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1899-1986)
내 삶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다음 삶에서는 더 많은 실수를 해보리라.
완벽하려고 버둥대지 않고 한층 느슨하게 살리라.
예전의 나보다 더 큰 바보가 되리라
최소한의 것만 진지하게 받아들이리라.
건강에 안달하지 않으리라
더 많은 위험에 도전하고 더 많이 여행하며
더 많은 일들을 바라보고 더 많은 산에 오르며 더 많은 강에서 헤엄치리라.
이 삶에서 가보지 못한 많은 곳을 가보리라.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더 먹고
비릿한 콩은 덜 먹으리라. 현실의 문제에 더 관여하고
상상의 문제에서는 벗어나려 애쓰리라.
나는 뭇사람들처럼 생산성을 추구하고 매순간을 살았다.
물론 행복한 순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삶을 산다면
좋은 순간만을 가지려고 애쓰리라.
그대는 모르겠지만 삶이란 순간들로만 이루어진 것
현재의 순간을 놓치지 마라.
나는 뭇사람들처럼 온도계, 더운 물을 채운 물병,
우산과 낙하산 없이는 어디에도 가지 못했다.
삶을 다시 살 수 있다면 가볍게 여행하리라.
삶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봄의 첫소리에 맨발로 걷기 시작하며
가을까지 그렇게 걸으리라.
회전목마를 더 많이 타고 더 많은 일몰을 바라보리라.
내 앞에 또 한 번의 삶이 주어진다면 더 많은 아이들과 함께 놀리라.
그러나 나는 어느새 여든다섯, 내가 죽어가는 것을 절감한다.
책 읽는 사람들,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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