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38년 돌본 중증장애 딸 살해한 엄마 ‘집유’ 선처… 법정은 눈물바다

이강기 2023. 1. 20. 06:26

38년 돌본 중증장애 딸 살해한 엄마 ‘집유’ 선처… 법정은 눈물바다

조선일보, 2023.01.19 21:55
 
 
 

19일 오후 2시 인천지방법원 413호 법정. 30대 발달장애인 딸을 살해해 기소된 이모(64)씨에게 판사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는 순간, 재판정은 울음 바다가 됐다. 검찰은 작년 12월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인천지법 형사14부(재판장 류경진)는 형량을 크게 낮췄다.

인천지방법원 전경. /뉴스1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씨는 눈을 질끈 감았다. 방청석에 있던 이씨의 남편, 아들, 며느리, 사돈 등 가족들은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며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씨의 남편 박모(63)씨는 “아내가 지난 8개월간 잠도 한숨 제대로 못 자며 마음고생이 많았다”면서 “그동안 가족들 모두 제정신에 못 살았다”며 흐느꼈다. 이씨의 아들(38)은 “어머니의 망가진 정신과 몸을 돌보고 평생 누나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며 “누나가 너무 보고 싶다”고 했다.

 

판결 선고 후 법정을 빠져나온 이씨는 고생했다는 가족의 말에 고개를 숙인 채 눈물만 흘렸다. 그는 “자식을 죽인 어미가 고생은 무슨...”이라고 말하며 계속 흐느끼기만 했다. 며느리는 그런 이씨의 손을 꼭 잡은 채 눈물을 흘리며 아무 말 없이 옆을 지켰다. 이씨는 지난달 8일 결심공판 때도 “(범행) 당시에는 제가 버틸 힘이 없었다”면서 “‘내가 죽으면 딸은 누가 돌보나. 여기서 끝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딸과 같이 갔어야 했는데 혼자 살아남아 정말 미안하다”면서 “나쁜 엄마가 맞다”고 울음을 터뜨렸었다.

이씨가 숨지게 한 30대 딸은 뇌병변 1급 장애와 1급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다. 이런 딸을 38년간 돌봐온 이씨는 작년 1월 딸이 대장암에 걸리자 그 병시중도 하게 됐다. 우울증도 앓고 있었다는 이씨는 작년 5월 23일 오후 4시 30분쯤 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질식시켜 숨지게 한 뒤 자신도 수면제를 먹고 죽으려 했다. 집에 찾아온 아들이 발견해 병원으로 옮기지 않았으면 이씨도 위태로웠다.

 
이후 이씨는 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자 이씨가 겪어온 어려움을 잘 아는 이씨의 남편, 아들과 며느리, 사돈 등 온 가족이 재판부에 자필 탄원서를 제출했다. 38년간 누나를 돌봐온 어머니를 돕기 위해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땄다는 이씨의 아들은 “어릴 때는 누나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커서는 누나에게 해줄 게 없어 미안한 마음뿐이었다”면서 “지금껏 힘들게 버텨온 저희 가정 무너지지 않게 간곡히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탄원서에 썼다. 이씨의 며느리도 “기회만 주신다면 시어머니를 평생 곁에서 돌보며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류경진 재판장은 이날 “딸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어머니에게 있지 않아 엄벌에 처하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씨를 선처했다. 그가 받는 살인 혐의에 대해 법원은 징역 4~6년을 선고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이보다 낮은 징역 3년을 선고하며 5년의 집행유예를 둔 것이다.

 

류 판사는 “피고인이 38년간 딸을 돌봤고 딸이 대장암 진단을 받은 뒤 치료 과정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우발적으로 범행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장애인에 대한 국가나 사회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들은 오롯이 자신들의 책임만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도 피고인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