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지상 좌담회] 한·일 원로 6명 다시 100년을 논하다
중앙일보
한국과 일본의 정치·경제·문화계를 대표하는 6명의 지상 좌담회는 크게 7개 주제로 구분된다.
한·일의 고대 교류사, 과거 100년 평가와 향후 100년 발전 방안, 항구적 우호 방안, 경제 공생 방안, 동북아 외교 대응 방안,
동아시아공동체, 양국이 공동 추진해볼 프로젝트 등이다. 6명은 대부분 모든 분야에 대해 발언했지만, 각자의 전문 분야에 따라선 내용이나 양에
다소 차이가 있었다. 이들은 한·일 고대사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제기하거나 오랜 교류 역사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한·일 강제병합에 대해 ‘잘못된
일’이라는 의견도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이 공동 번영하기 위해선 여러 분야에서 정부·민간 차원의 끈끈한 교류를 확대하는 ‘공생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며 다양한 새 비전을 제시했다.
좌담회를 공동 게재한 4월 14일자 니혼게이자이. | |
1 고대부터 쌓아온 한·일 교류사
-한국과 일본은 고대부터 다양한 교류를 해 왔다.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현재의 사회문화를 형성해 왔다고 생각하는가.
우메하라 다케시=중국의 선진문화는 한국을 경유해 일본에 들어왔다. 나는
이달 『이즈모(出雲 : 현재 시마네현) 왕조~매장된 왕조』라는 책을 출간하는데, 이즈모 왕조의 창립자는 한국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일본서기』에
많은 문서가 있는데 그중 3개의 문서는 ‘한국계’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생각이다. 야요이(彌生: BC 200~AD 300) 시대에는
일본해(동해의 일본 측 표현) 측이 일본의 중심부였다. 따라서 에치노쿠니(越の國), 지금의 니가타(新潟)현에서 옮겨 온 나라가 이즈모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온 ‘스사노오(일본 신화의 인물)’가 이즈모를 에치노쿠니의 지배로부터 독립시켰다. 이즈모 왕조의 창립자는 한국계라고
생각한다. 그 증거로 이즈모 왕조의 유적에서 동탁(銅鐸)이 나왔다. 야마토(大和) 왕조의 거울을 대체하는 것이다. 동탁의 기원은 한국의 귀족들이
쌍두마차에 붙이고 다니던 방울이다. (신화에 나오는) ‘스사노오’가 한국으로부터 건너왔다고 하는 설은 점점 유력해지고 있다. 새로운 일·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을 다시 재조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대 일본에 한국은 문명국이었고, 여러 문화를 알려준
은인이었다.
박태준=고대 한국은 일본에 문명을 전수했다. 포스코가 있는 영일만 마을에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시대 ‘연오랑
세오녀’(延烏郞 細烏女)라는 부부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이 부부가 일본에 ‘해와 달’(빛)을 건네주고 왕과 왕비로 추대됐다는 이야기다.
‘빛’은 문명을 뜻한다. 1973년 영일만에는 일본의 협력으로 새로운 ‘빛’이 탄생했다. 용광로의 빛, 즉 포항제철이었다. 영일만을 배경으로
양국 간에 주고받은 ‘빛’의 이야기는 양국 관계의 미래를 비추는 등불로 삼아도 좋다. 한·일 간에는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란 아픈 역사도
있었지만, 서로 도우면서 발전한 시기도 많았다.
미무라 아키오=일·한 관계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지식을 흘려보낸 것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우월했을 때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문화·기술 등이 흘러가는 관계였다. 철의 경우 4~6세기께 백제에서 후쿠오카(福岡),
신라에서 이즈모(出雲), 고구려에서 쓰루가(敦賀: 현 후쿠이현 부근)로 ‘다타라 제철’이 전수됐다. 사철(砂鐵)을 사용해 목탄을 넣고 만드는
기술이다. 역으로 1968년에는 한국에 포항제철이 세워졌을 때 일본의 야하타(八幡)제철, 후지(孵뵨)제철, 일본강관 등 3개 회사가 적극
도왔다. 일본이 은혜를 갚은 것이다. 야하타와 후지는 합병돼 신일본제철이 됐다.
