한 미국 정부의 주문이 밀려들면서 방산업체들은 총력 가동에 나섰는데요. 그럼에도 수요를 따라가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예컨대 재블린 미사일을 공급하는 레이시온과 록히드마틴은 연간 2100개를 생산할 수 있는데요. 이건 우크라이나에서 발사된 물량의 4분의 1밖에 안 됩니다.

록히드마틴의 하이마스(HIMARS)는 6륜 5톤 트럭 위에 227㎜ 로켓 6발을 발사하는 발사대가 올라간 다연장 로켓체계인데요. 러시아 탄약고와 교량을 정밀타격하며 우크라이나에서 맹활약 중입니다. 이 역시 미 육군은 물론 유럽에서도 주문이 이어지고 있는 무기이죠. 록히드마틴 제임스 타이크렛 CEO는 지난해 10월 하이마스 월 생산량을 5대에서 8대로 늘릴 거라고 밝혔는데요. 이를 위해 하이마스 공장은 ‘하루 24시간 주 7일’ 생산체제로 전환했다고 합니다.

록히드마틴의 F-35. 지난달 독일 의회는 F-35 35대를 도입하기 위핸 100억 유로의 예산안을 승인했다. 록히드마틴 홈페이지


국방비 지출을 늘려잡고 있는 다른 나라에서도 미국산 무기를 사려고 줄을 섰는데요. 대표적인 게 전투기입니다. 록히드마틴은 3년간 398대의 5세대 F-35 라이트닝Ⅱ 항공기를 인도하는 300억 달러 규모 계약을 확정했다고 최근 발표했습니다. 미국과 함께 핀란드∙벨기에∙폴란드에 공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밖에도 독일과 스위스 역시 F-35 계약을 지난해 마무리했죠.


재무장에 나선 일본도 미국 무기를 올해부터 왕창 사들일 예정인데요. 예산안에 반영된 미국 무기 계약액(1조4768억 엔)이 지난해의 4배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특히 미국산 순항미사일 토마호크를 도입해 ‘반격능력(상대의 미사일 발사지점을 타격하는 공격)’을 갖출 거란 계획입니다. 토마호크 사정권엔 당연히 한반도도 들어가죠.

토마호크 발사 모습. 일본은 2027 회계연도까지 토마호크를 최대 500발 구입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레이시온 홈페이지


선두 방산업체가 최고 수혜자? K-방산은?
 
그런데 선진국들은 왜 이렇게 주로 미국산 무기를 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능이 가장 우수하니까요.


무기 성능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무기를 함부로 구매할 수야 없죠. 당연히 글로벌 시장의 선두 업체에 주문이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구매력이 높은 선진국은 가격이 민감하지 않으니 더욱 그렇고요. 전 세계 톱5 무기제조업체가 미국 기업입니다(록히드마틴, 레이시온, 보잉, 노스럽그러먼, 제너럴다이믹스). 미국은 늘 전 세계 무기 수출국 1위였죠(2021년 전체 무기 수출 중 41.4% 차지).


유럽과 일본 같은 선진국들이 잇따라 국방투자를 늘리겠다고 나선 건 미국 대형 방산업체에 큰 호재인 셈이죠. ‘보수적인 방위산업계 특성을 감안하면 결국 기존 대형 방위산업체의 수혜가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삼성증권 ‘안보투자 전성시대’ 보고서 인용).


유럽 방위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 것도 미국 쏠림이 커진 이유입니다. 방위산업은 기본적으로 내수산업입니다. 자국 군이 어느정도 사줘야만 업체들이 무기를 만들 수 있죠. 내수시장 규모가 받쳐줘야 투자가 지속되는 건데요.


탈냉전 이후 유럽 각국은 군사비 지출 줄이기에 나섰습니다. 무기 주문도 줄였고, 무기 개발비 지출도 줄였죠. 투자를 안 하니 당연히 성능 경쟁력은 떨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전투기 ‘라팔’은 예산의 문제로 개발기간이 엄청 길어지면서 (초도비행에서 배치까지 16년이나 걸림), 미국산 전투기와의 경쟁에서 밀리게 됐죠.

그럼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K-방산은요?

폴란드가 도입하기로 한 K-239 ‘천무’의 발사 모습. 폴란드는 미국산 하이마스를 구매하려고 했지만 록히드마틴이 원하는 물량을 신속하게 공급하기 어렵다고 하자 한국의 천무를 동시에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한화디펜스 제공


 
다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K-방산의 수출전략은 한마디로 ‘가성비’입니다. 성능은 선진국의 90% 수준이면서 가격은 저렴하니까요(예-국산 K-239는 대당 약 30억원, 미국산 하이마스는 약 50억원). 무엇보다 대량생산 체계가 잘 갖춰져서 기한 내에 제때 납품하는 점이 한국 방산업체의 큰 장점으로 꼽힙니다(하나금융경영연구소 보고서). 그렇기 때문에 가격에 민감하거나, 좀 빨리 납품받을 필요가 있는 국가들이 K-방산의 수출국이 되곤 합니다. 예를 들어 폴란드는 원래 미국 무기체계를 도입하고 싶어했는데요. 원하는 수량과 납기를 미국기업이 맞춰주지 못하자 지난해 한국의 FA-50(경공격기), K2(전차), K-239(다연장로켓, 천무) 도입을 결정했죠. 우크라이나와 붙어있는 폴란드는 유럽에서도 급속하게 국방비 지출을 늘리고 있는 국가입니다.


달리 보면 선두업체가 모든 주문을 다 소화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서 후발업체인 한국방산기업에도 수출의 기회가 열린 건데요. 한국 무기는 NATO 규격을 준수해서 미국 무기체계와 호환이 잘 된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아직은 K-방산은 틈새시장에서 먹히고 있는 셈이죠.


냉정한 평가에 혹시 실망하셨나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보수적인 방위산업 특성상, 새로운 시장을 뚫기란 상당히 어렵지만 일단 한번 수출을 뚫으면 안정적으로 갈 수 있습니다. 무기를 팔면 그걸 유지, 보수하는 매출이 장기간 보장되기 때문이죠. 적어도 K-방산의 잠재력은 확인된 겁니다. 앞으로 이걸 어떻게 이어갈지를 정부와 기업이 함께 고민해야 하겠죠. By.딥다이브

 

냉전 시대의 끝자락을 기억하는 저로서는 ‘신 냉전’이라는 말이 무시무시하게 들리는데요. 그럼에도 수혜를 보는 산업과 기업은 있는 법입니다. 글로벌 방위산업 관련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러시아 전쟁으로 안보 위협이 커지면서 미국, 유럽은 물론 일본까지 군비 지출을 대거 늘리고 있습니다. 군비경쟁 흐름은 쉽사리 꺾이지 않을 겁니다.

-덕분에 방위산업엔 호황이 시작됐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재고가 소진된 탄약과 미사일을 생산하기 바쁘고, 무기체계 주문이 밀려듭니다.

-보수적인 방위산업 특성상 그 수혜는 선두에 있는 대형업체에 집중되기 마련입니다. K-방산은 가성비 전략으로 틈새를 파고들고 있는 중.
*이 기사는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자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직접 받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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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