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韓.日 關係

임진왜란 주제 국제학술대회 “영웅 뒤엔 국가권력 있었다”

이강기 2015. 9. 11. 12:41

임진왜란 주제 국제학술대회 “영웅 뒤엔 국가권력 있었다”


 


1592년 왜군의 부산진 공격에 맞서 싸우는 조선 군사들을 그린 ‘임진왜란 부산진 순절도’(1760년 개작. 보물 391호). 동아일보 자료 사진

역사란 종종 현재에 재해석된 집단적 기억이다. 한국이 받은 숱한 외침 중 대표적인 것으로 꼽히는 임진왜란(1592∼1598)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일제를 비롯한 국가권력이 이데올로기적 필요에 의해 이순신, 논개를 비롯한 임진왜란 당시 영웅상의 형성과정에 어떻게 개입했는지를 규명하는 학술회의가 열리고 있다.

서강대 국제한국학센터가 19∼22일 경남 통영에서 ‘임진왜란: 조일(朝日)전쟁에서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를 주제로 열고 있는 국제학술대회는 임진왜란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돌아보는 자리다.

임진왜란은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의 최고 권력 수반이 모두 직접 개입한, 무력을 동원한 국제 전쟁인데도 삼국에서 이 전쟁을 일컫는 공용어조차 없는 실정이다. 정두희 국제한국학센터 소장은 “관련된 세 나라 모두 이 전쟁을 자국의 영광을 드러내는 역사 서술로 일관하거나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낙성대경제연구소 박환무 연구위원은 ‘이순신, 제국과 식민지의 사이에서’라는 제목으로 발표할 논문에서 “망각의 늪에 있던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민족의 수호자’이자 ‘구국의 영웅’, ‘동양의 넬슨’으로 끌어올린 것은 조선이 아니라 일본”이라고 주장했다. 박 위원은 그 근거로 청일전쟁을 앞두고 1892년 일본의 현역 육군대위인 시바야마 나오노리가 장교단체 기관지인 ‘가이코샤(偕行社)’에 투고한 글 ‘조선 이순신전’을 들었다.

박 위원은 “시바야마의 이순신전은 중화세계 속의 명장 이순신을 서양 근대 중심의 세계사 속의 명장 이순신으로 만들었으며 식민지 조선에서 3·1운동 직후인 1920년 문일평에 의해 ‘일본인이 저술한 이충무공전’으로 번역돼 읽혀졌다”고 설명했다. 또 초대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1916년 이순신 관련 유적을 제국 일본의 유적으로 등록해 보존한다.

그러나 식민치하의 조선사회는 ‘제국 일본의 이순신’을 ‘적대적 문화변용’을 통해 기억하려 노력했다. 적의 기억의 전략을 이용해 자기를 규정하는 민족적 전략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이순신에 대한 기억은 분열되지만 일제는 중일전쟁 이후 국가 총동원 체제 속에서 이의 통합을 시도했다. 이순신에 대한 기억을 조선인의 상무정신을 고취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한편 이화여대 정지영 교수는 ‘국가 재건과 여성 섹슈얼리티의 동원’이라는 발표 논문에서 논개의 역사적 이미지도 시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17세기 야담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논개 이야기가 본격적인 장편의 이야기로 등장한 것은 6·25전쟁 이후 박종화가 쓴 소설 ‘임진왜란’에서부터다. 정 교수는 “소설 ‘임진왜란’은 대한민국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남한의 구성원 통합을 통해 겨레의 수난을 극복하기 위해 쓰여졌다”며 “그런 맥락 하에서 논개는 국가의 부름에 몸을 바치는 여성의 상징으로 재탄생했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일본 교토대 다카키 히로시 교수는 발표 논문 ‘근대 일본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에서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이 좌절됐는데도 도요토미가 일본 근대 최고 영웅으로 떠오른 이유는 청일전쟁과 한국 합병을 거치면서 조선 침략의 선구자라는 이미지가 부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국주의적 팽창론자들의 영웅 만들기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김자현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한국의 역사를 1000번이 넘는 외침을 받은 고난의 역사로 서술하는 데 있어 임진왜란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사용돼 왔다”며 “그러나 외침을 당한 횟수로 말하면 북방민족의 주요 타깃이었던 중국, 항상 전쟁에 시달렸던 유럽 국가들보다 한국이 더 외침에 시달렸다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한국을 끊임없는 외침의 피해자로 보는 관점은 국민을 결집시키는 선전도구로 사용됐고 이제는 엉뚱하게 한국인의 우수성과 힘을 강조하는 데에 이용되고 있는데 이는 반역사적이고 위험하기까지 한 관점”이라고 지적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