이어령=종교·문화 면에서는
유(儒)·불(佛)·선(仙)이 융합하고 조화를 이루며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군사·경제 면에서는 한국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협공을
받아왔지만, 도리어 강력한 민족의식과 생존의 지혜, 강인함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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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과거 100년 그리고 미래
100년
- 과거 100년의 한·일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 앞으로 100년 동안 양국은 어떤 관계를 구축해 가야
하는가.
박태준=1965년 국교 수립 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양국 정부는 전반적으로 윈-윈 해법으로 풀어왔다. 그러나 아직도
유감스러운 현실이 상존한다. 한국은 일본에 대해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민족감정으로는 멀다고 생각한다. ‘친(親)’자는 매우 좋은 말이지만,
한국인에게 ‘친일(親日)’은 ‘반민족적’이란 뜻이 된다. 한국인에게 ‘친일’의 ‘친’이 ‘사이 좋다’라는 본래의 뜻을 회복할 때 ‘절친한
친구관계’가 된다. 1차적 관건은 과거의 진실을 직시하는 일본의 역사 인식과 역사 교육에 달려 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일본인은
한국 병합이라고 하는 제국주의 시대의 결과에 대해 깊게 반성하는 동시에 일본의 장래에 대한 큰 교훈으로서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양국은
근린 우방으로서 상호 협력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양국 정부와 국민이 상호 존경과 협력을 통해 공존·공영하고, 새로운 아시아를 구축해
가는 원동력이 돼야 한다. 한국 측이 천황의 방문을 희망하는 데 대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가능하면 빨리 실현되길 희망한다. 다만 이를
위해선 양국 국민과 정부가 여러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우메하라 다케시=일본은 한일병합에 대해 정말 반성해야 한다. 창씨개명을
강요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한국 출병도 터무니없지만, 일본이 근대에 한국·중국을 침략한 것은 유럽이
아랍을 침략한 것보다 더 악질적이었다. 한국이 독립하고 평등한 관계가 됐지만, 역시 한·일 병합의 원한은 남아 있다. 일본은 먼저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올해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천황이 방한하는 것도 적합할 것 같다. 천황은 아시아 우호를 중시하고, 전쟁에 대해 매우
반성하고 있다. 한국에서 정중하게 맞이해 준다면 방한해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시기가 문제다.
이어령=일본에도 정한론에 반대한 가쓰
가이슈(勝海舟), 한일병합에 반대하며 할복자살을 한 요코야마 야스다케(橫山安武) 같은 지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제까지 주목 받지
못했던 ‘작은 소리’의 역사가 앞으로 새로운 100년을 만들어갈 것이다.
미무라 아키오=신일본제철은 포스코와 경쟁관계지만 서로
도움이 되는 일은 최대한 협력한다. 그 결과 제조기술이나 비용절감에서 큰 효과를 얻고 있다. 전략적 상호 관계를 확립하기 위해 상호 지분 보유도
하고 있다. 문화 교류도 시작했다. 민간 교류 없이 정부만의 교류는 잘 되지 않는다. 정상들도 셔틀외교를 통해 자주 만나 문제 해결 안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3 역사교과서와 독도문제
-한·일 관계는 평소에는 원만하다가도 역사교과서, 독도 문제 등이
발생하면 곧바로 악화된다. 이런 현상에서 벗어나 항구적인 우호협력 관계를 만들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공로명=한·일 관계의
부침이 심한 직접적 원인은 역사 인식 문제다. 일본의 공식 입장은 줄곧 과거사를 사죄한다는 것이었지만, 한국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일들이
있었다. 일본이 올해 역사를 직시하고 총괄하는 국회 결의를 하면 역사 청산에 의미가 크다. 1995년 종전 50년 때는 참의원의 반대로 인해
내각 총리대신인 무라야마(村山) 담화로 종결됐다. 내년은 새로운 100년이 시작되는 해이므로 천황의 내년 방한은 새로운 한·일 관계 정립의
징표가 될 수 있다.
