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가는대로

낙타와 바늘구멍 이야기

이강기 2015. 9. 9. 11:27

낙타와 바늘구멍 이야기

 

2002, 4. 6


중학교 시절, 요즘으로 치면 학생회 회장격인 운영위원장 선거에 나섰다가 보기 좋게 낙선한 적이 있는데,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때 일만 생각하면 어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낙선 때문이 아니다. 선생님들과 전교생들 앞에서 하는 의견 발표회 때 저지른 말도 안 되는 실수 때문이다. 며칠 밤을 노심초사하며 ‘동서고금의 명언들을 총 망라하여’ 작성한 내 발표문에 ‘낙타와 바늘구멍 이야기’가 당연히 들어간 것 까진 좋았는데 그만 ‘낙타’를 ‘밧줄’로 둔갑시켜버린 것이다.


그때만 해도 시골 중학생들의 지식.정보 접촉이 극히 제한돼 있을 때라 어느 책에서 본 ‘駱駝’라는 한자 낱말이 ‘낙타’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이는 필경 ‘밧줄’을 의미하는 한자일 거라고 내 맘대로 해석한 결과였다. 바늘구멍에 밧줄을 낀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면서도 밧줄과 실이 긴 가닥이라는 의미에서 서로 어울리는 낱말이라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낙타라니. 아무튼 그 일 이후 가끔 지레짐작을 하거나 대충 추론하여 결론을 내려야 할 때 더욱 신중을 기하는 버릇이 생겼으니 그 부끄러운 기억이 내게는 큰 교훈이 되기도 했다.


헌데 이야기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내가 발표했던 ‘밧줄’이 옳았다는 것을 뒤늦게 그것도 몇 십 년이나 지나서 알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9장24절과 마가복음 10장25절의 낙타와 바늘구멍 이야기 속에 나오는 ‘낙타’가 실은 ‘밧줄’의 오역이었다는 것이다. 번역자가 아랍말의 gamta(밧줄)를 gamla(낙타)로 혼동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원, 세상에 이런 일이! 그렇다고 중학교 시절의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다시 불러 놓고 “사실은 이러 이러해서 내 말이 옳았다”고 새삼스레 설명할 수도 없고.....


문제는 또 있다. 오역이 분명한데도 “신성한 오역”이라나 뭐라나 하면서 성경에서는 그냥 ‘낙타’로 사용한다는 얘기였다. 아무리 성경이라도 그렇지, 오역이 분명하면 당연히 고쳐야 할텐데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중학교 때의 ‘내 발표“는 또 어떻게 되나. 틀린 것이냐, 맞은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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