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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강기 2023. 1. 9. 21:36

중국중국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다음 글은  지난 주 한울이 출간한 기억과 전망(2022년 겨울호)에 게재된 한양대 사학과 강진아 교수가 중국의 귀환에 대해 쓴 서평 중 일부이다.]

 

오카모토 다카시는 최근 신작 교양으로서의 중국사를 출간하였다. 아마존 평점 4점 이상을 기록하는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중국을 말한다.

 

현대 중국의 법은 인민 위에 군림하고 있지만 공산당 위에 있지는 않습니다. , 중국은 주권재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여기서 주권재민이 올바르고 중국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여러 가치관 중에 하나를 택해서 옳다고 밀어붙이는 것도 역시 잘못되었다 는 말입니다. 우리 일본인은 우연히 영국에서 생겨난 법치 시스템을 도입해 서, 그럭저럭 나름대로 잘 적응했기 때문인지 이 시스템이 제일 덜 해로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세계는 그런 곳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스템의 장점을 실감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런 사람 들이 긴 역사 속에서 만들어 온 정치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좋고 나쁨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같은 법치국가로 생각하고 법률 기 준만으로 헤아리려고 하니까.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중국은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부터 싫어졌다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역사를 보면 중국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뇌물과 횡령이 판치는 것도 국제적 불(rule)을 무시하는 것도 갑자기 태도를 표현하는 것도 중국 공산당부터 시작된 일이 아닙니다. 원래 중국은 그런 나라입니다( 2020, 243-244).

 

그렇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일본인보다 훨씬 혈연과 지연을 소중히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혈육, 가족 간의 약속은 굉장히 잘 지키는데, 반대로 거기 서 한걸음 나가면 전혀 상관 안 합니다. 타인이 정한 규칙[rule]이나 국가가 정한 규칙[rule)은 지킬 필요도 없고, 지키려는 마음조차 없습니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국제법을 어기고도 태연한겁니다(2020,246).

 

아예 다른 문명이므로 대화로 소통할 생각을 하지 말자는 완벽한 단절이다. 그렇지만 이웃이니 각자 살자. "나는 나, 너는 너"이다.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근거는 역사와 문명의 총합이다. 한자, 유교, 지정학 모든 요소가 중국의 남다름을 설명하는 데 등장하는데, 문제는 현재에도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디쾨터와 오카모토에서 발견한 단절은 새뮤엘 P.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서 이미 나왔던 것이지만 동양학자 스스로 전개 한 것이므로 역사적으로 훨씬 정교하고 탄탄한데, 앞서 사카모토가 지적 한 것처럼 1930년대 일본의 '탈아론' 전개에서 등장했던 단절적 중국론과 내용상 대동소이하다.

 

흥미롭게도 똑같은 단절이 중국공산당의 '중국특수론'에서 나온다. 서 두에서 동북아 포커스에 썼던 글을 비록 관방이지만 중국 측 인사들과 공유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10 19일에 영남일보와 경북대의 공동 주최 로 '한중 수교 과거 30, 미래 30'이란 주제로 수교 30주년 기념 포럼 이 열렸다. 그 현장에서 역시 한중이 미래를 평화롭게 공영공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가치' 논의에서 열린 태도로 논의할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발표자(필자)와 플로어의 의견에 대해, 중국 측 참가자 및 발표자는 중국의 '민주' '가치'는 중국 특유의 것이므로, 서구 기준을 따르는 한국의 기준을 강요하지 말라는 답변으로 소통 가능성을 아예 차단해 버렸다. 표현조차 비슷하게 중국은 중국의 민주주의가 있고, 한국과 서구는 당신들의 민주주의가 있으니 상관하지 말고,” “상호존중하자는 논리였다. 그 중국 특유의 민주에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마오주의 외에 이제 유교를 위시한 전통적 중화문명이 들어간다. 필자는 보편적 가치란 없다면, 한중을 막론하고 장식처럼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발표문에 적고 있는 평화[和平]’는 뭐냐고 답변 없는 질문을 던졌다.

 

206 기억과 전망 2022년 겨울호(통권 47) 265-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