이어령=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대형 공동 프로그램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경쟁과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벌써 ‘BESETO’라고 하여 베이징-서울-도쿄를 연결하는 문화 프로그램이 많다. 사회복지 관계에서도 사회문화가
비슷한 아시아인들의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공동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문화적으로 깊은 상호 관계를
쌓고, 우방으로서 새로운 세계와 시대로 발전시켜 나가는 상호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4 한·일 경제
공생모델은
-한·일 양국의 경제관계를 보면 경쟁이 많아지면서도 상호 의존적인 관계도 심화되고 있다. 양국 경제가 공동
번영하는 데 바람직한 공생 모델은 무엇인가. 한·일, 한·중·일, 동아시아 광역 자유무역협정(FTA)의 필요성은.
박태준=포스코는
한·일 경제협력의 상징이다. 당시 신일본제철의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嘉寬·1987년 작고) 회장과는 제철소 기술을 원조받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인간적인 우정을 쌓았다. 그것이 대단한 일이었다. 포스코는 미국이나 독일에서도 기술을 받고 있었지만 역시 일본에서 빠르게 도입했다. 동양적인
인간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일 관계에서도 이같이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도 서로 진정으로 돕는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가는
사람은 뒤에 따라오는 사람을 도우면서 자신은 계속 발전해 가야 한다. 나도 중국에서 ‘광양 제철소를 보여 달라’며 다섯 차례나 최고위급 인사가
왔기에 보여줬다. 현 단계에서는 한·중·일 3국이 FTA를 타결하고 문화적·지적 교류를 더 체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미무라
아키오=경제분야에서 경쟁하는 건 당연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상대가 하고 있는 훌륭한 것은 흉내내자’라고 하는 것이 진정한 경쟁관계다.
한국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고, 산업이 크게 변했다. 지금 한국의 시장 규모는 일본에 비해
매우 작지만 철강, 자동차, 전력, 휴대전화, 전기전자 등의 업체당 국내시장은 한국이 일본보다 크다. 여기에다 해외로 적극 진출하고 있다. 또
세계의 경제위기 등에도 빠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본은 이를 배워야 한다.
공로명=구조적인 결함을 보여주는 게 무역에서의
일방적인 수입 초과다. 주로 일본으로부터의 중간재, 소재 수입이 많기 때문이다. 수년간 누적된 부품산업의 문제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부품산업
육성을 위한 단지를 만들고 투자 유치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 된다. 이런 것을 극복하기 위해 한·일 FTA를 체결하자는 것이다.
이어령=한·중·일 3국 관계가 선형이나 피라미드 구조가 아니라 동그랗게 원을 그리는 순환구도를 만들어 가위바위보와 같은 균형을
이뤘으면 한다. 3국이 디지털미디어 분야의 콘텐트 산업 자원을 공동 개발하면 아시아 문화를 세계에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만들었나
양국 원로에게 공동
질문서 보내 답변 들은 뒤 대담 형식으로 정리
중앙일보와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협의해 한국과 일본의 국가 원로급 인사를 각각
3명씩 선정한 후 승낙을 받았다. 이들이 동시에 모여서 좌담회를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을 감안해 두 회사가 공동으로 질문서를 만들어
이들에게 보냈다. 그러곤 지난 2~3월 서울과 도쿄에서 두 회사의 기자와 특파원들이 함께 한 명씩 찾아가 대담 형식으로 답변을 들은 후
정리했다. 대담은 경어로 진행됐으나 지면 제작상 평어로 썼다.
→ 이어집니다 5~7
[특별취재팀]
중앙일보 : 서울=오대영·배영대·예영준 기자, 도쿄=김현기
특파원
사진=안성식·변선구·강정현 기자 dayyoung@joongang.co.kr
니혼게이자이 신문 : 도쿄=고토 야스히로(後藤康浩)
편집위원, 이와키 사토시(岩城聰) 아시아부 기자
사진=슈토 다쓰히로(首藤達廣)후지사와 다쿠야(藤澤卓也) 기자
서울=야마구치
마사노리(山口眞典)·오지마 시마오(尾島島雄)·시마야 히데아키(島谷英明)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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